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수입 신부들'

공고지 2009. 3. 14. 09:56

        현대판 ‘노비문서’ 결혼 이주여성들

                                        


‘수입 신부들’

 거울 앞에 섰다. 뜬 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거울을 닦아냈다. 낯선 얼굴이 보였다. 퀭하니 들어간 눈언저리와 아무 감정도 없는 눈동자, 부쩍 숱이 적어진 듯한 머리칼. 이것은 내 얼굴이 아니다.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넌 누구지?

 나는 거울 속에 대고 물었다. 거울 속 낯선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내 쪽을 쳐다보았다.

 거울에서 눈을 떼고 내 몸을 내려다모았다. 앙상하게 드러난 쇄골과 자그마한 가슴, 일자로 길게 늘어진 배꼽, 납작한 불두덩과 결이 고운 거웃. 동그란 무릎 뼈에서 부터 뻗어난 가느다란 종아리. 그러다 문득 가슴패기에 난 푸른 멍에 시선을 붙잡혔다. 그리고 발목과 손목에 남은 붉은 전선자국도 보았다.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따뜻했다. 내 몸은 피가 흐르고 숨을 쉬는 육체였다. 묶이고 갇혀야 할 고깃덩어리가 아니었다. 나는 수건에 거품을 묻혀 몸을 닦기 시작했다. 가능한 부드럽고 정성스럽게. 거품이 일면서 내 몸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도 같았다. 딱딱해진 복사뼈가, 욱신거리는 손목이, 생채기 난 발목이, 고통을 잊고 발그라니 달아올랐다.

나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해화야!”

  내 이름은 해화야. 림, 해, 화. 나는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천운영, 『잘가라 서크스』 문학동네 93


 발췌한 소설은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한국남성과 결혼하게 된 조선족 여성의 독백이다. 지난 5월21일 한겨레신문에도 ‘사고 팔리는 신부들’이라는 제목으로 이주여성들의 결혼실태를 보도한 바 있고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결혼 이주여성들의 인권실태가 드러나고 있지만 지난 3월, 베트남 여성의 자살이 보여주듯 이들의 삶은 인권과는 멀다.

‘베트남 숫처녀’ ‘초 재혼 상관없음/나이 상관없음. 장애인 가능’ ‘후불제’ ‘염가제공’ ‘도망가면 책임짐’ ...이것이 결혼을 주선하는 업체들이 내 건 현수막이다. 이러한 광고들을 보다 못한 여성단체들이 “성 인종차별적 국제결혼 현수막 철거 공동행동”을 구성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미 국무성 인신매매조사보고관이 ‘베트남 여성 도망가지 않습니다.’ 라는 현수막을 근거로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인신매매성을 고발하면서 한국정부도 당황하여 현수막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한겨레신문과 이주여성인권센터가 공동 기획한 한겨레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한국남편의 폭행에 견디다 못한 한 여성의 소문이 돌자 ‘500만원에 넘기라’ 에서부터 ‘200만원’으로 다시 ‘50만원’으로 이 여성의 ‘몸값’이 변동되고, 배추포기 거래하는 중간상인들처럼 브로커가 몰려들었다는 어이없는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 여성 안나(22)씨는 결혼정보업체에 속아 한국인과 결혼했다. 마닐라의 한국인 운영 결혼정보업체는 남편을 “30대 후반의 엔지니어”라고 소개했다. 다음날 결혼식 올리고 한 달  뒤 한국에 왔더니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엔지니어라는 남편은 트럭 야채상이었고, 나이는 결혼 전 들은 것보다 10살이나 많았다. 어떤 결혼업체는 물정 모르는 여성들에게 한국에서는 농업이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결혼하면 남편과 단둘이서 살면서 취업도 할 수 있고 친정에 돈을 보낼 수 있다고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이기도 한다.(조선일보,05년3월 22일)


 현재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경우는, 위의 경우처럼 결혼중개업소에 의해 제대로 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고 오게 되는 경우와, 고용허가제나 인맥을 통해 들어와서 비정규직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농촌의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방책)등을 통한 국제결혼의 형태, 또는 연예인 비자 등을 통해 입국하여 성산업에 유입되는 경우 등이다.(이들은 주로 주한미군기지촌에서 생활)

현재 한국 내 결혼 11.6%(9쌍중 1쌍)가 국제결혼이며 배우자의 2%가 외국인 주민등록 소지자이다. 07년 9월 30일 현재 법무부통계에 의하면 1,018,036명의 외국인 체류자중 여성들의 숫자는 약 25만 명에 이르며 이들의 자녀 숫자는 44,258명에 이른다.


인권실태

천운영의 소설에서도 보고되었던 것처럼 대표적인 인권문제는 폭력이다.

상담을 하는 여성들에 의하면 한국남편들의 많은 경우가 의처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개 10년~15년씩의 나이차이가 나기 때문에 젊은 아내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들이 돈으로 ‘사’왔기 때문에 언제든 도망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 의혹은 정서적 불안을 부르고 폭력으로 이어진다.


둘째로 인격적인 모독이다. 결혼하기 위해서 든 비용 때문에 한국남성들은 배우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돈 주고 사 온 소유물, 즉 노예처럼 대한다. 당연히 성적 행위에서도 존중이 아니라 소유물로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다.


셋째, 구타보다 더 무서운 경우가 유기라고 한다. 여성의 나라에서 합방절차까지 거친 남자가 한국에 가서 아내초청의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다. 또 한국에서 같이 살다가 남편이 싫다고 무단 가출해버리거나 이혼을 종용하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 비자연장신청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불법체류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혼에 응할 경우 결혼사유가 해소되어 졸지에 강제출국 대상자가 되어 버린다.


넷째, 알코올중독, 정신지체자, 무직자등의 한국남편들인 경우 부인에게 생활비를 벌어오라고 괴롭히고 임금은 빼앗는 경우이다. 결혼이민자들이 결혼해서 한국에 들어올 때는 국적이 취득될 때까지 취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결혼 가정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 법무부가 여성결혼이민자의 취업을 허용하였는데 이것이 많은 경우 여성을 착취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 중 국적취득자는 38%에 불과하다. 남편들이 국적취득 후 도망 갈까봐서, 또는 국적취득신청을 학대 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경우는 보증금을 낼 돈이 없어 국적취득을 못하는 경우다.

여섯째, ‘버려진 여성’들의 유흥업소 유입이다.

요즘 노래방이나 안마시술소에서 이주여성들은 흔히 볼 수 있다. 결혼 이주여성들에게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하며 수수료를 받는 전문 브로커들도 있고 이들은 브로커에게 숙식비조로 월급의 일부를 떼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삼촌’들에게 감금당하며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사례들처럼 이제는 한국에 결혼을 통해 들어온 가난한 여성들이 노예처럼 몸을 팔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은 이중삼중의 굴레에 묶인 채 인간이하의 조건을 강요당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인권의식-‘한국으로의 동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한국염 대표에 의하면 한국정부와 사회가 이주여성들을 위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그 근간이 ‘동화주의’즉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여성들은 실제로 이중적인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호소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무시되는 것에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부자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문화를 말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들 결혼이주여성들에게는 ‘한국화’를 강요하는 이중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가치관이 더해져 한국식 생활태도가 강요되고 음식이나 경조사 등 한국식 문화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결국 문화의 차이 또한 차별로 이어지는 인권침해 현실이다. 더구나 이들의 자녀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겪는 따돌림과 편견도 심각하다.

심지어 지난해 9월에는 베트남 여성을 ‘대리모’로 ‘유용’하여 아이 출산 후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축출이혼’ 당한 사례가 있고 도한 지난 해 7월에는 19세의 결혼 이주여성이 갈비뼈가 부러진 채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으며 올해 초에도 베트남 여성이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한 경우도 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혼도 못하는 것은 ‘자식을 빼앗길까 봐’(42.1%),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서(10.5%), 모국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서(10.5%)라는 것이다.-창원 여성의 전화, [다문화가정의 경제적 복지욕구 조사]2006


정부정책의 필요성

인권단체들은 정부정책의 필요성 및 예방적 차원의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는 국제결혼 중개업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6월 시행을 앞두고는 있지만 ‘중개업체들은 신고 등록’ 하도록 되어있고 이용자의 혼인경력등 신상정보를 정확히 제공하고 수수료 회비 회원명부 등을 보존하도록 했지만, 이주여성인권센터 권미주 팀장은 이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신고 등록제로는 중개업체들의 현황을 제대로 감시 감독하기 어렵기 때문에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한겨레신문 5월12일)

또한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침해에 대처하는 교육과 병행하여 정부와 지자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이주여성 인권옹호를 위한 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법률적으로는 이주여성들에 대해서 가정폭력의 범주를 한국인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이주여성들에게는 성적 괴롭힘과 언어폭력, 이혼종용, 생활방치, 노동활동 강요와 임금갈취 등 고통의 정도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기결혼으로 인해 혼인유지가 불가능한 경우 한국인의 귀책사유를 인정하여 본인의 선택에 따라 체류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법적 보장이 없을 경우 불법체류자로 남아 유흥업소로 유입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가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이외에도 이러한 기본적 법률의 제정이 시급함과 더불어 결혼 이주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찾아간 쉼터 등에서 체류하게 될 때 체류자격을 인정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맺음.

 돈으로 사람을 사는 일이 새삼스러운 행위는 아닐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노동을 파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판매 하는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사람의 신체를 사는 것 아닌가. 결혼 지참금으로 열쇠 몇 개를 챙긴다는 일부의 결혼행태도 인격이 아닌 금전으로 거래되는 것일 테고 성매매는 말할 것도 없다. 외국인여성을 결혼이라는 매개로 매매하는 것은 깨놓고 노골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차이뿐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논리다. 심청이도 돈으로 팔리지 않았는가? (그래도 우리의 교육은 심청이의 효성만 칭찬했다) 안 될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가치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법률을 통한 규제나 조치들이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사실 인권의 문제는 사회적 권력과 맞닿아 있다. 사회적 힘이나, 통념, 지배가치, 관습 등 다양한 형태의 조건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약자가 겪게 되는 차별과 억압이다. 특히 인권의 문제는 경제력의 문제, 즉 가난의 문제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생각이다. 돈으로 모든 가치를 결정짓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발달은 인간의 소외와 차별을 심화시킨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가정폭력의 문제, 성차별의 문제,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 결혼이주 여성 노동자의 문제, 노인문제, 장애인문제에 이르기까지 경제력의 정도에 따라 차별 등 인권탄압의 정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풍토를 어떻게 만드는가의 문제는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인간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같을 때라도 강제되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작동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식코]를 통해서 본 미국과 쿠바의 차이처럼, 경제력의 정도가 아니라 국가가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인간존중의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법률이나 제도 또한 ‘그물망으로 얽혀있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함께할 때 더 풍요롭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위에서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경북대 학생들이 다문화가정의 학습도우미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과 훈련이 되고 아이들에게도 유익한 win-win의 사례로 소개된 것을 보았다. 대학생들의 이런 활동이 하나의 풍토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결혼 이주여성들의 인권문제는 누구나 이론으로는 아는 문제이지만, 누구나 당연히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말로는 ‘다문화’를 말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열기도 하는데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기본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의 고향에도 늙은 농촌총각과 결혼한 베트남여성이 있고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그녀들을 ‘수입신부’라고 말한다. ‘수입’이라는 말이 지닌 비인격적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심코 하는 말, 그러나 실상은 너무나 명료한 상황인식이다. 중국에서 공부한 사촌이 연애를 통해 중국여성과 결혼하겠다고 하였을 때, 작은집은 난리가 났었다. 결국 그들은 결혼하여 중국에서 잘 살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핏줄의식’은 이주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익숙한 주제이면서도 매일 일상에서 접하는 중요한 현실이 되어있다. 내가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