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을 돌아드는 마음.
‘도라산’ 을 돌아 도는 마음.
여행은 언제나 호기심과 설렘을 동반하는 바, 규격화되고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을 떠나 자연으로 뛰쳐나가고픈 인간의 원초적 갈망이 내재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 수업시간보다 30여분이나 이른 약속인데도 지각생이 거의 없는 출석률이 그 진실을 증명해주었다. 책가방을 벗어낸 상큼하고 가벼운 옷차림들, 특히 교수님의 빨간색 점퍼는 강의실에서의 정돈된 이미지를 풀어내주는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얄궂은 봄 날씨도 이날은 청명해져서 연초록의 느티 아래 퍼지는 상큼한 라일락 향기처럼 우리들의 표정을 더욱 상기하게 했다.
8시 50분에 출발한 버스가 도시를 벗어나는 동안에는, 새벽 3시에 귀가하여 잠자리에 들었다는 친구, 못 일어날까봐 시간마다 깼다는 친구, 그리고 다섯 시에 일어나 식구들의 하루를 예비해두고 온 나, 모두 못다 한 잠에 빠져 들었다.
“이런 모두 잠들었네.”라는 교수님 한탄(?)에 우리 모두는 비로소 ‘중간고사 과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이고 지금은 ‘수업의 연장’이라는 본분을 자각하며 관찰의 자세에 임한다.
어느새 버스는 ‘자유로’를 달리고 있는데 바다를 둘러친 철책은 애써 우리의 ‘부자유’한 분단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서울의 끝자락에 붙은 우리학교에서 출발한지 겨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차창 밖은 검게 칠해진 구조물들과 철책선, 국방색 초소 등 군사적 긴장감이 조성된 다른 세계였다.
임진강역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그야말로 지척이었다.
도라산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임진각주변을 둘러보았다. 휴일이라서인지 관광객이 많았다. 조선족학교에서 온 듯 명찰을 목에 건 어린 학생 팀들도 많았고 외국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4월의 고운 꽃들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기 위해 줄을 선 알록달록한 사람들의 재잘거림 뒤에 전쟁의 흔적을 도구화한 ‘의도’들도 넘실거리는 듯 했다. “김정일도 천안함처럼 두 동강내자” 라는 아이들에게 차마 보이기 뭣한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명의의 현수막은 이곳도 예외 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 날, 서울역에 모여 확성기를 들고 규탄(?) 집회를 하던 ‘어버이연합’, 이분들의 다녀가심을 또 확인하며 착잡해진다. 한국전쟁의 공로(?)를 감사히 여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트루만 동상 주변으로 녹슨 전투 함대들도 ‘멸공’을 일깨워 각인시키는 듯 했다.
구조물 하나에도 관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와 통일의 성찰을 느끼게 할 것인지, ‘반공’에의 전의와 적대감을 키우게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책임 있는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기획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전달되기 때문이다.
도라산 역으로 가기위해서는 임진강역에서 신분증을 제시하여 출입수속을 거친 후 패찰을 목에 걸어야 한다. 마치 ‘민족적 상징’을 의미(?)하는 듯 빛나는 흰 셔츠를 입고 온 우리의 반장이 모든 업무를 알아서 처리해주니 우리는 쫄래쫄래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지만 가끔은 반장을 잃어버려 ‘가이드 챙기자’는 비명을 지르게도 했다.
반장은 ‘개별행동을 하지 말라’ 는 잔소리도 해가면서 이날의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수행하였는데 나름 긴장했는가, 동동주의 과잉섭취로 얼굴이 앵두처럼 붉어진 채 도라산 역에서 진행된 교수님의 ‘번개강의’에 조교가 되어 탐방의 의미를 역설하기도 하였으니 리더의 길이란 외롭고도 장엄하다 할 것이다.
임진강역, <평양 205km ↔ 서울 56km> 라고 표기된 푯말은 생경스러우면서도 마치 도봉역에서 방학역 향하는 듯 친밀감을 느끼게도 한다. 하지만 도봉역에서 방학역 가듯 할 수 없는 아득한 거리라는 현실이 착잡하게 했다. 그럼에도 ‘남쪽의 마지막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라는 글귀를 보며 출발역이 있으면 종착역은 지구의 끝까지라도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 한 자락 지닌다.
역시 여행은 기차가 제 맛이다. 아직은 남쪽의 마지막역인 도라산 역까지 운행하는 기차를 타니 달리는 창가에 와 닿는 봄 햇살에, 아이처럼 부풀기도 했다. 이 짧은 기차구간은 민통선구역이다. 도라산 역에 도착하여 헌병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역에 대기해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도라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 서니 임진강줄기너머 아련히 개성이 보인다. 황량한 들판에 마주보고 펄럭이는 태극기와 인공기는 지리적 거리는 강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체감하는 간격은 아득한 거리로 갈라져 있다. 임진강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 아래 묵묵히 굽이를 넘고 돌아 한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처럼 인간들의 마음도 자유롭고 넉넉하게 흘러갈 순 없는지... 좀 더 선명히 개성을 보려고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좁은 망원경렌즈의 방향을 회전시켜 보면서 렌즈처럼 조여 오는 답답함을 느낀다. 온 세상을 카드 한 장 소지하면 못 갈 곳이 없는 시대에 지척거리에서 이게 뭔 노릇인지..그리고 특별히 신기한 그 무엇도, 아름다운 절경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눈앞의 얕은 산과 그저 그런 건물들뿐인 개성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애쓰는 우리의 마음 밑바닥은 무엇인지.
도라산역에서 연계버스를 타는 순간 반장은 버스기사님으로 바뀌었다. 유치원생 확인하듯 일일이 숫자를 세고 “아기 구루마는 차에 놓고 내리세요.” 라며 유모차를 졸지에 구루마로 격하(?)해버리며 내리고 탈 때 마다 인원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어디가나 대책 없이 딴 청피는 사람은 꼭 한사람쯤 있기 마련이다. 기사님이 미아 찾듯 찾아다니고 빨리 오라고 외치고 하여 뒤늦게 버스에 오른 사람의 면구스런 표정을 보는 것도 나름 여행의 맛이다. 다행히 우리 팀은 반장의 ‘개별행동금지’발언이 위력을 발하는지 매번 착실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DMZ 전시관이다. D, M, Z라는 알파벳 세 글자를 빨간색, 보라색, 녹색철모와 노란색 조화로 만들어 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의미가 뭔지는 잘 읽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있었고 철모에 꽂힌 노란 꽃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도 보였다. 이어서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맞이한 안내원을 따라 5분짜리 영상물을 관람했는데 마치 70년대 영화 상영 전에 관람해야했던 ‘대한뉴스’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다음순서는 땅굴견학.
가방을 보관함에 넣고 헬멧을 쓴 후 곤도라 같은 기차를 타고 땅굴로 진입한다. 3600m라던가 아래로 아래로 7분여가량 내려간 후 질척거리는 동굴 속을 한 줄로 걸어 돌아 나와 다시 기차를 타고 올라온다. 땅굴 끝 지점은 군사분계선 170m 전까지였다. 이 굴을 파기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지, 이런 행위를 통해 하려는 것, 이루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비감한 심정이었다. “김치나 저장하면 좋겠다.”는 내 농담에 ‘홍어를 삭히느니’, ‘젓갈을 삭히느니’ 여러 이야기들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배고플 시간이 된 것이다.
땅굴의 깊고 음습한 공간, 짧은 시간의 ‘막장’에서 나오면서도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순간 숨결이 열리고 따스해지는데 탄광의 광부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잠깐 생각해보게도 했다. 그리고 내 한평생 살아오면서 키 작아서 유리한 적은 처음이라는 생각, 좁고 낮은 땅굴 안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걷는 키 큰 사람이나 외국인들 속에서 나는 고개 들고 당당히 걸을 수 있었다.
버스는 다시 점심을 먹기 위해 통일촌 으로 향했다. 장단콩으로 만든다는 된장찌개는 맛있었지만 관광지화 된 식당의 인심이 장단콩 처럼 투실해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식당에서 반찬 더 달라는 말하기 미안한 때이긴 하다.
이 마을의 논과 밭도 주변이 모두 철책으로 둘러 처져 있고 주변의 휑한 전봇대사이로 ‘민통선 땅 전문, 000-0000’ 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민통선 땅 전문이라? 민통선의 땅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한 투기의 거북한 속살이 부조화하게 펄럭이는 현수막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점심식사를 끝으로 탐방코스는 마무리되는 셈이다.
도라산역으로 되돌아왔는데 아뿔싸 한 친구가 식당에 가방을 두고 왔음을 뒤늦게 확인한다.
맛있게 밥 먹고, 밥보다 더 맛있는 동동주와 고운 학우들에 취한 탓 아닐런지? 술은 때로 이렇게 흥을 한껏 높여주고서는 대가를 요구하기도 하는 몹쓸 기호식품이기도 하다.
다행히 유모차를 ‘구루마’화한 기사님의 도움으로 가방은 그 친구의 품으로 되돌아왔고 탈 없이 귀가 길에 오를 수 있었다. 도라산에서 다음 역은 북쪽으로는 개성, 남쪽으로는 임진강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임진강역으로 되돌아만 갈 수 있는 ‘녹 슬은 기찻길’ 을 기차는 천천히 달렸다.
몇 년 전 판문점에 간적이 있다. 도라산 보다 훨씬 더 엄격한 수속을 거친 후 보안서약서 같은 것도 작성하고 들어가니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에서의 장면 그대로 땅따먹기 놀이할 때처럼 금하나 그어놓고 서로 대치하고 서 있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북한 군인을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거리에서 멀뚱멀뚱 바라보며 말도 건네면 안 되고, 표정을 이상하게 지어도 안 되고, 사진을 찍어도 안 되고, 그렇게 ‘안 되고’ ‘안 되는’ 관계에서 오는 어색함으로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어색하고 착잡했었다.
그때보다 남북관계는 더 경색된 상황에서 돌아 나올 수밖에 없는 도라산을 돌아오며 문득, 이날 반장이 준비한 간식이 영화 속 에서 이병헌과 신하균이 나눠먹던 쬬코파이였다는 생각에 실소한다. 쵸코파이 처럼 사람도 자연도 남북을 넘고, 경계를 넘어, 쫀득한 친밀감으로 스며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