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세상읽기] 70은 없다 / 이계삼
<오마이뉴스>는 며칠 전 대원외고 입시 풍경을 큼직하게 보도했다. 시험장 입구에는 외제차가 즐비하고, 서울대, 연·고대 가려고 이 학교에 지원한 건 아니라는 학부모의 이야기를 헤드라인으로 뽑아올리니 흥미 만점의 기사가 되었다. 같은날 <한겨레> 칼럼에서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입학사정관제가 끝없는 스펙 경쟁으로 사교육비를 더욱 늘릴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는 그 주요한 근거로 강남 학부모들도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자신처럼) 판단을 정리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육 담론은 사실상 강남 학부모들이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여당이 외고를 폐지하겠다고 칼자루를 뽑아든 와중에도 ‘끄떡없을’ 거라 자신있게 말하고(실제로 다음날 정부가 외고 존치를 발표했다), 자식의 고교 입학시험장에 외제 승용차를 끌고 와서 온종일 진치고 있는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들의 물리력과 놀라운 응집력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가 그렇게 무력화되었고,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그렇게 당선되었다. 캐나다 땅덩이를 몇 개나 살 수 있다는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은 강남의 눈치를 제일 먼저 살핀다. 이런 생각을 굴려가다 보면 우리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한 판단과 결정의 권능을 한 줌도 안 되는 저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글프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것은 사실일까. 우리는 강남의 위력이 작동하는 범위가 ‘실제로’ 어디까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들 스스로가 강남을 신화화함으로써 강남의 권능이 더욱 강화된 것이라고. 그러므로 ‘강남 신화’야말로 우리 사회를 수렁으로 이끄는 ‘나태한 상식’이며, 강남을 올려다보고 강남에 모든 이유를 떠맡기면서 ‘진짜 문제’를 외면해 왔다고 말이다.
강남이 이끌어가는 교육 의제들, 이를테면 최근 들어 이야기되는 외고 존폐 논란이나 입학사정관제, 이제는 한물간 논술 광풍과 고교 내신 변별력 논란들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아무리 넓게 잡아도 상위 30% 안에 드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이 흐름이 어떻게 귀결되든 아무 상관이 없는 나머지 70%의 아이들은? 이들 가운데 절반은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에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위 30%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많은 경우 가난하고, 가정이 성치 못하다. 음식점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거나, 짙은 화장을 하고 쏘다니는 아이들, 거칠고 무기력하며, 오직 자극에만 반응하는 그 많은 아이들을 떠올려보라. 많은 중학교, 전문계고 선생님들은 이들로 인해 아예 수업 자체가 안된다고 호소한다. 이들은 음지식물들처럼 엎드리고 있지만, 때로 무시무시한 사건을 통해 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교육 현장에서 그들은 ‘폭탄 돌리기’ 게임 하듯 기피되는 대상이고, 모쪼록 사고 없이 졸업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교육은 없다.
상위 30%의 마당에는 미친 경쟁만 있을 뿐 교육이 없고, 그 반대편 하위 30%에게는 불량과 일탈이 있을 뿐 교육은 없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도대체 교육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진짜 교육 문제’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교사인 나는 때때로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게 온당한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지경인데,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교육에 미쳐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이계삼 -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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