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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6 결혼과 섹슈얼리티 2
 

                      나, 결혼 왜 했지?

  -영화 <어떤 개인 날>1)을 통해 보는 결혼과 섹슈얼리티-  


 단지, 이혼 때문일까? 보영의 일상은 심란해 보인다. 집안을 어질러 놓는 아이도 짜증스럽고 출판사에서는 ‘계약 위반하면 배상’ 운운 원고독촉하고..

도시의 빌딩 앞에서 만난 전 남편은 잠시 걸터앉은 콘크리트 난간만큼이나 냉하게 ‘그새’ 재혼한다고 ‘앞으로 만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분식집을 하는 친구도 ‘이혼 후 태도가 달라’졌다. 심란한 상태에서 만난 독신의 남자친구는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DVD방으로 가고, 보영은 남자의 성적접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어느 날, 여성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연수원에 글쓰기 강사로 참석한 보영은 풍물강사로 온 정남과 같은 방을 쓰게 된다. 보영은 밀린 원고 때문에 노트북을 펼치고 정남은 혼자 맥주를 마시며 자꾸 말을 건다. 심드렁하던 보영은 결국 정남의 술친구로 합류하고...친화력이 뛰어난 정남은 자신보다 위인 보영을 단박에 언니라 부르며 이혼 후 살아온 자신의 성애화를 털어놓는다. ‘비슷한 또래들은 이해하고 맞추고 하는 게 너무 귀찮아’ 연하의 애인을 두었다는 그녀는 “청상과부는 혼자 살아도 나이 든 애 엄마는 못살아. 그 남자랑(연하의 애인) 속궁합이 맞아서 한 달 내내 그것만 했나봐. 그런데 어느 날 차타고 가는데 거울유리에 비친 내가 개 같더라. 도저히 안 되겠다 헤어지자 면서 모텔 가서 정리하자 그런 거여 그러고 만나서는 또 날 샜다. 그리고 술 먹고 전화해서 또 하고, 헤어지자 해놓고 또 만나고, 황홀봉이여” 라는 식이다.


보영이 물었다. “이혼은 왜 했어”


술기운으로 상기된 정남이 답했다

 “애를 안고 있는데, 애가 봐야 될 눈앞이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걸 보고 있는데, 이거 아니다 싶은데, 오른팔로 딱 강타하는 거야(남편의 폭력)사지육신은 멀쩡한데 숨이 안 쉬어져. 보름동안 아파트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밥해주고, 보름마다 맞고 살았거든. 엄마한테도 아버지가 똑같이 그랬어. 똑같이 논매고 밭 매고 들어와도 펌프질해서 물 받아 반찬 만들고 들어가면 아버지가 밥상 엎어버리고 엄마는 손 비비며 다시 허께 이래야 되냐고, 나는 안 그래야지 했는데.. 내가 술을 먹었네. 생전 안 이러는데. 그래 강 때문이구나,(어두운 창밖으로 강이 흐르고 있다) 강이 너무 좋아. 근데 언니는 왜?”


“나? 나는 결혼하면서 나답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 많이 했어 그 남자랑 살면서. 너는 왜 그 남자랑 결혼했어?”


 “그러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남, "내가 왜 했지? 때가 돼서 했나?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시집도 안가고 미친년처럼 살았으니까 효도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내가 그동안 너무 고생했으니까 알아줘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 우리 지영이 낳을라고 그랬나? 우리 아들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진짜 왜 결혼했지?

여자들은 이혼 후 1년 2년 다 틀려. 감히 아우인 제가 봤을 때 언니는 1년이야. 산만큼(혼인 유지한 세월만큼) 살아야 돼. 앞으로 11년. 언니 모습, ‘나는 별로 안 행복해.’ 그래 보여. 미련 있는 것 보여. 딸 걱정도 보여.”


마음이 상하는 보영은 “너는 좋은 무당은 못되겠다. 좋은 무당은 사람을 보듬어줘야지”


라며 내면을 파고드는 정남에게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정남은 집요하게 계속한다.


“언니는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죠? 이러저러한 내 작금의 현실을. 작가들이란 게 그러지 겉으로는 얘기 안하지, 자꾸 거짓으로 자신을 씌우세요. 그럼 아무것도 안 나온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애기가 이걸 보고 있다는 거지요. 애기한테 강요하지 마요 이해하라고.

 언닌 화도 안 내봤지. 전 남편한테 그래봤어? 언닌 최소한 솔직하지 않아. 그래갖고는 글 못써요.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자기 자신한테도 솔직하지 못하면서..피하는 게 능사가 아냐,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돼요. 안 그러면 큰 병들어 그러다가 죽어요. 죽어.”


결국, 후벼 파는 정남에게 보영은 화를 내고 두 사람은 불을 끄고 이불속에서 흐느낀다.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건 정남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감독은 그녀를 일컫기를 ‘저자거리에 혼자 세워놔도 10시간은 떠들 인물’ 이라고 했다. 상업적으로 정형화 된 미인이 아닌 친근한 이웃 같은 여성, 의상도 화장도 쓰레기봉투 들고 나가면 마주치는 이웃집 사람들의 모습이다.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폭행하는 남편, 무미건조한 결혼생활, 숫하게 마주하는 이혼한 여성들의 이야기이고 대체로 그럴 거라고 짐작되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내게 울림을 준 것은 정남이, 자신의 결혼을 스스로도 의아해하는 대목이었다.

정말 왜 결혼했지? 그건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쓰라고?

이건 정말 어려운 조건의 주제다. 성적 담론자체가 여전히 어렵고 쑥스러운데 (비교적 자유로워졌지만) 체험을 드러내어 문자화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여전히 성문제에 있어 나는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태도는 영화에서의 보영을 닮았다. 그녀는 미련을 지니고 있음에도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혼하고 남자친구와 비디오방에 갔을 때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독은 그 장면에서의 보영의 태도를 ‘친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지 들이대는 걸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들이댐’을 거부한 것일까? ‘들이댐’은 욕망의 의사표현이고 보영은 오히려 이혼녀가 아니었다면 ‘들이댐’에 동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녀’라는 사회적 억압이 한층 자신의 욕망표출을 자제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보영의 그런 심리는, 나이는 더 어려도 체험의 연륜이 깊은 정남이 겉껍질을 벗어던지고 푹 퍼질 때 그 일탈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애처로운 몸짓으로도 나타난다.

 삼천포로 빠졌다. 결혼을 왜 했냐고?


 (요 부분은 삭제임다, 궁금해도 도리없음^^)


‘두 사람의 애정을 바탕으로 미래를 구축하는 근대사회의 성, 사랑, 결혼은 각 개인이 실질적인 독립(정치적 경제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은 서로에 대한 구속으로 귀착된다는 것..한국사회에서 친밀성체계에서의 평등함을 특징으로 하는 조형적 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성별간의 경제적,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2) 이라고 했던 조주현의 주장이 공감되는 까닭이다.


아무튼  우리는 ‘별 탈 없이’ 산다.


우리사회의 이 나이쯤 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성적 관계의 소통에  서툴게 살아왔다. 인간적 친밀감과 성적 친밀감은 다르게 나타날 수 도 있다는 것,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도 절감하지만.

그래서 내 딸에게는 결혼 전에 올바른 결혼관을 지닐 것,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도 괞찮을듯, 또는 상황에 따라서는 결혼은 하지 말고 그냥 연애하면서 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과의 느낌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영화에서의 보영도 나와 비슷한 과인 듯 했다. 영화에서 보여 지는 택배기사, 전남편, 남자친구.. 첫 장면이 거슬렸다. 택배기사는 차를 빼달라는 보영의 태도에 발끈한다. 이건 뭘 말하려는 장치일까? (영화 보던 날 감기 때문에 목이 완전 가버린 상태라 감독에게 질문하지 못했다.) 여성운전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기사? 그러나 여성운전자가 아니었더라도 화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보영이 ‘나는 운전이 좀 서툴다, 미안하지만 양해해 달라.’ 고 자신의 조건을 설명했다면, 기사가 그리 화냈을까?  모두 삶에 지치고 힘든 군상들인데..

남자친구에게도 에둘러 속심을 알 수 없게, 또는 미묘하게 보이는 측면 있다. DVD방에서 남자를 무색하게 거절하고서 헤어질 때 “바보야 잘 가라.” 고 하는 것.. 남편에게도 ‘미련’있다면 진작 말하지, 아니면 먼저 냉정해지든가, 모습, 너무 초라했다. 관계도 노력인데 이렇게 우리사회의 사람들은 소통에 서툴다. 특히 성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는 방식은 곧잘 오해와 곡해를 부르고 서툴거나 질척거린다.


보영과 정남의 결혼생활 중 성문제는 어땠을까?

영화에서는 별로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혼한 두 여성이 동병상련의 공감을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에 카메라초점이 모아져있다. ‘여성이 남성과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여성이 다른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기 정체감을 구성하고 성적 주체성을 성찰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3) 고 하겠다.

이런 만남, 성별구분을 떠나서 친밀감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편안함이 참 좋을 때가 있다.


 정남과의 만남이후 보영의 일상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햇살 좋은 날 세탁기에서 꺼내져 탁탁 털어 줄에 걸쳐지는 빨래들처럼 한결 말개져 보였다.

그녀가 이혼한 사람들을(특히 여성들) 대하는, 사회가 만든 이미지들을 당당히 배반하고 자신의 정직한 감정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녀들에게 박수를! 그리고 나의 용렬함에 위로를!


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