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환자
엄마가 2인실에서 5인실로 병실을 옮기던 날이다.
간호하던 언니가 막 침대시트를 다독여 엄마를 침대에 뉘어 드리고 숨도 돌리지 않았는데, 옆 침상의 할머니 한분이 만들어 내는 목소리로 언니를 불렀다.
“거기 오늘 들어오신 분~~ 이리 좀 와보세요.”
언니가 무슨 일인가 하여 “아 예” 하며 그분의 침상으로 갔다.
그분 왈, “여기는 병실이니 조용히 좀 해주세요.”
언니는 얼결에 “예, 저희가 방문객이 좀 많지요?” (우리 엄마의 방문객이 가장 많기는 했다) 하며 미안한 내색을 하자,
“아니 방문객은 나도 많은데 목소리를 좀 조용히 해달라는 거예요.”
라고 정색을 하더라는 것,
그런데 이 할머니는(70세 후반이라던가, 그런데 본인에게 할머니라 하면 펄쩍 뛸 것) 잠시 후 전화기를 들더니, “헬로” 에서부터 시작해서 “야,(Yes,) 야,” 등의 단음영어로 30여분을 통화를 하기 시작하더니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걸어 영어로 통화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교양정도를 온 병실에 알리기 위한 또렷하고도 큰 음성으로.. 통화가 끝나면 “아줌마, 제가 누구하고 통화한 줄 아세요.” 라며 간병인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번사람은 무슨 박사, 또 이번 통화자는 무슨 교수, 무슨 목사.. 궁금할 것도 관심도 있을 것 없는 간병인에게 끝없이 자신의 관련자들이 매우 유명한 지성인들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은 간병인뿐 만 아니라 병실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고 모두가실소할 뿐이었다.
자신의 재산이 엄청나다는 것이며, 미국에 돌아가면 이 병원을 사겠다는 것이며 ,회진하는 의사들을 불러 이름을 적어 의사들이 황당해하자 미국가면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아줌마, 제가 전화를 하면 문병 올 사람이 2,500명쯤 되요” 라는 바람에 동생은 “아이쿠 이거 큰일 났다. 이천 오백 명 오면 당장 승강기 미어터질 테고 이 병동 업무 마비 될 텐데, 당장 엄마 병실 빼야겠다.” 고 익살을 떨고는 배를 쥐었다.
동생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날, 이분이 또 아침 일찍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20여분 통화를 하더니, “ 응 바꿔 봐” 라고 누군가를 바꿔 통화를 하더란다. “Bass, go bad room" 등 여전히 짧은 간단한 단문의 영어로 뭐라 뭐라 통화를 하다 끊은 후 다시 간병인에게 “아줌마, 제가 지금 누구랑 통화한 줄 아세요.”
일일이 맞추기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도 간병인은 잘 대꾸해 주더란다.
“글쎄, 누구세요?”
이 분의 답변, 단연 압권, “제가 키우는 강아지예요”
와!!!! 내 동생, 완전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는...
엄마의 수술 날에 맞춰 들어 온 미국 시민권자인 언니와, 나름 외국계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동생은 끊임없는 영어로의 통화를 들으며 매일 요절복통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우아를 떠는데 링거 줄 들고 복도를 걸을 때 보면 기저귀를 찬 엉덩이가 오리 궁뎅이처럼 볼록 나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으니 혀를 찰 노릇이다.
어쩌면 전화도 '상대방 없이 거는 시늉만하고 혼자 떠들었을 수도 있다'고 병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렇게 ‘거부’에 ‘대인관계도 많고’ 자기가 ‘목사’라는 이 분은 있는 동안 교회에서 온 듯한 세 사람이 딱 한번 다녀간 것 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퇴원한다, 내일 퇴원한다, 계속 밀리는 폼이 입원비가 처리가 안 되는 듯 했고 간병비를 주지 않아 간병인에게 “잘 먹고 잘 살아라, 그 모양이니 면회 오는 사람 하나 없지”라며 악담을 듣고, 새로 들어 온 간병인에게도 끝내 간병비를 주지 않고 또 떼어먹고 갔다는 것이다.
퇴원하는 날, 간병인에게 “딸이 차를 가지고 올 거니까 짐 좀 내려달라고 하여 간병인이 짐 로비에 다 내려주고 마무리까지 대 해주었는데 끝내 간병비는 안 주고 갔다는 것.
그런데 우연히 이 방에서 다른 분을 간병하는 분이 로비에 나갔다가 이분이 떠나는 걸 보았는데 딸이 오기는커녕, 혼자서 택시타고 가더라는 것.
다른 건 다 용서할 수 있지만 그렇게 고생시키고도 간병비를 떼어먹는 것을 보면 나쁜 사람이라고 모두들 뒤 꼭지에 욕을 퍼부었고 겨우 병원비만 냈을 거다. 라는 추측과 아니 그 사람은 돈이 있어도 꼭 내지 않으면 안 되는 병원비 같은 건 내지만, 떼어먹을 수 있는 것은 기어코 떼어먹을 부류의 사람이라는 둥, 숫한 뒷이야기를 남기고 택시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박완서의 소설에 등장할법한 이 비상식적인 엄마의 병실동거인으로 때로는 분개하고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웃었다. 인간만사 참 요지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