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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6 귀뚜라미가 본 마지막 황제
 

영화<마지막황제> 감상.


                             귀뚜라미가 본 마지막 황제

                                         

귀뚜라미와 세 살짜리 황제


 나를 기억하시나요? 자금성에서 당신과 함께 평생을 살아 온 귀뚜라미랍니다. 당신이 자금성으로 왔던 세 살 때부터 파란만장한 세월의 바퀴를 돌아 다시 나를 찾아왔던 날까지 나는 당신을 보고 들으며 때로는 안타까워 때로는 그리워서 울었답니다. 귀뚤귀뚤..

호젓한 가을 밤 수천 명 내시들의 고독한 뒤채임과 궁녀들의 한숨이 자금성을 서럽게 하는 밤이면 나는 또 그들과 함께 울어주었지요. 귀뚤귀뚤..

부의! 당신을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답니다.

 ‘유모의 아들’이 되어 성으로 들어오던 날, 조그만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던 모습. 그렇게 자금성 문을 들어서는 순간 세 살짜리 아이는 거대한 권력의 울타리 안에 갇히고 말았지요. 사람들은 이상해요, 자신들의 욕망을 관습이란 이름으로 감추고 엄마젖이나 먹고 있어야 할 세 살짜리 아이를 황제라고 부르며 머리를 조아리고 쩔쩔매는 시늉을 하다니..황태후는 “어린 부의야 너를 천자로 명하노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서거하였고 세 살짜리 황제는 신하들 속을 인형처럼 뛰어다녔지요. 아이에 비해 자금성은 너무 거대하고 황금빛 옥좌는 너무 높고 화려했어요. 황제의 체통 따위 알 바 없는 아이의 천진함은 거대한 성을 일순 침묵에 쌓이게 하였지요. 막막한 침묵 속에서 당신이 날 발견한 거예요.

“귀뚜라미다”

나는 내시의 품안에서 나왔어요. 내시는 나를 당신에게 건넸지요.

“이제 폐하의 귀뚜라미입니다”

자금성도 신하도 모든 사물도 다 ‘황제의 것’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나의 친구, 황제는 황금빛 권력으로 길들여지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유모가 아니고 나의 나비였어요.”
 

그러나 ‘천자’인 당신은 그저 ‘천자’일 뿐, 그냥 개구쟁이로 놀고 싶은 아이였지요. 하기 싫은 목욕을 하다말고 “난 천자다 집에 가고 싶어” 라고 떼를 썼지만 아무도 집에 보내주지 않는 ‘천자’였지요. 목욕통에서 나와 발가벗은 채로 유모에게 달려가곤 하던 당신을 보는 것이 참 안쓰럽고 민망했답니다.

유모가 없었다면 황제가 견딜 수 있었을까요?

열 살이 넘었을 때도 유모의 따뜻한 젖을 빨고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지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도, 집에 가고 싶을 때도 황제는 언제나 유모를 찾았어요.

어느 날, 동생이 ‘감히’ 천자의 옷 색깔로 옷을 입고 ‘형은 이제 황제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도 황제는 유모의 젖가슴을 찾았지요. 유모는 생존방식이었어요. 가엾은 황제..

그동안 바깥세상은 소용돌이 치고 있었지요. 세상이 달라지고 있었던 거예요. 사람들은 세 살짜리를 왕좌에 앉혀두고 꼭두각시 놀음 하는 세상이 아닌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들을 요구하게 된 것이에요.

공화국으로 개편하려는 정치혁명이라더군요. 결국 수 천 년의 왕조시대는 붕괴되고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황제는 폐위된 채 자금성 안에 유폐되어버렸지요.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의 허상을 깬 것은 또 동생이었어요. 황제라는 것을 고집하며 증언해 보이려고 신하에게 먹물까지 들이키게 한 형의 무지가 답답한 동생은 기어코 형을 끌고 궁궐담벼락에 올라서서 밖을 보게 하였고 담 밖은 이미 대통령이 다스리는 공화국이었지요. 공화국의 혁명군사 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성, 안간힘으로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지만 미동도 없는 새로운 권력이었어요.

“내가 지금 황제냐?”고 절규하는 당신에게 신하는 답하더군요. “자금성 안에서만 황제이시옵니다.”

어린 황제는 미친 듯 유모를 찾아 달려가지만 이미 추방당한 유모는 자금성문밖을 나가고 있었지요.

“그녀는 유모가 아니라 나의 나비였어요, 유모! 유모!”

거대한 담 벽 사이를 달리며 유모를 애타게 불렀지만 자금성은 넓고 아득하기만 하고 달리는 아이는 광막한 사막에 찍힌 하나의 점 같이 작고 무력했지요.


영국인 가정교사

 공화국에 의해 궁정거주만 허용된 당신은 살아있는 어린 허수아비였을 뿐이었지요. 달라진 세월 따라 황제이외의 남자라곤 내시밖에 없던 자금성에 새로 온 사부는 영국 사람이었어요. 주워들은 얘기에 의하면 대영제국의 식민부관리 성격이었을 거래요. 식민통치 이력이 찬란한 영국은 선교사 등을 다른 나라에 많이 보내던 때였던 거예요. 양복을 입고 변발을 하지 않은 그는 미국 대통령이 표지에 실린 서양 잡지를 볼 수 있게 하였고 ‘변발은 생각을 제한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자전거를 타고 궁 안팎을 들락거렸지요.

 어느 날 당신은 어머니의 자살소식을 들었어요. 당신에게 어머니는 세 살에 ‘유모의 아들’로 안겨 성안으로 들여보낸 사람이고 마약을 복용하다 자살한 원망스러운 사람이지요. 그러나 어머니의 주검을 보기위해 성 밖으로 나가려던 당신은 거대한 대문 앞에서 군사들에게 저지당합니다. 격분을 참지 못한 당신, 품안에 있던 애완동물 생쥐를 성문에 팽개쳤지요. 그 생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와 가정교사 뿐 이었지만  당신이 유모의 젖가슴을 잃은 뒤, 보드라운 털을 가진 하얀 생쥐를 늘 품에 안고 있었다는 걸 잘 알지요. 그런 생쥐를 팽개치다니.. 하마트면 귀뚜라미인 나도 그 꼴이 될 뻔 했지요. 지금도 간담이 서늘하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다시 지붕위에 올라가 ‘집에 가고 싶다’고 시위를 벌였고 가정교사 존스톤도 혁명 군사들에게 항의합니다. “황제는 볼모나 다름없다, 성을 못나가는 건 황제 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소년이다” 황제제도의 모순도 마구 퍼붓습니다. 그때 판관은 말했지요.

“중국은 인민들의 정서상 상징적으로 황제가 필요하다”고

그 후 나는 알게 됩니다.

당신이 침대 밑에 가방을 숨겨두고 옥스포드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어느 날은 수 천 년 나라의 관습이었던 변발을 뎅강 잘라버리더군요. 떨어진 변발을 원용황후가 집어 들었고 그것을 건네받은 후궁 문수의 말이 귀뚜라미인 내가 들어도 참 의미 심장 하다라고요.

“무겁군요.”

그러나 변발을 잘라냈다 하여 궁정 담 밖 한 치의 땅에도 미치지 못하는 권력과 속박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어요.

당신에게 신문물을 깨우치게 해 주고 세상을 넓게 인식하게 해 준 가정교사, 존스톤은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었지요. 결국 존스톤도 떠나보내야 했던 다감한 성격의 당신은 그가 떠나던 날 악대를 꾸려 작별의 노래를 연주해주었지요.

그리고 당신은 올가미로만 작동하는 부패한 환관제도에 분노하며 이천 명의 환관들도 떠나보냅니다. 성에서 떠나던 날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잘려진 성기를 들고 나가더군요.


황후와 후궁


1924년 궁 밖의 세상은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황제는 추방되었지요.

한 번도 나갈 수 없었던 성문은 그때서야 열렸고 공화국 기는 내려졌더군요.

평민이 된 당신은 두 아내를 데리고 텐진으로 도피합니다. 텐진으로 갈 수 있게 연결한 것은 사부 존스톤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존스톤은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한 나라의 황제를 더욱 초라하고 피폐하게 만든 원인제공자이기도 한 것 아닌가요? 대륙침략을 획책하던 일본은 당신의 처지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국의 황제로 당신을 앉혀놓았지요. 결국 일본에 의해 만주국의 황제임명이 된 모양새이지요. 이것으로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앞잡이’로 소련군에게 체포되고 중국당국에 인계되어 죄수번호 981번 ‘전범’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고요.

그동안 당신의 두 아내의 처지 또한 말이 아니게 되었지요.

특히 열일곱 살에 황후가 된 후 당신을 사랑한 원용의 일생은 참으로 불행했지요. 12살의 후궁 문수는 그래도 당찼다고 할까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친 문수는 이미 황제도 뭐도 아닌데도 후처가 되어있는 처지를 거부하며 이혼을 요구했으나 당신은 “아무도 나와 이혼 할 수는 없다” 고 했지요. 그러나 어둡고 비오는 밤, 현관문을 박차고, 우산도 집어던지고 비속을 걸어가던 문수는 어디선가 자유로운 여인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원용은 떠나지 못했지요. 더구나 당신을 획책하기 위해 들어 온 일본 스파이에 의해 아편 중독이 되어갔지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이 얼마나 바보가 되어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당신의 모습에 절망하며 피폐해진 것이지요. 당신이 일본의 각본대로 만주국황제가 되던 날, 파티에서 “당신은 장님이라”고 냉소하며,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꽃잎을 뜯어먹었다지요. 그렇게 외로움과 현실에 절망하며 병들어갔지요.

황후였던 여인과 후궁이었던 여인은 당신과의 인연을 그렇게 끝내고 말았네요.

유모의 품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자랐던 당신, 어느 것도 주도적으로 사고하고 개척하지 못하는 유모보이였고 결국 나약한 지식인이 된 것이지요. 성장의 외로움과 의존성은 우유부단하면서도 자기밖에 모르고 그럼에도 심리적으로는 아내들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불화는 예정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직도 당신은 모르고 있더군요.

당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난 정원사요!


 여전히 황제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신은 죄수복을 입고서도 치약도 짜주고 신발 끈도 묶어주며 자금성시절 신하였던 자의 시중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지요.

감옥의 소장은 그런 당신을 한심해하며 철저한 교정을 통해 교화하려했지요.

소장은 “너희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전쟁 범죄자이다. 구제여부는 태도에 달렸다”고 했지만 당신은 생쥐 한 마리를 죽인 적이 있을 뿐, ‘전쟁범죄자’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요. 권력과 부귀영화를 잃을 것이 두려웠던 당신, 그래서 황제를 어두운 감방에 두고 죄인으로 다루는 것이 참을 수없이 치욕스러웠고 혼란하고 절망스러웠지요. 자살도 하려했고 ‘가족을 떠나 살아 본 적이 없다’고 하소도 해보았지만 비웃음만 돌아왔고요.

안타깝게도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늦은 자각’으로 후회를 남기는군요.

10년이 흐른 후 비로소 스스로를 묶었던 허위와 착각을 벗은 후 ‘완전교화’되어 특사로 석방된 당신은 정원사가 되었더군요. 자전거를 타고 배추를 고르는 당신의 모습은 영락없는 촌부였지요. 길거리에는 모택동의 사진과 붉은 기가 펄럭이고 그 행렬 앞에 끌려가는 인민재판 회부자들 속에 감옥소소장이 보였습니다. 당신은 너무 놀라 달려가 외쳤지요. “내가 아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시위지도자가 물었어요. “너는 누군데?” “나는 정원사요” 그들은 비웃었고 당신은 밀쳐져 쓰러졌어요. 어제 ‘반동’인 당신을 교정하려 애쓰던 그가 오늘 ‘반동분자’가 되어 혁명군에게 끌려가다니.. “혁명은 전복을 의미하지만 새로운 피의 시작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붉은 기는 휘날리고 어린 여학생들은 일사불란한 몸짓으로“반동분자 처단하라”고 구호를 외치는 한낮의 거리에서 당신은 망연해졌지요.


 어느 맑은 날, 당신은 혼자서 가끔 찾던 자금성 안에 들어왔지요.

50여년쯤 전 당신의 자리였던 옥좌로 걸어 올라가는데 아이가 외쳤어요.

“거기는 들어가면 안돼요”

“너는 누구냐?”

“우리 아버지는 자금성 경비원이에요.”

“난 여기 살았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난 황제였다”

“증명해 보세요.”

그러자 당신은 약간 굽어진 허리를 세우고 성큼성큼 걸어 올라와 황제의 옥좌아래에서 내가 담긴 통을 꺼냈어요.

그리고 나는 반갑게 당신의 손으로 기어 나왔지요.

우리는 그렇게 해후했고 당신은 나를 통에서 꺼내어 공화국의 미래가 될 아이 손에 올려준 후 영원한 극락의 세계로 떠났어요. 다 가질 수 있었던 권력의 굴레를 놓는 순간에 당신은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이지요. 나는 당신을 마음깊이 애도합니다. 귀뚤 귀뚤 귀뚜르르르...


 2009년 오늘도 자금성에는 21세기를 사는 관광객들이 온답니다.

안내원은 21세기의 목소리로 당신이 앉았던 옥좌를 설명하지요.

“이곳이 황제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앉았던 황제는 마지막 황제 아신자로 부의입니다. 3세 때 즉위하여 1967년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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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