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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똥'의 정체
공고지
2012. 1. 14. 08:56
겨울이 시작될무렵 집안에서 이상한 것이 자꾸 눈에 띄기 시작했다.
깨알보다 작은, 규격도 동일하고 색깔도 똑같은 것이 점점이 떨어져있었다.
만져보니 아무런 질감도 없이 딱딱하고 냄새도 없었다.
처음에는 컴퓨터가 놓여진 의자아래에 대여섯개씩 보이더니 점점 많아지는가하면 쇼파아래를 넘어 심지어는 쇼파위를 지나 안방에서도 발견되었다.
벌레라면 질겁을 하는 딸이 신경쓰여 청소기로 빨아낸 후 혼자 며칠을 전전긍긍하다 “이거 무슨 벌레똥 아냐? 혹시 바퀴벌레똥?” 남편에게 물어봐도 “벌레똥은 아닌 것 같은데..이상하네 세스코에 한번 물어봐” 라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 하기사 몸에 좋다면 벌레라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니 집안에 벌레똥 좀 나온다기로서니 크게 신경쓰일 사람도 아니다.
어차피 집안청소는 내가 하는 것이니 늘 발견하는 것도 내 눈이고 이놈의 정체를 파악하여 조치를 취해야하는것도 내 몫이었다.
그날부터 아침에 눈떠서 주방으로 나오면서부터 습관적으로 이 까만점같은 놈들이 오늘은 얼마나 나타났는지를 살피는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그놈들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징그러움에 히스테리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까만점 같은 게 집안에 보이는데 이게 뭘까요?’ 라는 질문이 있고 ‘아마 바퀴벌레 똥으로 짐작됨’이라는 댓글까지 달려있어 이제 바퀴벌레 똥일거라는 확신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갈색바퀴벌레가 휙휙 날아다니며 집안곳곳에 똥을 남기는 모습이 상상되고 입을 벌리고 자다가 그 똥을 받아먹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공포에 쌓이기도 했다.
급기야 세스코에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상냥히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간의 정황을 줄줄 풀어 설명했다.
“이게 꼭 까만 볼펜으로 점을 콕콕 찍어 놓은 것 같이 생겼어요”
“바퀴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세스코를 바로 이용하시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먼저 바퀴벌레가 집안에 있는지를 확인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약국에서 끈끈이를 사다가 집안 구석구석에 놓아보시고 끈끈이에 바퀴가 한 마리라도 붙으면 이미 집안에 퍼져있다는 얘기니까 그때 세스코를 이용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비용을 걱정해주는 직원의 사려에 감사하며 나는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끈끈이를 사왔고 가장 많이 발견되는 컴퓨터아래, 쇼파주변, 냉장고아래, 안방 작은 방까지 구석구석 설치(?)했다. 설치도중에 이놈이 또 보여 한놈을 끈끈이에 콕찍어 놓아두기도 했다. 동족의 변을 보고 몰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내가 의도적으로 붙여놓은 놈만 그대로 외로이 있고 예상했던 바퀴는 붙지 않았고 여전히 그놈들은 여기저기서 눈에 뛰었다. 심지어 방금 지나간 자리에서도 발견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뻔히 눈뜨고 있는 사이에 순식간에 신출귀몰하게 들락거리는 이놈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징그러운 것들도 익숙해지면 재미가 붙는가, 어느새 나는 이 까만점같은 놈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 들었고 이놈을 주워 변기물에 띄워도 보고 테이프로 붙여 올리기도 하며 약간의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거 봐 또 나왔어” 나는 끝없이 이놈을 찾아내고 이놈들은 그런나를 놀리며 자꾸 자꾸 나타났다.
한달이나 지났을까, 아파트소독을 담당하는 아줌마가 방문했다.
나는 다시 아줌마에게 언제부터 이 이상한 것들이 나타났는지를 설명했고 어렵지않게 그놈을 찾아내 아줌마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 전문가인 아줌마조차 바퀴똥은 분명 아니라한다. “혹시 어디 구석에 곡식같은 게 있는 거 아닌가요? 곡식에서 나온 벌레똥일지도..” 그러나 비교적 깔끔을 떠는 내가 집안구석에 곡식이나 음식물을 썩게 놔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줌마가 바퀴벌레나 개미따위를 퇴치할 수 있는 진짜 똥같은 약제를 묻혀 주고 간 종이를 잘라 구석에 밀어넣으며 혹여 곡물같은게 썩고 있는지 살펴도 보았다.
어느 새 겨울은 깊어지고 이사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을 잡아 집안정리를 시작했다.
쓰레기통도 씻어서 햇볕에 말리고 이불도 하나씩 빨아 널었다.
화장실용 플라스틱 신발을 세제에 담궈두고 실내화도 모두 세면장에 던져넣어 빨기 시작했다. 그런데 겨울실내화를 빨기 시작하는데 그놈의 ‘까만똥’이 줄줄이 나오는게 아닌가?
‘아, 이 징한 놈들이 이 안에서 알을깠나보다’ 치를떨며 신발을 뒤집는데 눈에 번쩍 들어오는게 있었다. 실내화의 바닥에 다닥다닥 오돌토돌 붙은 무생물의 까만 점같이 작은 플라스틱들...
세상에! 바로 이거였다.
필경 미끄럼방지를 위해 붙여놓았을 이 조악한 물질들과 두달가량 심리적전쟁을 한 것이다.
나는 솔을 들어 실내화바닥을 세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까만 놈들이 점점이 세면장바닥에 깔렸다.
깨알보다 작은, 규격도 동일하고 색깔도 똑같은 것이 점점이 떨어져있었다.
만져보니 아무런 질감도 없이 딱딱하고 냄새도 없었다.
처음에는 컴퓨터가 놓여진 의자아래에 대여섯개씩 보이더니 점점 많아지는가하면 쇼파아래를 넘어 심지어는 쇼파위를 지나 안방에서도 발견되었다.
벌레라면 질겁을 하는 딸이 신경쓰여 청소기로 빨아낸 후 혼자 며칠을 전전긍긍하다 “이거 무슨 벌레똥 아냐? 혹시 바퀴벌레똥?” 남편에게 물어봐도 “벌레똥은 아닌 것 같은데..이상하네 세스코에 한번 물어봐” 라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 하기사 몸에 좋다면 벌레라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니 집안에 벌레똥 좀 나온다기로서니 크게 신경쓰일 사람도 아니다.
어차피 집안청소는 내가 하는 것이니 늘 발견하는 것도 내 눈이고 이놈의 정체를 파악하여 조치를 취해야하는것도 내 몫이었다.
그날부터 아침에 눈떠서 주방으로 나오면서부터 습관적으로 이 까만점같은 놈들이 오늘은 얼마나 나타났는지를 살피는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그놈들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징그러움에 히스테리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까만점 같은 게 집안에 보이는데 이게 뭘까요?’ 라는 질문이 있고 ‘아마 바퀴벌레 똥으로 짐작됨’이라는 댓글까지 달려있어 이제 바퀴벌레 똥일거라는 확신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갈색바퀴벌레가 휙휙 날아다니며 집안곳곳에 똥을 남기는 모습이 상상되고 입을 벌리고 자다가 그 똥을 받아먹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공포에 쌓이기도 했다.
급기야 세스코에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상냥히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간의 정황을 줄줄 풀어 설명했다.
“이게 꼭 까만 볼펜으로 점을 콕콕 찍어 놓은 것 같이 생겼어요”
“바퀴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세스코를 바로 이용하시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먼저 바퀴벌레가 집안에 있는지를 확인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약국에서 끈끈이를 사다가 집안 구석구석에 놓아보시고 끈끈이에 바퀴가 한 마리라도 붙으면 이미 집안에 퍼져있다는 얘기니까 그때 세스코를 이용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비용을 걱정해주는 직원의 사려에 감사하며 나는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끈끈이를 사왔고 가장 많이 발견되는 컴퓨터아래, 쇼파주변, 냉장고아래, 안방 작은 방까지 구석구석 설치(?)했다. 설치도중에 이놈이 또 보여 한놈을 끈끈이에 콕찍어 놓아두기도 했다. 동족의 변을 보고 몰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내가 의도적으로 붙여놓은 놈만 그대로 외로이 있고 예상했던 바퀴는 붙지 않았고 여전히 그놈들은 여기저기서 눈에 뛰었다. 심지어 방금 지나간 자리에서도 발견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뻔히 눈뜨고 있는 사이에 순식간에 신출귀몰하게 들락거리는 이놈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징그러운 것들도 익숙해지면 재미가 붙는가, 어느새 나는 이 까만점같은 놈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 들었고 이놈을 주워 변기물에 띄워도 보고 테이프로 붙여 올리기도 하며 약간의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거 봐 또 나왔어” 나는 끝없이 이놈을 찾아내고 이놈들은 그런나를 놀리며 자꾸 자꾸 나타났다.
한달이나 지났을까, 아파트소독을 담당하는 아줌마가 방문했다.
나는 다시 아줌마에게 언제부터 이 이상한 것들이 나타났는지를 설명했고 어렵지않게 그놈을 찾아내 아줌마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 전문가인 아줌마조차 바퀴똥은 분명 아니라한다. “혹시 어디 구석에 곡식같은 게 있는 거 아닌가요? 곡식에서 나온 벌레똥일지도..” 그러나 비교적 깔끔을 떠는 내가 집안구석에 곡식이나 음식물을 썩게 놔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줌마가 바퀴벌레나 개미따위를 퇴치할 수 있는 진짜 똥같은 약제를 묻혀 주고 간 종이를 잘라 구석에 밀어넣으며 혹여 곡물같은게 썩고 있는지 살펴도 보았다.
어느 새 겨울은 깊어지고 이사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을 잡아 집안정리를 시작했다.
쓰레기통도 씻어서 햇볕에 말리고 이불도 하나씩 빨아 널었다.
화장실용 플라스틱 신발을 세제에 담궈두고 실내화도 모두 세면장에 던져넣어 빨기 시작했다. 그런데 겨울실내화를 빨기 시작하는데 그놈의 ‘까만똥’이 줄줄이 나오는게 아닌가?
‘아, 이 징한 놈들이 이 안에서 알을깠나보다’ 치를떨며 신발을 뒤집는데 눈에 번쩍 들어오는게 있었다. 실내화의 바닥에 다닥다닥 오돌토돌 붙은 무생물의 까만 점같이 작은 플라스틱들...
세상에! 바로 이거였다.
필경 미끄럼방지를 위해 붙여놓았을 이 조악한 물질들과 두달가량 심리적전쟁을 한 것이다.
나는 솔을 들어 실내화바닥을 세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까만 놈들이 점점이 세면장바닥에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