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학점 반성!
D학점 반성!
기말성적을 확인해 나가는데 한 과목이 D+이다. 설마, B겠지. 그러나 다시 보아도 분명히 D+이다. 이럴 수가!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지고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 라는 생각, 더구나 어제는 학교에서 만난 다른 이들이 덩달아 ‘잘못됐겠지, 메일 보내보라’는 등 수긍이 안 된다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더욱 기분이 별로였다.
선생님이 나를 왜 미워하시지? 라는 생각에, 이거 역차별 아닌가라는 생각, 결석도 안했는데, 그래도 시험지 앞뒤 다 글자(?) 써서 채워도 냈고, 라는 생각까지, 야속한 쪽으로만 생각이 치달았다. 더구나 다른 분들의 잘 나온 성적까지 확인하니 더욱 속이 뒤틀리는 것..
그렇게 ‘나 기분 안 좋거든,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호들갑떨며 심사를 표출하고 수다를 떨었다.
오늘아침 산길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학에서 5학기를 마치는 동안 성적에 임하는 내 태도는 어떠했는가,
첫 학기에 충천하는 열정으로 과 수석을 하면서 오만해지긴 했다. 그러나 사실 공부하자고 시작한 것이지 젊은 친구들처럼 취업에 성적표를 활용할 것도 아니기에 별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영어 같은 경우는 객관식문제 중 찍어서 맞은 경우가 몇 개 있을 것 같았기에 C를 받고도 무지 감사했다. 그러나 A를 받고도 A+이 아닌 것이 수긍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긴 했다. 다른 과목도 아니고 ‘세상읽기와 글쓰기’라는, 내게 가장 강점이 있다고(오만하게도) 생각한 과목이었고 수업시간에 쓴 글을 모두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대충 스스로 진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상을 빗나갔고 다른 과목이 아니라 내가 가장 가치를 두는 글쓰기과목에 ‘세상읽기’인데, A+이 아닌 것이 납득이 안 되었다. 기준을 알아야 이해가 될 것 같아 질문했고 교수님의 평가방식은 내 기준과 다를 수 있다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내 오만이 부끄러웠다. A를 받고도 수긍을 안 하다니, 이건 정말 오만방자라는 반성! 물론 그때는 장학금관련 오락가락 경계라고 느꼈기에 더 그랬다.
그 후로는 마음을 비웠다. 어차피 전공으로 들어가면서 내용이 깊어지기도 했고 복학생들 편입생들이 들어오면서 겨룰 성질이 아니었다. 그러다 D+이 나온 거다.
경제학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영역필수로 두 개를 들어야 해서 영역으로도 인정되는 전공과목을 수강했다. 인물들을 중심으로 경제사적 흐름을 짚어가는 것은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후반기 들어 이론이 심화되고 그래프와 통계적 지식을 요하는 이론들이 등장하면서 막막해졌다. 나는 도무지 통계니 수학개념들이 나오면 맥을 못 춘다. 더구나 젊은 친구들은 모두 중고등학교에서부터 닦아 온 학습토대가 있고 대개 4학년들인데다 경제학전공자들이니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수강했는지,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순전히 교수님의 ‘살인미소’ (뒤늦게 알고 보니 ‘악명도 있다’는) 에 속았다!! 그리고 어렵다는 생각 하면서도 다른 분은 개인과외까지 받아가며 공부했다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그러니 내가 상대평가에서 F를 받지 않은 것만도 다행일지 모른다. 가만히 솔직하게 들여다보니 이건 결코 내가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이 아니었다. 이러고도 잘 받는다면 학교의 질을 떨어드리는 것이다.
교수의 평가기준은 교수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우리 같은 만학도는 배려되기도 하고 역차별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아줌마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가상해서 배려해주기도 하는가하면, 취업이나 연수 등 성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젊은 학생들을 우선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교수의 재량권일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교수들은 성격적으로도 통계에 바탕 하는 정확한 이론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문학이나 사회학수업도 아닌데 문장으로만 설명해놓은 내 답지는 교수님의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
애꿎은 교수님만 몰인정한 사람 만들 뻔 했다. 교수님도 난감하셔서 D에다 +하나 얹어주셨을 것 같은 생각이 뒤늦게 드는 거다.
반성한다.
남에게는 박하게, 자신에게는 터무니없이 후하게 점수를 매기는 못된 자세에 경종을!
그리고 나를 후하게 봐주거나 격려하느라 “교수님이 무슨 착오를 하신 것 아니냐” “그럴 리가 없다, 메일 보내봐라”는 등으로 내 자존심을 위로해 준 분 들께 감사를!
또한 이 나이에도 써먹을 데도 없는 성적가지고 일희일비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돌아볼 줄 아는(또 잘난 척) 나의 성찰적 자세에도 격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