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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는 딸에게

공고지 2010. 3. 2. 07:54
 

대학에 입학하는  딸에게 -


 유독 눈 많이 내리고 추웠던 긴 겨울도 봄 햇살아래 피어오르는 새순들의 열정에 자리를 내주는구나. 무릇 작고 여려보여도 생명을 움틔우는 힘은 저리도 푸르고 힘차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마치 부모의 온실 안에서 세상이라는 광장으로 달려 나가는 새내기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같다.

이제 정해진 교육 틀이 아니라 수강계획부터 독서계획과 미래의 설계까지 모두 스스로 해야 하는 대학생이 되는구나. 자율이 커지는 만큼 따르는 책임량도 커지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사회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한 몫을 담당하겠지.


00아 애썼다, 정말 애썼어!


어려운 입시과정까지를 잘 이겨준 네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수능에서의 한 대목 아쉬움으로 속상해하던 모습, 학과 선택을 두고 고민하던 기간의 과정, 다 잘 정리한 것 같다. 영어를 잘하고 좋아하던 네가 한문을 택한 것은 곰곰 생각해보면 필연 같은 거였다는 생각도 든다.  너는 언어분야와 독서를 좋아하고 꼼꼼한 성격이니 동양적이고 학문적(어느 것이나 학문이지만)인 한문교육이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야.

영어가 필수가 된 만큼 한문은 폭이 줄어든 언어이면서 대다수 사람들에겐 어렵고 먼 학문이 되었지만, 기회는 발상을 전환하면 보이는 법, 잘 공부하여 창고에 쌓인 고문서들을 영어로도 번역해내고 한글로도 해석해내어 가치를 드러내는 일을 한다면 귀하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는 기대에 두근대기도 한단다.


그런 의미에서 신영복의 <강의>를 탐독해보았으면 한다. 이 책을 보면 어렵게만 생각되었던 주역이나 논어, 노자나 장자의 글들이 우리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하는 편안한 언어로 와 닿더라. 고전을 공부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도 하고..

엄마는 이 분의 글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이 ‘관계’의 중요성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연,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귀히 바라보고 성찰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사회는 훨씬 더 따뜻할 거라는 공감이었다.

관계의 결들을 귀히 여기고 다듬어가면서 아울러 서로 상승하는 관계들을 생각하면 좋겠다. 경쟁에서의 승자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사회에 팽배해있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낮다’는 속담처럼 협력의 힘이 경쟁보다 우위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지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피폐해지기도 한다. 꽃을 꺾으면 죽지만 가꾸면 더 많이 피어나고, 사람도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리면  갈등을 만들지만 배려하고 도우면 서로가 크고 성장한다. 사람도 사물도 어떻게 관계하는 것이 서로에게 복이 되는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네가 태어나고 중학교 때까지 자란 바다마을 사람들이 가끔 명절이면 멸치를 보내오고 철따라 잡힌 해산물을 보내올 때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니? 구매하자면 큰돈은 아니지만 푸른 바다만큼 깊은 인정을 담은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고 그 해산물을 먹으며 풍요로워지고 힘이 솟던 느낌, 그런 것이 관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관계와 더불어 ‘정당한 방법으로 얻는 부’ 에 대한 대목도 있다.

우리도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기에 당장 등록금문제만으로도 네가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고 한 것을 안다. 돈이 가치의 우위를 점하는 세상이기도 하고 돈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지니는 것이지. 그러나 기본을 잃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방법의 정당성을 득하려는 것이 이익과 배치될 때 당장의 이익보다는 손실이 나더라도 사람을 잃지 않도록 해라. 사람사이의 신뢰는 그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해관계로 따지더라도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  삶에 더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학점도 취업도 어느 하나 경쟁을 통하지 않는 것이 없는 사회에서 이런 말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삶의 질을 높이고 가치를 키우는 것은 학문탐구의 지향이어야 하니까.

경제적 궁핍도 사람구실 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관계의 궁핍은 훨씬 더 사람을 허허롭고 초라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를 보태면, 모든 결과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고로 임했으면 좋겠다.

어떤 결과는 항상 과정의 축적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힘겨운 것이라 해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절대 아니다. 결과의 해석을 어떤 방향으로 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시작은 차이가 난다. 네가 좀 더 높은 학과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수능결과로 선택한 학과가 더 잘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렇게 진취적이고 성숙한 자세로 대학생활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사족 하나 더,

대학의 높은 등록금이 아깝지 않도록 활용하는 방법은 강의를 열심히 듣고 동아리활동을 재미있게 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엄마는 도서관활용을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의 책들을 머리와 가슴에 듬뿍 담았으면 좋겠어. 입시 때문에 독서에 메말랐는데 마른논에 물대듯 충분히 독서를 즐겨라. 4년 동안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낸다는 작정을 했으면 좋겠다.

 

‘또 잔소리’가 길어졌네.

엄마들의 잔소리는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만 줄일게.

네 입학에 엄마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축하해!

명륜동의 4년이 네 삶에 빛나는 시절이기를 기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