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최초로 본 영화는 아마 ‘두견새 우는 사연’이었던 것 같다. 내용은 뒤섞여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은 분명할 것이다. 당시 윤정희, 남정임, 문희라는 3명의 여배우와 신성일, 신영균, 최무룡 등 요즘친구들은 이름도 들어 본 적 없을 수 있는 배우들이 영화계를 주름잡던 때였다. 어느 배우를 좋아하느냐는 질문과 그 답이 마치 어떤 이념을 지니고 있는가를 주장하는 것처럼 나와 다른 선호도에 입을 삐쭉거리기도 하던 때였다.
그 때 내가 살았던 동네 앞에는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빈지수’라는 아름다운 냇가가 있었고 우리 동네의 입지가 가장 좋아 매년 여름이면 우리 동네 앞 강변에서 가설극장이 열렸다. 해가 서산마루를 넘길 때쯤이면 가설극장의 스피커를 통해 이미자의 노래가 담장사이로 남실거렸고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제나 영화 보는 비용을 주는 것은 할아버지였고 나는 저녁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할머니의 지청구를 피해 강변으로 달려 나갔다. 일주일쯤 열리던 가설극장은 검은 천막으로 달빛과 별빛을 가리며 열렸고 돈이 없어 못 들어가는 날도 밖에서 별을 헤며 놀다보면 중간쯤에는 다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달뜨게 한 흑백영화는 나의 황홀한 문화체험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도시의 극장에서 마주한 ‘쿼바디스’‘벤허’‘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등의 외화는 엄청난 스케일로 나를 압도했다. 극장을 가득 채우는 큰 키의 배우들부터가 위압적이었고 엄청난 등장인물들의 숫자와 거대한 규모로 화려했다. 뭔가 속이 후련해지는 듯도 하고 위축되는 듯도 한 감정..
그렇게 문화는 ‘규모의 경제’로 나를 잠식해 들어왔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작은 것, 느린 것들을 삼켜버릴 기세다.
자본은 국경이 없다. 따라서 김덕호 논문의 표현대로‘문을 닫아 세계화를 막으면 세계화는 창문으로, 창문을 막으면 케이블로, 케이블을 자르면 인터넷으로 들어올 것’이며, ‘하루 2천만 명에게 공급되는 맥도날드 햄버거, 1년에 5억 명이 시청하는 MTV, 하루 10억 명이 마시는 코카콜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는 영화의 85%가 할리우드’가 된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스크린쿼터축소를 주장하는 논리가 허약하다고 문제제기한 한민호의 논문이 심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싫지만 머리로는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민호는 ‘스크린쿼터 논쟁은 시기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비생산적’이라고 전제한 뒤 ‘한국영화의 창의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를 찾는 것이 더 생산적’임을 주장한다. 또한 스크린쿼터제가 아니더라도 ‘CJ엔터테인먼트가 한국영화발전에 기울이는 노력‘등을 예로 들며 한국영화의 고사를 걱정하는 논리의 ’근거 없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CJ 엔터테인먼트 또한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노력 또한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것임을 모를리 없을 텐데 자국영화산업의’희망‘으로 제시하는 것이 모순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의 현실진단은 공감되는 지점이 많다.
사실 자본주의 상품경제시대에 시장(문화가 시장과 별개로 살아남을 수 있나?)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목숨 걸 수밖에 없고 소비자의 선택을 끌어낼 창의적 기획력이 관건일 것이다. ‘나는 디 워’를 보지 못했지만 그런 점에서 심형래는 성공한 경제인이기도 할 것이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면 아무리 국산품을 사고 싶어도 가격을 비롯한 이해 조건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특히 유기농 농산물은 얼마나 비싼가?) 우리학교의 ‘자연드림’이 아무리 좋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더라도 자연드림의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먹기 쉽지 않듯이.
그러나 경쟁의 균형점에 서 있지 않은 농민들의 생존을 위해 국가는 정책을 고려해야 하듯이 자국의 국민, 문화들도 소비자의 차원과는 또 다른 국가차원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상식’이 된 주장이지만 ‘영화산업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독립영화 예술영화 지원‘ ’시나리오 창작의 활성화‘ 등이 결국 한국영화의 질을 높이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FTA체결의 문제에 신중해야 하듯 스크린쿼터 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의 '원더풀 아메리카' 의식. (0) | 2009.09.24 |
---|---|
존 레논의 Imagine,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상상력의 힘! (0) | 2009.09.17 |
파시즘의 대중심리 (2) | 2009.06.25 |
귀뚜라미가 본 마지막 황제 (0) | 2009.06.06 |
인권 메모. (2) | 2009.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