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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3 위대한 게츠비
  2. 2009.05.03 풍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희망'
  3. 2009.04.30 면접시험을 커텐치고 보면?
  4. 2009.04.29 사람에게 가는 길
  5. 2009.04.29 안티고네의 불복종 1

위대한 게츠비

강의실 2009. 5. 3. 17:11
 

                           '위대한 개츠비' 에 대한 감상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미국은 연합국으로서의 위치를 활용하여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된다. 또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밀려들어 온 이민 노동력과 컨베이어 시스템의 기술력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사회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이 시기 상류층인 톰과 개츠비 들이 누리는 풍요 뒤에는 윌슨들로 상징되는 극빈의 그늘이 시한폭탄처럼 잠재해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철강노동자들과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고 과잉 생산된 농산물가격의 폭락으로 농민들의 고통도 극심했다. 소설에서 개츠비의 파티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상원의원, 담배수입 업자들 속에 영화업자(심의위원등)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도박을 하러 오는 자본가가 등장하면 다음날 그의 회사 노동자들은 ‘잃어버린 도박비용을 만회하기위해 ‘파동’을 겪어야한다는 언급을  통해‘황금기를 구가하던 상류층의 그늘에서 착취당하는 빈곤층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또한 현대문화의 소비와 탐욕의 한편에서 청교도적 근본주의가 충돌하면서 발효된 밀주금지법은 되려 조직범죄집단의 돈벌이수단이 되었다. 개츠비의 재산축적 도구로도 작용한 밀주판매의 이면에서 당시 노동자들은 또 다른 방식의 불만을 토로한다.

“주류제조 판매금지법은 노동자들을 좀 더 부려먹으려는 수단으로 작동되었다. 노동자들로부터 술을 빼앗아가고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클럽을 문 닫게 했지만 상류층은 여전히 즐기고 있다. 그들에게 금지법은 소용없으며 그 자들의 클럽은 신성불가침이다” (『마더죤스』 이옥경 옮김 1978년, 평민사)

 더구나 당시 라디오, 영화 등 문화와 상업매체들의 활성화로 풍요의 불빛은 더욱 화려했을 것이고 윌슨들의 소외는 더 깊었을 것이다. 풍요와 어울리는 ‘매력적’인 여인 데이지와 그의 육촌이며  화자인 닉의 대화에서 빛 속에 내재한 어두움은 빛나는 문체로 암시된다.

   데이지-나는 너무 행복해서 몸이 굳어버릴 지경이에요...그 사람들(전에 살던 곳의)
             내가 없어서
쓸쓸해하던가요?

   닉-도시전체가 황량하던걸, 모든 차들은 뒷바퀴를 검게 칠했고 북쪽해안 일대에서는
           밤새 통곡
소리가 나더군.

 서두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데이지가 가난한 군인이었던 개츠비를 외면하고 택했던 물질적 풍요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개츠비의 표현대로“돈으로 가득 찬”데이지의 과장된 호들갑스러움이 “너무 행복해서” 황량해 보인다.


 우리의 주인공 개츠비는 계층의 한계로 사랑하는 데이지를 잃게 된 후 금지법을 어기며  ‘아메리카드림’의 완성품이 된다. 그리고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었고 불빛아래 모여드는 불나비들처럼 미국사회의 군상들이 날아든다. 그러나 번쩍이는 파티의 조명도, 사람들도, 물질적 풍요도 개츠비의 영혼을 채우지는 못한다. 그의 열망은 오직하나 데이지의 사랑을 찾는 것이다. 그가 불법을 저지르며 이루어 온 모든 부의 근원에는 ‘사랑’이라는 숙명적 열망이 자리해있다. 그러나 이미 흘러가버린 옛사랑을 되돌려보려는 집착은 결국 비극적 파멸로 끝나고 만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를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듯, 아메리카드림의 탐욕 뒤에 도사린 정신적 빈곤은 한방의 총성으로 극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지닌 집요한 열망이 사랑 만이었을까? 좌절된 욕망으로 인한 분노로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데이지가 현재 누리는 것을 넘어서 과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개츠비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고독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반대편의 녹색불빛, 즉 탐욕이 아닌 영혼의 갈망 아니었을까?

2008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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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
 

            풍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희망’

               

100년의 기록


  지난 주 내린 비로 깊어진 가을은 온 산을 붉게 물들여가고 있다.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라 산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정상에서 땀을 식히며 행복한 얼굴로 담소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이 내년 이맘때쯤에도 같은 표정일 수 있을까, 처연한 생각이 든다. IMF때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옷 갈아입고 산으로 오르던 풍경 때문이다. 미국 발 공황을 염려하는 기사들로 넘쳐나는 요즘 ‘미국이 기침하면 감기 드는’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IMF때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고 더 많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말에 가족들과 등산하며 웃을 수 있는 저 사람들이 우울한 가짜 출근족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경제적 정치적 ‘우상’이었던 미국사회를 거슬러 가본다.


 오래 전 노동조합 권장도서목록으로 읽었던 [마더죤스]를 책장에서 다시 꺼내며 누렇게 빛바랜 책장들 사이로 줄 치고 접어둔 흔적이 새삼 옛 기억들을 살아나게 한다. 그리고 그때의 막연했던 아픔과 공감을 넘어 책장의 공백과 행간들에 담긴 시대적 진실을 대면하고 분석해보면서 새로운 공감에 전율한다. 주류의 역사 뒤에는 그 주류를 떠받쳐 밀어올린 비주류들이 존재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주류만 기억하고 기록한다. 1920년에 태어나 1930년 백 살 동안 격동의 한 세기를 살았던 메어리 죤스도 그렇게 비주류로 살다갔지만 세기를 뛰어넘어 한권의 작은 책으로  내 앞에 다시섰다.

 그녀가 30대이던 1867년 미국은 유행성황열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데 희생자들은 대개 가난한 노동자 서민들이었다. 부자들은 ‘자선얼음기금’에 헌금하고 산으로 바다로 떠나버린 도시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갔고 죤스의 남편과 자식 넷도 사망하게 된다. 이후 그는 홀몸으로 오로지 노동운동에 일생을 바치게 되는데 미국의 자본들이 노동력착취를 바탕으로 성장해가던 1869년 미국노동조합운동의 상징인 ‘노동기사단’에 가입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노동문제가 발생하면 이곳에 도움을 요청했던 곳으로 보인다.

 1870년대 미국은 철도노동자들의 대대적 파업이 일어나고 기업은 공황으로 인해 도시로 흘러들어온 사람들(‘무뢰배들’)을 보안관 대리로 임명하여 방화, 약탈을 일삼으며 그 죄를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등 비열한 수단으로 탄압했다.  ‘마더죤스’는 마치 우리의 이소선어머니처럼 온몸으로 맞서며 싸웠고 국가와 인종을 넘어 노동자들이 고통 받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1886년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 때도 일선에서 함께한다. 당시 무정부주의자들도 8시간노동을 주장하며  무정부주의 이념 확산의 도구로 활용하였고 이때 ‘감정을 격하게 만들고 노동자들 탄압의 명분을 제공하기도 한’이들의 결합투쟁으로 ‘노동자들만 재판에 회부되어 지도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녀는 이 모든 광경을 직시하며 아파하고 분노한다.

 더구나 당시 ‘신의권리 베어’ 란 별명이 붙은 석탄업자협회 회장 베어는 경찰대를 더욱 확장 신설해야 한다며 그 정당성을 논한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은 이제 노동선동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으로부터 이 나라의 재산상의 이익을 관리할 권한을 위임받은 남녀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보호되어질 것' 이라는 주장이었다.

 베어의 주장처럼 ‘위임받은 권한’으로 공장들은 성장을 거듭했고 은행들도 성장해갔다.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기 탄광지대에는 비단공장들이 수도 없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광부들은 그들의 어린 딸들을 비단공장 노동자로 보내야했다. 1903년 펜실바니아 방직공장의 파업 시 7만5천명의 노동자들 중 1만 명가량이 어린아이들이었다. 10살도 채 안된 아이들이 엄지손가락이 없거나 손가락 마디가 잘리고 곱사처럼 등이 굽은 모습을 보며 마더죤스는 아동노동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필라델피아의 호화주택들은 어린아이들의 부러진 뼈와 떨리는 가슴위에 세워졌다. 죠지아주에서 노래하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통과시켰는데 노래를 잃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미국의 어린이는 누구나 대통령이 될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철제 우리속의 이 어린 소녀들은 누가 빵조각과 뛰어놀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 언제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신의 기회를 팔아넘기려 할 것이다 미국의 남자시민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그 기회를 이 아이들은 들어 본적도 없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와중과 아이들의 비참한 노동 뒤에서 구리판매로 엄청난 부를 획득한 ‘구리 왕’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노동자들도 끝없는 투쟁 속에서 권리의식을 높여갔고  광산파업, 뉴욕전차종사자들의 파업 등 끝없는 쟁의들이 일어난다. 그런 동안 미국의 자본주의는 조금씩 정교함을 더해가고 ‘위대한’ 미국건설을 위해 ‘기업주를 보호할 법률을 한 시간에 세 개씩이나 통과시키고’ 정교한 노동의 통제를 위해 ‘헌법수정 제 18조, 알코올음료의 주조 판매 유통 불법화’하는 법률도 공포한다. 이런 변화흐름 속에서 ‘투쟁현장이 자신의 집 주소’인 마더죤스는 가는 곳마다 노동자들의 환영 뒤에서 기업주들의 협박, 투옥을 거듭한다. 그리고 1930년 100살로 생을 마감하는 동안 미국사회는 ‘원더풀아메리카’시대로 진입한다.


‘원더풀 아메리카!’


 법률과 기술력과 자본이 일체가 되어 노동의 상품화가 고도로 정교해지고 있는 아메리카의 도시는 잉여가 커지는 만큼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유흥업소는 ‘과거도 없고, 추억도 미래도 희망도 없는 한없이 슬픈, 그렇지만 한없이 비정한’관현악대신 재즈밴드의 경쾌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웨스팅하우스전기회사가 운영하는 라디오방송국이 개국되었고 비행기에서 부활절 설교방송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여성도 흡연을 시작했고 스포츠가 풍부해지고 여성들의 스커트도 조금씩 짧아졌다. 포드자동차의 성공과 포드식 대량생산시스템은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블랭크튼 창문틀’ 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이제 자유가 승리했으니, 이제 정의의 세력이 인류의 도덕을 재건하기 시작했으니, 세계는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물질적 과업에 직면해있다’ 고 광고했다. 볼세비키에 적대적인 분위기는 반공주의를 팽배하게 하였고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항의하는 노동계급의 파업은 울림이 약화되어갔다.

‘정상화’를 바라는 미국국민들은 승전과 기술문명의 발달, 미국 우월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주의적 우월의식으로 미국시민은 1등 아메리카를 꿈꾸었다. ‘미국사회의 행동을 결정짓는 최종적 권위는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기업인 즉, 자본의 힘이었다.

 이렇듯, 1차 대전의 승리 후 급속한 진전을 이룬 미국의 산업사회는 많은 유랑망명객을 ‘아메리카드림’의 꿈으로 손짓했다. ‘이상주의는 몰락, 아메리카주의의 부상’으로 지칭되는 구호처럼 전통적 가치는 밀려나고 아메리카주의로 상징되는 산자유주의의 물결이 잠식했다. 뉴욕트리뷴지는 이러한 분위기를 ‘마치 바람 없는 대양에 떠있는 범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전진하는 듯’ 하다고 평했다.

기업은 번성했고 사람들은 주식을 사고 은행은 돈 장사에 열을 올렸다. 주식투자는 불붙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상품을 만들어 받은 임금으로 다시 그 상품을 구매하는 데에 지불하여 방안을 채웠다. ‘금주법’은 ‘알 카포네’로 상징되는 밀주조직단을 번성시켰고 그들은 방탄자동차로 거리를 활보하며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이렇듯 풍요롭게 흥청이던 환상의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와장창!’ 모든 것이 붕괴했다. 부동산과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이른바 ‘블랙 튜즈데이’다.


풍요와 소비가 빼앗아간 ‘희망’


 마더죤스가 살았던 1830년에서 1930년까지의 미국은 전쟁과 공황과 호황을 다 담아낸 격동의 시기다. 많은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투옥되고 1천여 명이 한꺼번에 같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했다. 그런 한편 1899년 서부지역 광부연맹이, 폭파된 광산문제로 벌이던 투쟁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8시간 노동을 쟁취해내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상점을 세우고 도서관과 병원을 지어놓았고 과부와 고아를 위한 기금을 건설해놓기도 했다. 이 당시를 회고하며 마더죤스는 “술집들 대신에 희망이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1927년 ‘13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2천종의 일간지에 5일 연속 전면광고를 낸’ 포드자동차의 소비 물량공세는 집에 욕조가 없는 노동자들도 포드차를 구입하는 등 임금은 상품구매로 다시 토해내게 된다. 결국 거대한 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자들은 더 많이 생산하고도 더 궁핍해지는 결과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1890년대 열악한 조건에서도 ‘술집들 대신 희망을’ 찾았던 이들은 ‘금주법’이 발효되고 산업의 발전이 극대화된 풍요의 시대에 더욱 분노한다.


주류제조 판매금지법은 노동자들을 좀 더 부려먹으려는 사업가들과 몇몇 성직자들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법입니다. 노동자들로부터 술을 빼앗아가고 노동자들의 단 하나의 클럽이었던 술집들을 문 닫게 했습니다. 부자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술을 즐기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는 오직 경찰서뿐이게 됐습니다.


 마더죤스의 이 주장은 몇 가지 사실을 명료하게 해 준다

 첫째, 수업시간에 공부했던대로 노동자들의 노동력극대화를 위해 술을 자제시키는 청교도적 윤리를 이데올로기화하고 있지만 또 하나 노동자들의 조직 활동 공간을 차단하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술자리는 ‘쌓인 피로를 푸는 공간’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고 조직 활동의 중요한 장이다. 끝없이 파업이 일어나던 이 시대, 술집을 폐쇄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은 노동자들의 조직 작업 차단의도도 내포된 것 아니었을까.

 두 번째로, 노동자들은 임금이 향상되고 노동시간이 줄었음에도 1890년대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찾았던 ‘희망’을 잃어가고 술집을 더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미국의 1920년대는 지금 우리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명료하다. 1970년대 산업사회의 진전과 농촌의 피폐로 유입되던 노동자층들이 그렇고 저임금 저곡가정책을 기반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극도로 착취하여 이루어 온 경제성장이 그렇다. 그럼에도 비정한 속성의 자본은 언제나 이윤을 찾아 떠나고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몰리고 있다. 급속도로 이루어진 GNP성장의 속도는 문화지체현상을 낳고 비상정적이고 일탈적인 문화의 범람을 조성하여, 휘황한 조명 뒤의 그림자를 한층 더 음울하게 만든다.

 ‘혁혁한 투쟁의 일생’을 살았던 마더죤스의 일생을 보면서 가슴 저리게 확인한다.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층은 여러 변수들 속에서도 여전히 기득권자로 군림하고 있고 노동자등 가난한 계층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거대한 층이 형성되어 끝없이 굴레를 씌우고 있는데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악다구니를 하며 살고 있는 군상들과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원더풀 아메리카』 2006, 도서출판 엘피

  *『마더죤스』1978, 평민사


2008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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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

입사 면접시험을 커텐치고 보도록 제도화 하면 어떨까?
그럼 외모로 뽑는일은 없겠지.
그것 참 좋은 방법이긴 한데 대리로 들어오거나 뭐 여타의 문제는
어떻게 하지?

광고사진들, 특히 아동의류 광고들은  백인 아이들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절대 흑인이나 못생긴 사람 안 쓴다.
이런 것도 할당제를 매기든지 하면 어떨까?

<몸의 정치학>에 대한 푸코의 논문을 중심으로 하는 토론에서 제기된 이야기들이다.
오죽 답답하면 학생들이 이런 발상을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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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

사람에게 가는 길

강의실 2009. 4. 29. 18:38
 
08년 봄 작성

 [사람에게 가는 길] 에 대한 감상.

    사람에게로 가는 먼 길           

                             
나의 작은 경험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농촌마을은 가히 공동체적이었다. 일가들이 모여 살며, 같이 지붕 올리고, 모심기도 일렬종대로 하고, 타작마당도 시끌시끌했다. 설날이면 왼 종일 동네사람들이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러 왔고 대보름에는 동네 앞 강변에서 윷놀이 판이 벌어졌으며 가마솥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좋은 기억이 남아있지만 사실 공동체적 삶은 때로는 피로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 시시콜콜해서 간섭되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럼에도 가난했지만 훈훈했던 것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고 ‘산업전사’로 공장노동자가 된 이후 삶은 많이 달라졌다. 열 명이 넘게 사용하던 좁은 기숙사 방은 나름대로 매겨진 서열에 따라 자리가 배정되었고 노동력은 철저히 상품이 되었다. 개인의 신체적 조건, 사정 같은 건 통하지 않는 이윤의 도구로 계산되는 상품..거대한 구조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생활이 되었던 청년시절을 거쳐 팍팍한 노동자의 아내로, 치열한 교육현장의 아이 엄마로 살면서 누적된 도시의 피로감은 ‘오래 된 미래’를 그립게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농촌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하고 엄마 아빠도 농사지으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설득해 본 적이 있다. 아이는 “싫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적극적으로 추진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편리함과 개인주의적인 아파트형 인간이 되어버린 타성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생활 속에서 작게나마 경험해본 공동체의 모습들은 대개, 시작은 좋았지만 끝이 희미했다.


 오래 전 도서관공동체의 실무를 맡은 적이 있다.

D조선노동자들 10여명이 공동 출자하여 작은 공간을 하나 빌리고, 트럭 끌고 상경하여  출판사를 한 바퀴 돌아 기증도 받고 할인가로 구입도 하여 오천 권쯤의 도서를 구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00 도서원]이라 이름 짓고 D조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면서 지역주민들께 무상으로 대여하고 저녁시간에는 노동자들의 모임방 구실을 하였다. 작업복의 노동자들이 퇴근 후 밤늦게까지 들락거리며 책을 보거나 소모임을 꾸려 토론도 하면서 정서를 공유하는 편안한 쉼터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에 영향을 미치던 이 공동체를 기관이 그냥둘리 없는 시대였고 결국 출자했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5-6명이 ‘불온서적소지’등의 구실 하에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도서관은 와해되고 말았다. 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와 가족들이 밀집하여 생활하는 지역에 동네 쉼터로, 자유롭게 책을 접하는 공간으로, 나름의 역할을 했던 그 시절의 따스하고 열정적이었던 기억은 아련한 추억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살 때 유정란을 비롯하여 과일과 채소 등 농수산물을 공유하는 먹거리 공동체 회원으로도 참여한 적이 있다. 만원이었던가, 참가비를 내고 두부나 토마토 등을 주문하면 배달해주었고 간혹 농장을 견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품의 다양성부족과 일꾼들의 인건비등 구조의 한계를 노정했고 지속성을 갖지는 못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이야기니 인터넷상거래가 활발하지 않았고 상품의 사진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주문은 전화로만 이루어지고, 종류도 한정되어 있어서 주부들이 식단을 꾸리려면 어차피 또 시장을 나가야 해결되었고 생산자가 밭에서 일하다가 전화 받고 배달하고 하는 등 너무 수공업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공동체를 주도했던 목사님은 공동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대안학교와 함께 대체의학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며 생활하는 공동체를 꿈꾸고 계신다.

내가 경험한 약간의 공동체적 사례는 지속성을 지니지 못하고 끝났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현실적인 (지속적 운영과 전망이 가능한) 공동체들이 만들어져서 사람들의 삶이 좀 더 풍요롭고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늘 있다. 지금 사는 동네에도 지난 2월에 이사와서보니 통로모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5층짜리 빌라의 열세대가 대상인 통로모임은 월 회비를 만원씩 내어 회식도 하고 정화조등 공동비용도 지출 하는 등 반상회 겸 친목회 형태이다. 그런데 딱  한집이 참석도 않고 회비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며 아홉 집이 모여 그 집을 ‘흉’보고 있었다. 처음 참석해서 잘 난 척 하기 어려워 듣기만 했지만 이런 경우가 난처하다. 사실 통로모임이라는 게 무슨 규정이 있어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 닫고 살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인데 강제된 룰에 동의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것이다. 나도 사실 월 회비를 만원씩 내는 것, 바쁜데 모임참석 등 마땅치 않은 측면도 있지만, 고립되지 않으려고 동참할 뿐 크게 의의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도 공동체를 꾸리는 경우에 개인의 사적공간에 대한 고민이 함께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교훈을 주는 한 예일 것이다.

[사람에게 가는 길]을 보면서 다양한 공동체의 형태가 가능하고 인간의 본래적 특성이나 자유의 기질을 잘 살리면서도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 반갑고 희망적으로 와 닿았다.


다양한 공동체들

미국적인 공동체 트윈옥스는 어쩌면 내게 잘 맞는 형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지도자도, 종교도 강요되지 않는 자유로운(?) 공동체.

트윈옥스와 같은 것이 한국에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멕시코의 로스 오로꼬네스는 ‘잘 만들어진 환경과 교육을 통해 사람이 바른 행동, 경쟁이 아닌 협동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바람직한 교육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나로서는 몹시 부럽고 부러웠다. 교육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차적 조건이 바른 교육, 세상과 사람을 보는 따뜻한 시선을 키우고 삶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믿는 나는 정말이지 우리아이를 보내고 싶은 환경이었다. 더구나 발달장애로 11살이 되었는데도 말을 못하고 평범한 아이들과 행동이 다른 나의 조카가 그런 곳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해지는 곳이었다.


미국을 흠모했던 저자의 친구가 왜곡된 신앙으로 생활하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로우캠프는 소개되었다. 친구에 대한 마음 아픈 기억 속에서 처음만난 후배친구의 남편과 맺은 우정은 이게 바로 우리식의 공동체라는 탄성이 나올 만큼 훈훈했다.

살다보면 좋은 친구도 허전함을 남기는 관계로 남기도 하고 생판 처음 만나서도 만리장성  만큼이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신영복 선생님은 ‘관계의 가장 높은 질은 입장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입장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오랜 친구도 공허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라는 이현주 시인의 시처럼 버릴 수 있는 것, 집착도 욕심도, 도시의 자본주의적 편리함도 훌훌 벗어던질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공동체적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쿠바의 도시지역 협동 기초생산조합(UBPC)도 특별히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 마음에 많이 남는다. 국영과 개인이 (사적소유) 적당히 혼합된 형태로 잘 경영되는 것 같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농림부장관이 400페소, 의사가 350페소인데 농장 책임자가 600페소를 받는 노동력대가의 산출방식이다. 노동을 통한 잉여의 분배가 큰 갈등을 내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쿠바는 가난했고 그 가난에 대한 해석지점이 달랐다. 이를테면 김병수씨는 “경제체제의 문제도 있겠지만 미국과의 적대적 대치상황에 따른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이 주요원인” 이라는데 비해 쿠바의 어느 젊은이는 “쿠바는 경쟁하지 않아도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는 것, 직업이든 뭐든 개인의 선택폭이 별로 없는 것”을 불만으로 제기하며 ‘경쟁 없음’을 문제로 제기한다. 과연 어느 지점이 더 근접한 답일까? 그리고 과연 행복의 지수는 어떻게 차이가 날까? 궁금한 대목이다.

쿠바는 혼란해보였다. 공동체적 삶과 자본주의적 욕구의 혼란이 뒤섞여 힘겨운 듯 했다. 김병수씨를 곤혹스럽게 했던 (아기우유 살 돈도 없으면서 술을 마시고 술값을 씌우는 등 치졸하고 비루한 태도) 빅토르의 모습도 참 가슴 아픈 광경이었다. 그러나 소년 다이에르에게서 나 역시 희망을 보았다. 그래 ‘사람이 희망’이다.


독일 사람들은 근검정신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그런 것 같다. 70년대에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귀국한 어떤 선배도 독일생활을 통해 몸에 밴 검소함이 있었는데 자전거타기를 즐기던 그 선배를 따라 자전거를 타다 무릎이 깨진 기억도 있다. 베를린의 재활용퍼포먼스를 통해보는 독일 사람들의 역량이 큰 교훈으로 와 닿는다.


‘철학이 가장 재미있다’는 캐나다의 여고생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나도 요즘 정치사상사를 공부하면서 재미없게 서술된 철학책이 엄두가 나지 않고 질린다. 강의를 통한 철학자들의 사상이 매우 흥미로운데도 우리의 책들은 왜 대개 도식적일까. 캐나다의 여학생이 읽고 있던 그런 철학교과서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과 함께 ‘국민의 수준은 그 나라의 철학교육의 수준’이라는 김병수씨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철학공부만 해왔어도 지난 12월대선과 4월 총선이 이런 식으로 치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민주주의는 훨씬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내가 일했던 시민단체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길만 보면 ‘000님 좋아하는 길이네’라며 나를 돌아보곤 했다. 내가 오랫동안 함께했던 지역의 시민단체를 떠나올 때도 그 단체의 대표 한분은 그곳의 아름다운 길을 흑백으로 찍은 사진을 곱게 액자에 담아 주었다.

그만큼 나는 길을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하던 일 멈추고’걷기명상을 하는 프랑스의 플럼블리지는 향수처럼 고즈넉하게 와 닿았다. 더구나 또한 불교적 분위기를 좋아하기에 이 장을 읽으며 김병수씨가 참 부러웠다. 아이도 남편도 비용도 걱정하지 않고 나도 그렇게 걷고, 떠나고, 버리는 경험을 하고 싶다.

아무튼 김병수씨를 보내며 ‘눈동자에 이슬이 맺힌’ 바니의 딸이 부디 건강하길..


전쟁의 상흔은 팔레스타인의 아름다운 젊은이 라미스에게도 잔인한 멍을 남겼다. 자식에 대한 사랑의 왜곡은 국적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어쩌면 제국주의보다 더 자식의 일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라미스 아버지의 모습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욕심일 것이다. 원하는 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 것에 대한 .. 그런 라미스 등에게 우리 김00 교수님의 사모님께서 한국음식을 마련해주셨다니 참 다행이다. 그렇지, 영국의 우드블럭에서도 김병수씨를 태워주기 위해 우리의 김00 교수님이 등장하셨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교수님은 사모님과 함께 포시럽게 유학을 하셨나??

부디,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의 죄 없는 영혼들께 평화가 만들어지기를... 그리고 ‘중동평화를 지원하는 한국 유기농업농민의 인터내셔널 만찬’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수 있었으면..


아, 까삐웅 마을의 ‘노세 노세~~’적 낙천성은 무지 부럽다. 정말이지 삶은 행복해야 한다. 죽어라고 일만하고 죽어라고 공부만하고 죽을 듯이 욕심 부리고 집착하고..그런 것 말고 일도, 공부도, 사랑도, 정치도 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즐거움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 너무도 각박하고 치열하게, 세상에, 연애도 결혼도 죄스러운 시절을 살았던 만큼 정말이지 행복 하고 싶다. 이것저것 다 뒤로하고 이 나이에 과감히 자식또래의 친구들과 섞여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기적이지만 내 행복을 위한 것이었고, 지식의 확장을 통한 풍요로움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김병수씨가 말했듯 ‘팔당 농민들의 사는 모습이 삭막하고 고단한’ 것이 나는 싫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아마존에서 김병수씨가 경험한 다이메는 마치 우리의 무당들이 하는 전통 굿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면에 잠재된 모든 것을 드러내어 ‘난도질’ 함으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의 치료는 영혼과 마음의 치료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개념 같은 것 아닐까? 또는 불교에서의 비움, 무상 같은 것,


맺음.

2년 6개월, 세계 21개국 38개 공동체마을의 방문을, 나는 일주일여에 걸쳐 쉬엄쉬엄 여행했다. 좋은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사람을 찾아, 사람의 마을을 돌며, 삶을 나누고 배우려 애쓰던 그가 마지막 장에 마주하고 선 것은 자신이었다. 결국 사람에게로 가는 머나먼 길은 자신, 곧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울림을 던진다.




Posted by 공고지
 

08년 작성

                    인간 역사 발전의 ‘징코민’ 불복종

                                            


‘집회 때 마스크 쓰면 징역1년’1)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동안 마스크 착용으로 침묵시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던 행위도 징역을 살거나 오백만원이하의 벌금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또 같은 날의 한겨레신문에는 2011년부터 중학교에서 사용될 금성출판사의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교수, 교사 10명이 “교과서 수정이 철회되지 않으면 교과서 집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도 있다. 또 다른 지면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파면된 모 교사의 마지막수업광경을 보도하고 있다. 1급 공무원들 일제히 자진사직서, 초등생들의 일제고사..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80년대 전두환 시대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은 권력을 행하는 집행자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됨을 절감하게도 된다. 물리력을 동원하는방식, 회유책, 또는 위협이나 격리를 통한 사회적 관계의 단절.. ‘질서’라는 명분의 이러한 공안논리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작동된다. 그런데 법의 근원적 의미는 위험으로부터의 인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국가권력과 맺는 계약 유지의 최소장치 아닌가.

  ‘사회제도의 가장 중요한 덕은 정의’라는 롤즈의, ‘정의론’에 따르면, 계약의 기준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해야 한다.2) 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계약의 원칙이 위배되었을 때, 즉 일반적이지 않거나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워서 덕에 근거하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을 때 계약의 의미는 없어진다 할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안티고네』의 저항은 당연한 권리행위로서 회자되는 것이리라.


안티고네의 불복종


 죽음(불복종)으로 더욱 빛난 안티고네의 삶은 여성이라서 더 척박하기도 했다. 왕의 딸이었지만 권력승계는 남성으로 이루어졌고 외삼촌이 왕이 된 후 버려진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는 행위는 강한 모성이데올로기를 느끼게도 한다.


그러면 저 세상으로 가거라. 꼭 사랑해야 한다면 죽은 자들이나 사랑해라. 나에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여자가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p63, 안티고네에게 크레온이 말한 대목)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범한 아버지,  그러한 부모 밑에서 끔찍한 치욕을 안고 내가 태어나다니! 나는 저주를 받고 혼인도 못한 채 가는구나.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들고 오빠는 결국은 죽어서조차 아직은 살아있는 나를 살해했군요! 3)


라는 대목을 보더라도 아버지 오이디푸스 왕, 오빠들, 외삼촌으로 이어지는 남성권력 하에서 이중의 고통이 강제되는 그녀의 처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약혼자 하이몬을 각성하게 하고 크레온왕을 무참하게 만든다.

 죽은 사람을 거두어 장례를 치루는 것의 지극히 상식적인 행위를 규제한 ‘왕의 법’을 거역하는 안티고네의 행동은 보편적 상식을 행함으로서 권력자의 부당함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크레온왕은 그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의 시신을 거두지 못하게 하는 위협적 통제방식을 사용하여 권위를 강화하려고 했지만 안티고네는 목숨을 잃을 각오가 되었기에 “내 목숨 말고 더 원하는 것이 있나요?” 라고 당당히 맞서며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오히려 더 가엽게 느껴지는 것은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 안티고네보다 그녀의 여동생 이스메네로 그녀는 언니의 행위를 옳다고 느끼면서도 ‘법을 어기는 행위’를 두려워한다. 이스메네는 오늘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심정으로는 동의되지 않지만 ‘실정법’이기 때문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스메네의 신념이 ‘법 존중’에 있다면 안티고네의 신념은 ‘가치’에 있다고 하겠다.


‘불복종’선택인가? 강제인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에릭프롬은  ‘인간은 소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란츠카프카도 [학술원에서의 보고]에서 주인공인 원숭이 빨간페터를 통해 상자 밖으로의 탈출을 통해 자유를 얻기까지 발생할 위험을 두려워하여 인간을 모방하고 순종하며 ‘인간화’되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빨간페터는 원숭이사회로 돌아갈 출구 찾기를 포기하면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어차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자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는 해봐야 다시 잡히거나 다칠 뿐, 무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주입하는 훈련에 적극 임하여 포도주도 마시고 보통의 호두를 깨무는 일조차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간화’되어감으로 ‘성공’을 거두지만 훈련 중인 여자 침팬지에게서 동물의 분열과 착각이 뒤섞여 흉한 모습을 보며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에 불편해지기도 한다.  빨간페터가 ‘인간화’를 작정했을 때 이미 숲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듯, 인간은 인간사회가 만들어 낸 온갖 규범과 이데올로기화된 ‘상식’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지난학기 수업시간에 본 [퀼스]는 이와 대조적이다. ‘새디즘의 선구자’ 인 사드는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성을 묘사하는 포르노물을 저작하여 일생의 3분의1을 감옥을 들락거리며 보내고, 공포정치를 하던 18세기 프랑스혁명정권은 종내는 그를 정신병동에 수감하지만 그의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신체를 속박하는 탄압은 심해지지만 자신의 저술행위가 생존의 방식이기에 어떤 굴레도 그의 갈망을 가두지는 못한다. ‘가장 자유로운 존재’ 또는 ‘단 한 점도 비열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고깃덩이’로 평가가 극명히 갈리며 ‘자유롭기 위해’ 정신병동에서 죽어간 사드와, 인간의 구조화된 ‘상식’에 맞게 자신을 적응해가는 빨간페터, 그리고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과연 누가 더 행복했을까.

 안티고네도 하이몬도 ,에우리디케도 모두 ‘죽음으로 자유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왕이 자신들의 목에 칼날을 들이댈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앞서서 자신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가함으로 왕을 더욱 무참하게 만들었으니.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불복종’의 가치


 두세기 전 프랑스의 E,J시에예스는 작동하는 사회의 ‘합법성’이 결코 ‘적법’하지는 않음을 제기하며 ‘제3신분’들의 집단적 불복종을 ‘선동’한다. ‘노동이 체신없는 일로 여겨지는 나라, 소비하는 것이 존경스럽게 여겨지고 생산하는 것이 창피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힘든 작업이 천한 것으로 이야기되는 나라’ 인 당시 프랑스사회의 ‘제3신분의 자기자리 찾기’를 강조하며  독설을 내뱉는 것이다.


볼품없는 지주목에 의존해 기교적으로 서있는, 붕괴위험이 있는 집에 그대로 있으면서 곤궁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다 종국에는 그 잔해더미에 깔려 으스러지는 것을 택할 것인가? 모두의 자유와 발전을 위해 악성고름인 귀족의 특권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계속 병든 채 살아가라.4)


 정치의 민주적 정도에 따라 ‘자발적’ 법위반자들의 숫자도 달라지는 것 같다. 박정희 정권시절 반공법과 긴급조치 등으로 많은 사람들은 타의 반, 자의 반 법위반자가 되었다. 일탈적이거나 도덕적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가치를 법이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를 발전시키는 투쟁은 언제나 차별과 억압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따라서 ‘불복종’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종이 ‘미덕’이던 시대도 있었지만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제되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착한 딸이며, 오빠들의 고운 딸이었던 안티고네가 공포스러운 권력자 앞에서 저항함으로 자유의 정신은 살아나지 않았던가. 그녀의 신념은 정치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지만 이스메네의 신념은 자신을 묶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여 결국 정치체제를 강화해주는 역할로 나타날 것이다. 결국 모든 역사는 가정에서부터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결코 완벽할 수 없는 ‘규범’들의 간극을 메워가는 불복종의 용기에서부터 발전해가는 것 같다.


맺음


 논리가 비약된 감이 있다. 그렇다면 법은 지킬 필요가 없는가? 물론 그건 아니다. 법은, ‘평등한 자유가 위반되었을 때’ ‘정의가 파괴되어 있을 경우’ 에 시민불복종을 할 수 있다는 전제에 의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실정법’을 어긴 경우 받게 될 ‘법적처벌’에 순응할 각오 또한 내재되어 있다. 결국 시민적 불복종 행위는 공중의 동의를 집약하기 위한 선동행위인 것이고 희생과 헌신을 동반한다. 또한 불복종의 행위에도 공익적 불복종과 사익적 불복종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공익 속에도 사익이 내포되어 있지만 대중의 공감을 형성하기 어려운 행위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를 명백히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이를테면 시청료납부거부운동, 낙천낙선운동, 징병거부운동, 올해 전국을 달구었던 광우병소 수입반대운동, 의약분업항의...80년대까지도 묶여있던 노동삼권 중 단체행동권, 공무원들의 노동조합 결성금지 등 숫한 저항과 구속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법도 모두가 공중의 공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준은 무엇일까?

 안티고네는 ‘왕의 법’을 따르지 않되 ‘하늘의 법’을 따르겠다고 했다. 지금의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체제에서 ‘왕의 법’은 문서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정치권력이 최소한의 질서 틀이어야 할 법의 얼굴을 바꿔 시민을 박해할 때 불가피하게 ‘영향의 정치’인 불복종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법의 질서를 조절하기 위한 불복종의 행위, 강력한 성분을 지닌 한 알의 ‘징코민’ 지금 정말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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