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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6 권력없는 곳에서 영면하소서!
 

패닉상태란 이런 경우를 말함인가?

머리가 하얗게 비는 듯 멍함- “언니, 노무현대통령이 사망했대.” 라는 문자를 받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뭔가 엄청난 일이 생긴 것 같은 예감에 전율하며 허겁지겁 TV를 켰을 때 노무현전대통령이 실족해서 병원으로 옮겼다는 보도가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자살이구나’ 스치는 생각에 몸을 떨며 몇 시간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이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도무지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어 밤늦게 동네 술집에 앉아 남편이랑 술만 마셨다.

노무현전대통령을 무지 좋아하는 남편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가족친지 모임에서도 누가 그를 욕하면 “노무현 반만이라도 해 보라지, 그만한 대통령이 어디 있었느냐? 고 열을 내던 사람이었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노무현만큼 열정과 진정성,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대통령은 없었지.

‘바보’ 같은 노무현!

나 같은 사람도 퍼지고 마주앉아 맞장을 떠도 될 것 같았던 사람. 대통령도 인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사람냄새 나던 사람.

정치적 비판에 때론 동조하거나 동의하며 원망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미워지지는 않던 사람,

그는 말을 하면 전달이 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얼마나 견딜 수 없었으면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겠는가?  그가 피투성이 되는 동안 우리는 뭘 했는가?


비주류 마이너리티인 그가 주류의 특권을 지닌 메이저리그들의 무대에서 빛났을 때 기득권자들은 대갓집 잔치에 들어 온 불청객 보듯  불쾌해하며 그에게 '빼앗긴' 민심을 못견뎌했다. 얼마나 모욕하고, 비틀고, 뒤흔들었던가. 무소불위로 휘두르던 권력을 또 한 번 ‘고졸출신’ 촌티 나는 비주류에게 빼앗긴 특권층 세력들은, 검찰 언론 정당이 한통속이 되어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옥죄고 조롱했다.

대통령의 ‘품격에 맞지 않는’ 걸러지지 않은 서민의 언어로 '품격' 있는 엘리트들과 집권 내내 싸웠던 그가 대통령자리를 떠나 봉하마을에 돌아간 날의‘아 기분 좋다’라던 외침마저 그들은 보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기린은 뒷발의 힘이 매우 세다고 한다. 그 뒷발에 걷어 채이면 살아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린은 싸움을 할 때는 절대로 뒷발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린의 도의,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사회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법이 비켜가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법도 국민이 만든 것, 국민국가공동체인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24시간 카메라가 그를 겨누는 상황이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동네 사람들 앞에도, 집 밖에도 나가기 어려웠던 압박에, 몸이 아파도 입원할 수 도 없었다. 그가 입원했다면 또 우리의 위대한 언론은 무어라 기사를 만들었을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늘 당당했지만 결코 뻔뻔하지는 못했다. 대통령이 된 것을 후회한다고도 했던 그는 더 이상 구차해질 수 없었기에 오직 하나 마지막 남은 몸을 던져 모든것을 말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국민 여러분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고통스럽게 절규했던 사람. 아무리 소리쳐도 메아리도 없는 벽 앞에서 얼마나 큰 회한으로 통곡했을지..

눈부시게 아름다워 더 가슴 아픈 장미향기 가득한 오월을 두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님, 최고 권력자였으면서 끝없이 도전받았던 척박한 비주류의 권력자로써 ‘권력’이 억압이 되지 않게 하려는 이율배반을 안고 몸부림쳤던 님.

님의 경상도식 사랑은 때로 왜곡되기도 했을 터, 사랑한 만큼 미움이 교차하기도 했다,  훼손되어 가는 민주주의가 억울하고 그 억울함에 원망도 컸지만, 이제  투박하게 웃으며 봉하마을의 촌부로 살아주길 바랬다. 그런 소박한 꿈마저 지닐 수없는 이 땅의 척박함이 슬프고 슬프다.

그는 낙화처럼 홀연히 사라졌지만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짚게 하는 민들레 홀씨 되어 퍼져갈 것이다. 그를 볼 수 없는 것이 애달프지만 ‘바보’를 닮은 우리들은 심장에 아픈 생채기 하나 지닌 체 또 치유의 몸짓으로 살아갈 것이다.


바보 노무현!

부디, 권력 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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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