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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3 매생이국 같은 편안함으로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 감상>


          매생이국 같은 부드러움으로..    

                                               

  안도현의 시들은 편안하다. 의미가 무엇인지 따져 묻고 캐고 할 까닭이 없어진다. 그냥 ‘간절하게’ 때론 ‘철없이’ 철버덕 앉아서 건더기가 있는 듯, 없는 듯, 부드러운 매생이국 마시듯 걸리는 게 별로 없다.

‘연탄재 함부로 밟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연탄 한 장 되어 본 적 있느냐’ 고 했던 시인의 예전 시가 준 따사로움을 배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물을 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편안한 시인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비슷한 연배라서 삶의 편력들이나 기억의 자락들이 공감을 형성하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가벼운 시집의 무게, 간결한 발문까지..


 예상대로였다.

마치 누구에게나 공평한 봄 햇살처럼.. 그리고 또 한편, ‘간절하게’ 마음이 저리기도 했다.

[명자 꽃]의 ‘명자누나’는 어찌 보면 김 용택의 [그 여자네 집]을 보는 듯도 하고 또 어찌 보면 [태백산맥]의 무당 딸 ‘소화’를 떠올리게도 하고, 또 한편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를 떠올리고 70년대 피폐해지던 농촌을 떠나 산업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도 한다. 그러나 왜 당시 농촌의 우리 ‘누나’들을 그려낸 이 땅의 작가들은 그녀들이 대개 ‘영자’ 가 되고 ‘첫 월급으로 빨간 내복 한 벌 사서 보낸’ 후 ‘애비 없는 갓난애를 업고’ 오게 하는지.. 많은 ‘누나’들이 이런 시를 읽으며 별로 상쾌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가장 마음에 남는 시는  [기차]였다. 이 시를 읽으며 울컥 눈물이 솟을 뻔 했다.

‘저 늙은것의 등뼈를 타고 사과 궤짝과 포탄을 실어 나른 적 있다. 허나, 벌겋게 달아오른 기관실을 남쪽 바닷물에 처박고 식혀보지 못했다’.  라는 대목에서 처음엔 평생을 단 하루도 편히 쉬어보지 못했을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식에게 주고 다 주고도 또 줄 것만 챙기는 어머니들...

반복해서 읽는 동안에 또 다른 느낌이 밀려와 울컥했다.

[명자 꽃]에서도 언급했지만 박정희 개발독재시절 ‘산업전사’ 라는 미명하에 장시간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오로지 일만했던 이 땅의 노동자들이 ‘식혀보지 못한 철길’로 길게 누워있는 것이었다.

‘배반하지 못하고 단 한 번도 탈선해보지 못한’ 기차처럼 녹슨 철길위로 그렇게 달려 온 기차..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언제나 과실은 노동자들과는 멀리 있었다. 

[조문] 에서는 돌아가신 고향의 당숙이 떠올랐다. 일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고향마을에서, 배운 것은 없지만 이 집 저 집 울타리 고쳐주고 연장 갈아주고 이 참견 저 참견 하며 다니던 아저씨, 나도 역시 ‘문상도 못했다’ 사는 게 바빠서.

2부로 넘어가자 음식잔치가 펼쳐졌다. [수제비] [무말랭이]를 맛보면서부터 나도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어야 했다. 음식의 양을 많게 하기위해 나물 잔뜩 넣고 쌀은 한 줌이나 넣어 끓이던 ‘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 때문에 나는 지금도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질렸을 법도 한 수제비는 그립다. 언젠가 늦게 귀가한 날 위해 보자기에 싸서 부뚜막에 놓아두었던 어머니의 수제비사발 때문인지... 그러나 예전의 슬프고도 간절한 그 음식들은 맛을 찾기 어렵고 ‘훌쩍이며 떠먹는 밥상 모서리 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가던’ 풍경도  ‘철없이 간절’하기만 하다. 더구나 ‘태어나야 할 아이가 늙은 뱃속에 없는 마을’에 노인들만 쓸쓸히 남아있고 아무도 ‘응답’이 없어서 시인은 [검은 리본]을 달아야 했을까.


 요즘, 시 많이 읽는다. 사실 나름대로 책을 구매하는 것에 꽤 비용을 지불하고 살아온 것 같은데도  시집을 사 본 기억이 오래인 내가 일주일에 한권씩이라니.. .

문득 내 책꽂이 속에 꽂혀있는 시집들을 둘러보았다. 문병란의 [죽순 밭에서]와 [김남주 유고시집] 채광석, 황동규, 김수영, 박몽구, 최영미, 백무산, 박노해...대체로 이렇다. 이러니 수업교재들이 꽂혀있는 최근의 책꽂이에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라는 제목의 김경주 시집, 장이지시집 등이 정서적으로는 낯설 수밖에. 안도현의 시들도 참 많이 인구에 회자되었고 평화롭긴 해도 절박하게 와 닿지는(치열하거나)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그의 신작시들을 읽으니 편안한 언어들이 부담 없어서 좋다


2008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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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