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헌법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국가 '원수'
[우리 헌법 바로 쓰기]
우리들은 '국가 원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원수'라는 용어가 매우 특수한 기원과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헌법 제66조 제1항을 보면,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라고 규정되어 있다. 사실 이 '원수(元首)'라는 용어는 우리나라 헌법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1972년 12월 27일의 유신 헌법 때부터 포함되었다.
'원수'는 원래 라틴어에서 기원되어 '수석 원로'와 '국가 제1 공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로마시대 이후 잘 사용되지 않다가 독일 히틀러 시대에 나찌 당이 당수에 대하여 '원수'라는 호칭을 사용한 뒤 다시 널리 사용되었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취임한지 몇 년 뒤 대통령이 병으로 사망하자 히틀러가 대통령을 겸임하고 군정 대권(軍政大權)을 독점하였는데, 이때부터 독일어 중 '원수(Staatsoberhaupt)'는 대통령과 총리의 통칭으로 되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원수제는 폐지되었다.
독일의 원수제에서 알 수 있듯이 히틀러 독재를 연상시키고, 유신 헌법 때부터 헌법에 슬그머니 포함된 역사성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 관련 논란이 많은 현 상황에서 '원수'라는 용어는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국민투표에 붙여' - 맞춤법이 틀린 표현
헌법 제130조 제2항(이하 모두 헌법 조항임)의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에서 '국민투표에 붙여'라는 표현은 '국민투표에 부쳐'로 써야 맞다.
'부치다'라는 단어는 동사 '붙다'에서 파생된 말로도 볼 수 있으나 '용언의 어간에 다른 소리가 붙어서 된 것이라도 그 뜻이 본뜻(붙다)과 아주 딴 말로 변한 것은 그 어간이나 어근의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는 규정에 따라 '부치다'로 표기한다. 이러한 용례로서 '회의에 부치는 안건'이나 '공판에 부치다'라는 표현이 있다. 반대로 '붙이다'는 '서로 맞닿아서 떨어지지 않게 하다'라는 의미로 '게시판에 홍보물을 붙이다', '닿게 하다'의 뜻이다.
제53조 4항의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도 '재의에 부치고'가 맞고, 제72조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도 '부치고'로 고쳐야 타당하다.
헌법은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기본법이며 국민 생활의 근간이 되는 일종의 교과서로서 헌법에 잘못된 맞춤법이 사용되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표현 방식
제126조의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의 '긴절'이라는 용어는 일반인이 평소 들어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난해한 한자고어이다. 또 제53조 제2항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국회에 환부하고'에서 '환부'는 '돌려보내다'라는 쉬운 뜻인데, 일반인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제11조 제2항)"에서 '창설'이란 '어떤 시설이나 기관을 새로 만든다'는 뜻으로서 부적합하게 사용된 용어이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제13조 제3항)"에서 사용된 '불이익한'의 형용사형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제57조의 '비목(費目)'은 '비용 명세'로 용어를 순화해야 한다. 또 제60조 2항의 '주류(駐留)' 역시 난해한 용어로서 '주둔'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한편 제47조 제1항의 "......국회의 임시회는 대통령 또는 국회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에 의하여 집회된다."에서 '집회된다'의 동사형 표기방식은 극히 부자연스럽다. 제120조의 '......이용을 특허할 수 있다'는 표현 역시 매우 부자연스럽다.
또 제67조 제4항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에서 '선거'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같은 헌법에도 "국회는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제41조 제1항)"는 규정이 있는데, 구태여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지위와 신분의 차이를 명확하게 차별화하여 구별 지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마땅히 '선출'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제68조 제1항과 제2항의 '후임자를 선거한다'의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75조, 제76조의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명령을 발할 수 있다'에서 '발할 수 있다'는 '발(發)'이라는 고어 투의 한자식 표기 방식은 극히 부자연스러운 표현으로서 바뀌어야 한다. 제122조의 '의무를 과할 수 있다'의 '과(課)'와 제109조 '풍속을 해할 염려'의 '해(害)' 그리고 헌법 전문의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의 '각인(各人)'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126조의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에서 '이전'이라는 표현은 부적합하게 사용된 일본식 법률용어이다.
여전히 혼선을 빚는 '공포'의 법률 개념
헌법 제53조 6항 "대통령은......확정된 법률을 지체없이 공포해야 한다"의 경우, 필자가 앞선 기고문에서 지적했듯이("대통령이 법률을 서명하면서 서명일자를 쓰지 않는 이유는?", 2009. 8.26) '공포'의 법률적 개념에 대한 혼선에서 이러한 표현이 비롯되었다. 즉, 우리나라에서 관행상 '공포'는 '관보발행'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지체없이 공포해야 한다'는 것은 '지체없이 관보를 발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대통령이 지체없이 관보를 발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됨으로써 대통령이 관보발행업자로 '전락'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더구나 상기한 6항의 말미에는 "확정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 아니할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바, 여기에서도 '국회의장이 손수 관보발행을 해야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공포(promulgation)'의 본래적 의미는 '대통령의 법률 서명 절차'로서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관련 법률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한편 제76조 제5항은 "대통령은 제3항과 제4항의 사유를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사용된 '공포'라는 용어는 '법률 공포'와 상이한 '발표'의 뜻으로 사용됨으로써 혼동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야 한다.
/소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