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축물은 폐허에서 시작된다.
‘빈터’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여행
“모든 건축물은 폐허에서 시작된다.
폐허는 시작이면서 끝이다.
건축의 뼈대 구성단계는 아름답다. 사람도 해골이 아름답다.
해골은 우열도, 장식도, 화장도 없다.
건축이 무너질 때는 장식부터 떨어져나간다.”
빈터와 해골의 지점을 성찰하게 해 준, 충주지역의 미륵대원, 사자빈신사지, 여주 신륵사, 남한강유역 등, ‘빈터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여행은 유익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달려간 집결지, 비교적 시간을 잘 지키는 ‘학생’(여행 내내 교수님은 한 분, 나머지는 교수도 사장도 변호사도 상관없이 통칭 학생이 되었다)들과 함께 번호판도 부착되지 않은 새 버스를 타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 꾸러미가 아침 굶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흑미영양떡 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나 맛난지, 남겨 온 떡을 맛본 우리 아이는 “이 떡 요대로 떡집 들고 가서 이 맛으로 해 달라 하라” 고 채근 했으니 얼마나 맛있었는지는...
건축학자로 명성이 높은 교수님은 차량 안내에, 조는 학생들 단속까지 해가며 ‘빈터의 상상력’을 더한 명강의를 펼쳤다. 풍부한 사료적 지식에 시대적 통찰을 가미한 후 현대적 언어구사력으로 풀어내는 구수하고도 감칠맛 나는 강의였다. 드라마 속에서 위엄과 품격이 넘치던 인물이 머릿속에 뱅뱅 도는데 활자와 드라마의 행간 뒤에 빈신頻迅(?) 하고 있는 실상은 너무도 세속적이거나 현실대비 유사점이 많아 역사의 반복을 실감하게도 했다. 문제는 충주지역의 ‘유씨家’ 건축물 같이 투박한 학생(?)들이 ‘양은이파’, ‘칠성파’ 운운하며 강의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돌출적 상상력을 툭툭 던지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는가 하면, ‘아이폰’과의 교신을 통해 발굴해 낸 지식으로 끝없이 교수님의 강의에 곁다리를 치는 ‘학생’으로 인해 “이 정도 되면 폐강할 때가 됐다”는 자조(?)를 자아내게도 했으니.. 그럼에도 그래서 더 즐거운 강의시간이요, 답사였다 할 것이다.
오래 전 친구와 눈 쌓인 월악산영봉을 하염없이 올랐다가 황홀한 눈꽃풍경에 찬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그 감동을 안고 덕주사계곡 옆에서 향긋한 더덕구이에 찰진 동동주를 걸친 추억을 회상하며 바라보는 산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수안보온천주변 지상의 마을들은 황량하고 썰렁해보였다. 그래도 예약된 식당의 산채더덕구이정식은 별미였다. 양념이 강하지 않아 나물 맛을 고스란히 지킨 고춧잎, 박속나물, 이름 모르는 산나물 들을 거덜 냈고 더덕구이는 술동무를 필요로 하는 바, “꾼들의 결석”탓에 두어 동이로 끝내는 아쉬움(?)이 몇몇 분의 얼굴에 묻어났다.
충주 미륵대원과 사지빈신사지의 건축물을 재미난 해석을 더해 알뜰히 감상하고 여주 신륵사로 가는 동안은 모두 나른한 오수午睡에 빠졌다가 다시 교수님이 학생들을 깨워 사전지식을 주입한 후 신륵사에 도착했다. 신륵사는 “고려 공민왕사였으며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한 나옹선사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고려의 개혁적 고승이었던 나옹이 정치권력관계의 환란가운데 유배상황으로 머물다 이곳에서 입적한 후 절이 크게 확장되었고 나옹의 부도(浮屠)도 세워졌다. 신륵사에는 나옹과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우리는 고려시대의 나옹스님을 상상하며 초상화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했던가, 신륵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한강물은 세월을 안고 묵묵히 흐르는데 모래사장은 ‘4대강 사업’의 삽질로 꼴사납게 파헤쳐져 있었다. “80년대는 여기만 데려오면 다 된다 했는데” 라며 파헤쳐진 강의 훼손을 에둘러 표현한 교수님의 한탄에 “작업의 정석에 들어있다”(데이트 장소로)는 학생의 응대가 입증하듯 아름다운 강이었다는데 모래사장은 파헤쳐 갈라지고 강물은 푸르게 멍들어 가는 듯 했다.
‘조폭적’ 휘둘림에 죽어가는 강 둔치에는 항의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거대한 포크레인과 오만한 권력에 대비되는 작은 행렬과 몸짓들.. 이 목소리들이 저 강 하나를 넘기에도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한국사회...
사마천은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소통하지 않는 권력의 횡포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는 모두 한 말씀씩 근황들을 나누었는데 “남편은 못 오고 남편친구를 짝사랑하여 따라왔다”는 학생도 있고,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의 강의에 대한 감동적 소감과 더불어 “다음에도 불러만 주시면 함께 하겠다”는 야무진 다짐들로 채워졌다.
“ 해골이 가장 아름답다는 교수님말씀의 의미는 본질, 즉 실체가 아닌 덧붙이고 가미된 것들의 ‘허위’를 생각하게 한다.”는 내 발언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한 학생, 굳이 나를 찾아 귀를 열게 하시더니, “교수님의 해골이야기는 그런 인문학적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적 현상을 말한 것뿐이다. 거기에 인문학적 의미를 부과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고 기어코 교정해 주셨는데, 허나, 건축학전공인 교수님의 강의가 어떠하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학생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자유로울 수 있고 교수의 해석을 넘어서는 해석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 공부하는 자세 아닌감요? ㅎㅎ
그러나 내가 굳이 이 사실을 끄집어내는 것은 이 학생께서 근황 소개할 때 긴박한 처지(?)를 호소하였기 때문이다. “조울증인가, 우울증인가 상태니 관심 좀 가져달라” 고..안쓰럽고 처연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웃겼고 조울증과 우울증의 차이와 또 무슨 ..증까지 토론을 벌이며 웃었지만 이거 웃을 일 아니다. 많이 아픈데, 아프다는 것을 말하기도 힘들 때, 사람들은 때로 농담처럼, 남의 말 하듯 아픔을 표현하기도 한다.
‘기쁨조’라도 꾸려 이 학생 위문단을 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한 자락...
서울은 스트레스가 일상화 된 공간임이 분명하다. 귀성하는 진입로부터 차량은 정체되고 도시의 거리는 어두운 먼지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래도 미륵대원 옆 맑은 물이 흐르던 골짜기와 토실토실하던 버들강아지들로부터 받아 온 봄기운은 한동안 내 정서적 신진대사를 정화해주리라. 그리고 다음의 답사여행 때 ‘빈터’로 비워내고 다시 멋진 교수님의 강의와, 다양하게 훌륭한 ‘학생’들의 만남으로 풍요로워지리라.
좋은 여행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