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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을 쫓아버린 콩가루 집안 이야기

공고지 2009. 9. 17. 20:09
 

[독자칼럼] 재범을 쫓아버린 콩가루 집안 이야기 / 김태은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짓는 요소 중 하나인 문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 글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말 잘하면 ‘궤변론자’, 글 잘 쓰면 ‘대학자’가 되고, 학생들은 ‘생기부’에 최대한 많은 활동을 기록하고, 자기 스펙을 한 자 한 자 이력서에 써 넣는 것이 취업준비생들의 최대 관심사다.

하지만 고대 서양사회에서는 글보다 말이 더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글과 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장벽이 있어 둘 다 그다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진 않았지만, 현대사회와 달리 글은 ‘불신 그 자체’였다.


플라톤은 사람, 말, 그리고 글의 관계를 ‘콩가루 집안’에 비유해 표현하였다. 사람과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아버지, 말은 인간, 즉 아버지의 일부를 닮은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 반면, 글은 ‘사생아’에 비유되었다. 글은 인간이 원치 않는, 어쩌다 보니 실수로 남기게 된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가 지적한 글의 최대 한계는 ‘시간’을 담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글이 표현하는 인간과 실존하는 인간 사이에는 극명한 시간차가 존재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도록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글은 변화무쌍한 인간을 동시에 담아내지 못한다.


최근, 투피엠(2PM)의 박재범씨 사건도 글이 가진 한계에서 비롯된다. 한국이란 곳에 처음 발을 디딘 4년 전, 그는 외형만 한국인이지 다른 모든 것들은 ‘메이드 인 시애틀’이었다. 그는 그 당시 그의 모습과 닮아 있던 부산물을 남겨놓았다. 미국에서도 겉은 한국인이면서 속은 미국인인 ‘바나나’ 취급을 받으면서 겉돌았고, 한국에 와서도 생소한 것들을 처음 경험하는데다, 혹독하기로 소문난 박진영씨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혼란스러웠을 19살 그를 생각해 보라. 하지만 누리꾼들은 현재의 박재범이 아닌, 4년 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조차 형성되지 않았던 그의 ‘부산물’들을 보면서 지금의 그를 삿대질하고 있다. 그의 진심이 담긴 사과와, 그동안 몰라보게 커버린 ‘모국’(motherland, 재범군의 다른 글에서 한국을 표현할 때 씀)에 대한 애착을 무시한 누리꾼들의 무분별한 마녀재판으로 그를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낸 것이다.


플라톤의 콩가루 집안 결말은, 예상했다시피 비극적이다. 원하지 않았던 사생아가 삼류영화 속에서처럼 아버지를 칼로 찌른다고 한다. 박재범씨도 마찬가지로 4년 전, 원하지 않았던 사생아에 의해 가슴에 비수가 꽂힌 것이다.


비판 아닌 비난으로 오래전 재범의 모습으로 현재의 재범을 추방해버린 이들이여, 멀리서 플라톤 선생의 호통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김태은 전북 군산시 나운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