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己丑)년 소는 벌써 지쳤다. 경인(庚寅)년 호랑이가 바통을 이어 받을 텐데, 설레면서 걱정이다. 백두대간을 내달리는 호랑이가 4대강이 흐트러지는 꼴을 넘겨준 소의 뒤치다꺼리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지친 기축년을 보내는 가슴이 먹먹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기축년에 소처럼 과묵했던 시민사회는 경인년에 펄펄 뛸지 두고 볼 일이다.
올해 시민사회는 여느 해와 달리 과묵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전국을 휘감는 선거 열풍도 없었지만 내 주머니 사정이 서글퍼 다른 이의 희로애락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고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내년엔 다른 국가보다 경기가 더 호전될 거라고 정부가 장담하니, 비로소 이웃을 챙기게 될 겐가. 경기회복이 된다고 일자리가 당장 늘어나는 건 아니라던데, 그래도 희망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겠지. 한데, “경제성장!” 마패 앞에서 전에 없이 위태로워진 이 땅의 생명가치들은 어떻게 될까.
시민단체와 집권당 이외의 정당으로 구성된 ‘4대강사업 위헌, 위법심판을 국민소송단’이 ‘4대강 정비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행정소송과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을 비롯한 전국 4개 법원에 동시에 점수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국민 70퍼센트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정비 사업을 법치주의 근간을 파괴하며 밀어붙이는 정부의 독선과 오만을 심판하겠다고 천명한 국민소송단은 시민들의 의지를 확인한 이상,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로 ‘4대강 살리기’가 아닌 ‘죽이기’ 사업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는 거다. 국민소송단은 필요한 경비를 모금으로 충당하겠다고 다짐한다.
비단 4대강 사업만이 아닐 것이다.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투명한 논의 없이 수뇌부가 정책의 성격을 규정하면 다수를 점한 집권당이 합창하는 정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만일 수뇌부 이외에서 4대강을 이야기했다면 집권당의 똑똑한 선량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정치와 권력이 밀고나가자 다수의 주류 언론이 침묵 또는 왜곡하고 공권력이 기축년의 시민행동을 차단했는데, 많은 이는 독재의 필요충분조건이 무르익었음을 감지했다.
온대산림을 호령하는 호랑이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해야 힘을 가진다. 백두대간에서 비롯되는 강이 산을 넘지 않고 산이 강을 가로막지 않아야 삼라만상이 흥하고, 그래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자연이 살아야 민이 살고, 민이 살아야 국가에 탈이 없다. 곧 기축년 달력이 떨어진다. 지방선거가 있는 경인년의 달력이 걸릴 거다.
(경향신문, 2009.12.2)
http://blog.daum.net/brilsymb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