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에게 총명을 말하다

 

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尾生)이 애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 중요한 것은 '다리 아래'라는 장소가 아니라 '만남' 그 자체였다.

확신하건대, 영리하고 총명하기로 정평이 난 유시민이라면 다리로 가는 길목의 물이 차올라 오르지 않은 곳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유시민에 대하여 먼저 그 호칭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유 전 장관? 유 전 의원? 아니면 그냥 유시민 씨?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았지만, 그러나 오늘은 긴급조치 9호의 박정희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같은 시기에 유사한 경험을 거쳐 온 동년배로서 그냥 유시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가 여러 측면에서 지니고 있는 탁월한 재능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민주화 진영에서 보면 그는 대단히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역사적 시각에서 보자면, 유시민이 지니고 있는 현재의 정치적 자산 역시 지난 시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던 모든 이들의 희생과 헌신의 성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겸허한 자세, 반성할 줄 아는 용기, 자기가 지금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공적(公的) 가치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통하여 정말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자신을 능히 절제할 줄 아는 것을 강(强)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이길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것이다.

反求諸己

얼마 전 국회 평직원으로 30년 가깝게 근무한 사람으로부터 서글픈 얘기를 들었다. 옛날과 달리 지금 국회의원 중 젊은 사람들이 2/3 정도 되고 또 그들 대부분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이라 국회가 정말 변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도 기존의 나이든 국회의원과 똑같아졌다는 것이었다.

2010년 벽두, 여야를 막론하고 작금의 정치판은 분열과 혼돈 그 자체이다. 이는 민의(民意)의 대표체로서의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개인적 출세 및 집단적 권력욕의 수단으로 전락한 채 역으로 대중들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고 있는 기존 정치의 붕괴 과정이다.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은 민중의 의지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박진영이 정치권의 구애를 '거절'한 사실에서 드러나듯 정치에 대한 대중적 실망감이 극대화되고 있어 이제껏 이 땅의 모든 출세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흡인력을 지니고 있던 국회의원이라는 '주가'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고 조만간 폭락 조짐도 보인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현재의 '지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이 사상누각으로 될지 아니면 문전옥답이 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드러날 스스로의 힘과 '실천'에 달려 있다. 국민참여당의 실권자나 친노 세력의 적통 계승자라는 지위에 스스로 만족한다면 구태여 그 어려운 자기반성이나 자기 혁신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만약 지금 고심참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민주개혁 세력과 대중들을 한데 끌어안아 보듬고 이 시대의 '패자(覇者)'로서의 포부를 지니고 있다면, 근본적인 자기반성과 성찰이 그 선결 과제로서 필수적 요소가 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그러한 포부가 이뤄질 수 있는 풍부한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의 창당이 "분열(分裂)이 아니냐?"는 질문에 "분열이 아니라 '분립(分立)'이다."라고 답변했던 것이나 참여정부의 성격을 '사회자유주의'라고 칭하는 방식의 자기 방어 논리만으로는 지금의 모습 이상으로 더 크게 발전할 수 없다. 유시민이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반구제기(反求諸己),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할 터이다.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 남과 상황을 핑계대지 않고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참여정부의 적자를 자임하면서 현재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에서 지지율 2위에 랭크되어 있는 유시민은 참여정부 당시의 이라크 파병,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시도, 양극화의 심화, 아파트원가 공개, FTA 문제를 비롯하여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의료민영화 논란 등의 문제에 대하여 솔직한 고백이 필요하다.

사실 민주 세력의 도덕성은 이 땅의 대중들이 기대고 싶어 했던 가장 큰 덕목이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부정을 했는데 우리는 겨우 얼마밖에 안 된다"라거나, "MB의 반민주 반민중 정책에 비하면 우리의 정책이 얼마나 좋았는가!"는 등 항상 수구 세력과 비교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상대적 우위와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자체가 이미 자기 존립의 근거를 근저로부터 붕괴시키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문제에서 비록 그 '양'과 '상황'에 있어서는 꽤나 억울한 면이 존재할지라도, 대중들의 간절한 기대를 무너뜨렸다는 것 그 자체로서 '질적으로' 이미 수구 세력의 부정부패보다 훨씬 큰 부정부패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유시민과 서울역 회군

포털사이트 Daum의 아고라를 보면, 본인이 직접 한 주장은 아니지만 유시민을 80년 서울역 학생시위 당시 '투쟁파'의 지도자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시민의 '포효하는' 사진이 '투항파'의 상징으로서의 심재철 사진과 함께 크게 실려 있다. 이와 같은 글이 한두 개가 아니라 상당히 많아 온라인에서는 "80년 당시 유시민이 투쟁파의 지도자였다"는 주장이 '역사적 진실'로서 널리 퍼져 있다.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유시민은 당시 심재철과 함께 온건파로서 서울역 회군을 주장했던 학생회 소속이었다. 당시 강경파이자 투쟁파는 이해찬이나 김부겸을 비롯한 '복학생파'였다. 유시민을 투쟁파의 지도자로 묘사하는 것은 역사의 왜곡일 뿐 아니라 당시 서울역 시위에 참여하였고 투쟁을 실천했던 수많은 동지들과 선배들을 모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본인이 적당한 시기에 직접 해명을 해야 한다고 본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일수록 엄격한 자기 잣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보수 세력과 차별화된 덕목이다.

지나간 과거의 '유지' 혹은 '유산'에 기대 자기 자리만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리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길이 아니라 더 큰 인물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하는 내일을 보고 싶다.

'총명'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첨언할 게 있다.

"총명하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영리하다거나 머리가 좋다는 말이 아니다.
"밖으로 남이 하는 비판적인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것을 귀가 밝다고 하여" '총(聰)'이라 하고, "안으로 자기 자신을 잘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눈이 밝다고 하여" '명(明)'이라 한다.

부디 남의 비판도 잘 받아들이고 자신을 잘 성찰하여 진정으로 총명한 유시민이기를 바란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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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2010.01.05. 제793호]

▣ 박용현  [만리재에서]

 지난 연말, 용산이 타결되고 한 난치병 소년이 불에 타 숨졌다. 영하 10℃를 넘나드는 추위가 맹렬했다. 용산은 불완전한 타결이었고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떠나지 못했다. 막 인쇄돼 나온 2010년 1월1일치 조간신문을 들고 퇴근하던 2009년의 마지막 밤, 두툼한 외투 속에서 나는 몹시 떨었다. 신문 사회면의 1단 기사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40대 여성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희귀병을 앓던 아들을 숨지게 했다. 자신도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단원경찰서는 31일 희귀병을 앓는 아들을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김아무개(46·여)씨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12월29일 오후 11시30분께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한 다세대주택 1층 자신의 집에 휘발유 2ℓ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이 불로 희귀병을 앓던 아들(17) 1명이 숨졌으며, 함께 있던 작은아들(7)이 중화상을 입었다. 김씨 자신도 가슴과 얼굴 등에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라고 경찰은 전했다. 의식을 회복한 작은아들은 경찰에 “엄마가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숨진 김씨의 아들이 성장하면서 근육계통에 심한 이상이 생겨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며 “특히 이웃들은 김씨가 아들 치료비 등으로 생활고를 겪어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가 동반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지만, 김씨는 의식 회복이 불투명한 상태다.    안산/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저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불을 지른 어머니의 책임일까? 난치병을 갖고 태어난 아들의 책임일까? 이들의 딱한 사정을 미리 찾아내지 못한 방송사 ‘난치병 어린이 돕기 프로그램’의 제작진 책임일까? 사회복지단체의 책임일까? 비싼 치료비를 받은 병원의 책임일까?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치밀한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국가의 책임일까?


‘강구연월’(康衢煙月)이라. <교수신문>이 2010년의 사자성어로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뜻하는 ‘강구연월’을 선정했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었다. 중국 요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강구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시커먼 연기 속에 여섯 목숨이 타들어가며 시작한 한 해가 다세대주택에서 피어오른 연기 속에 한 소년의 목숨이 사그라지며 마무리되던 그날 밤, 나는 용산이 새해 화두처럼 던졌던 질문, 그리고 한 해 내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 타결 문구에서도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그 질문을 다시 되뇌며 종종걸음을 쳤다. 보름이라지만 서울의 달빛은 은은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 목숨보다 돈이 최고의 구성 원리인 영하 10℃의 시대, 그 번화한 거리가 너무 추워, 고개는 절로 처박히고 달을 쳐다볼 엄두도 못 냈는지 모른다.


신문은 또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를 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길목에서 우리 서로 배려하고, 우리 서로 나누고, 우리 서로 베풀어서,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따뜻한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처럼 오는가? 그렇게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가? 누구와 무얼 나누고, 누구에게 무얼 베풀자는 것인가? 해묵은 질문이 새해 첫날 아침 일찍부터 고개를 든다. 마감을 하러 출근한 사무실에도 한기가 가득하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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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은 없다 - 한겨레 펌

공감 2009. 12. 16. 15:55
 

 한겨레 칼럼 

[세상읽기] 70은 없다 / 이계삼

<오마이뉴스>는 며칠 전 대원외고 입시 풍경을 큼직하게 보도했다. 시험장 입구에는 외제차가 즐비하고, 서울대, 연·고대 가려고 이 학교에 지원한 건 아니라는 학부모의 이야기를 헤드라인으로 뽑아올리니 흥미 만점의 기사가 되었다. 같은날 <한겨레> 칼럼에서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입학사정관제가 끝없는 스펙 경쟁으로 사교육비를 더욱 늘릴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는 그 주요한 근거로 강남 학부모들도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자신처럼) 판단을 정리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육 담론은 사실상 강남 학부모들이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여당이 외고를 폐지하겠다고 칼자루를 뽑아든 와중에도 ‘끄떡없을’ 거라 자신있게 말하고(실제로 다음날 정부가 외고 존치를 발표했다), 자식의 고교 입학시험장에 외제 승용차를 끌고 와서 온종일 진치고 있는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들의 물리력과 놀라운 응집력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가 그렇게 무력화되었고,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그렇게 당선되었다. 캐나다 땅덩이를 몇 개나 살 수 있다는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은 강남의 눈치를 제일 먼저 살핀다. 이런 생각을 굴려가다 보면 우리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한 판단과 결정의 권능을 한 줌도 안 되는 저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글프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것은 사실일까. 우리는 강남의 위력이 작동하는 범위가 ‘실제로’ 어디까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들 스스로가 강남을 신화화함으로써 강남의 권능이 더욱 강화된 것이라고. 그러므로 ‘강남 신화’야말로 우리 사회를 수렁으로 이끄는 ‘나태한 상식’이며, 강남을 올려다보고 강남에 모든 이유를 떠맡기면서 ‘진짜 문제’를 외면해 왔다고 말이다.


강남이 이끌어가는 교육 의제들, 이를테면 최근 들어 이야기되는 외고 존폐 논란이나 입학사정관제, 이제는 한물간 논술 광풍과 고교 내신 변별력 논란들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아무리 넓게 잡아도 상위 30% 안에 드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이 흐름이 어떻게 귀결되든 아무 상관이 없는 나머지 70%의 아이들은? 이들 가운데 절반은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에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위 30%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많은 경우 가난하고, 가정이 성치 못하다. 음식점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거나, 짙은 화장을 하고 쏘다니는 아이들, 거칠고 무기력하며, 오직 자극에만 반응하는 그 많은 아이들을 떠올려보라. 많은 중학교, 전문계고 선생님들은 이들로 인해 아예 수업 자체가 안된다고 호소한다. 이들은 음지식물들처럼 엎드리고 있지만, 때로 무시무시한 사건을 통해 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교육 현장에서 그들은 ‘폭탄 돌리기’ 게임 하듯 기피되는 대상이고, 모쪼록 사고 없이 졸업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교육은 없다.


상위 30%의 마당에는 미친 경쟁만 있을 뿐 교육이 없고, 그 반대편 하위 30%에게는 불량과 일탈이 있을 뿐 교육은 없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도대체 교육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진짜 교육 문제’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교사인 나는 때때로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게 온당한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지경인데,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교육에 미쳐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이계삼 -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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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의 전쟁  -이태복의 새벽편지


하루에 몇 명씩 사망자가 나오면서 신종 플루에 비상이 걸렸다. 추석 이후에 대유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가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넓게 퍼져 있다가 10월 하순에 이르러 하루에 수천명씩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보건당국이나 정부도 각종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거점병원의 북새통과는 거리가 멀다. 몇시간씩 줄을 서고 있고, 의사협회는 재빠르게 이런 기회를 이용해 병원내 조제를 허용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어쩌면 그런 비상조치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신종 플루처럼 전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변형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이 고작 그런 수준이어야 하는가. 예방 백신확보가 많으냐, 적으냐, 치료제는 충분한가 아닌가 하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고 있을 뿐, 보다 근본적인 종합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신종플루가 지나가면 또다시 변형된 바이러스가 국민들을 공격할 것이고, 앞으로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영일이 없는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와 보건당국은 전세계적 규모로 번지고 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 작업을 위해서는 백신개발과 항바이러스 치료약 개발을 위한 국가차원의 집중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제약업체 차원의 개별적 노력은 한계가 분명하다. 또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로슈의 타미플루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제 생산에 관한 제안이 한 바이오업체에 의해 제기됐음에도 정부당국은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국내 연구수준으로 볼 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생명과 보건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와 국회가 치료제 생산방안이 아니라 치료제 몇 백만 명 분을 확보했느냐는 식의 논란을 벌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백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내기업이 백신생산을 할 수 있어서 매우 다행스럽지만, 그 백신의 부작용과 효능은 여전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므로 정부가 엄정한 검사와 지속적인 관리로 신고된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를 따지고, 국민들에게 보고해야 한다.


둘째는 정부의 대책이 제때에 집행되지 않고, 현황을 즉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의료체계가 90% 가까이 민간의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까지 정부의 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하고 나설 정도이니 신속한 대처는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세계적인 신종플루확산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국가들은 쿠바, 캐나다 같은 나라들인데이들 국가는 공공의료체계가 95% 이상인 나라들이다. 또 민간의료기관이 비영리법인이기는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환자치료에 나서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벌이를 보장해줄 수도 없다.


결국 이런 세계적인 질병확산에 대처할 수 있으려면 공공적 의료기관이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야 하고, 공공의료를 확충하지 않는 한, 그만큼 국민폐해는 늘어나게 돼있다. 한가지 희한한 일은 보건당국이나 국회 어느 곳에서도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발표나 요구가 없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제약업계와 의료진은 뒤로 웃고 환자와 국민들은 천문학적인 부담 때문에 울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셋째, 국민들의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한 보다 명확한 지침이 제시돼야 한다. 면역력 강화에 좋은 음식이나 생활습관, 운동 등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해 국민들의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 최근 청소년들의 체력이 현격히 떨어져 있어서 신종 플루에 아주 취약한 집단이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 만큼 학생들의 체력강화프로그램도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제 정부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한 대책을 남북한 7천5백만 명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답게 근본적인 처방을 세워야 한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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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09. 11. 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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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곡의 시대

                                                             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1970년대는 흔히 ‘유신시대’나 ‘긴급조치의 시대’ 로 규정된다. 가령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거나 시험을 거부하여도 사형, 무기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던 금지와 처벌의 시대였다.

“거짓말이야!” 실연의 아픔도 불온한 선전선동으로


당시의 청년들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의 등산객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분노와 한탄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탈출구는 술과 노래였다. 그러나 술자리도 야간통금 때문에 밤 12시를 넘기면 안 되었고, 노래도 금지곡은 부르면 안 되었다. 심지어는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도, 여자가 무릎 위 몇 센티미터 이상 올라가는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도 금지와 단속의 대상이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의 첫머리에는 이 시대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녹아 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애창되던 이 노래도 유언비어 유포를 엄벌에 처하는 1975년의 긴급조치 9호에 뒤이은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금지된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실연의 아픔도 듣기에 따라서는 불신을 조장하는 불온한 선전선동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콧수염 가수의 원조인 이장희의 「그건 너」가 금지곡으로 찍힌 일이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라는 후렴구를 문제삼은 것이다.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를 배우면서 ‘이 단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식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은 탓인지 검열관들은 노래 가사 한 줄에서도 기어코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야 직성이 풀렸던 모양이다.

가수 이장희가 사는 울릉도에 가보고 싶다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나는 이 노래가 다른 의미에서 혁명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우선 노랫말이 구어체의 일상어로 되어 있어 명쾌하고 솔직담백하다. 창법도 텁텁하고 직설적이어서 인위적인 꾸밈이나 치장이 배제돼 있다. 기타의 반주도 강렬한 호소력을 증가시킨다. 한마디로 민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 친밀감이 느껴지는 이 노래가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평생 내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 연예인들을 뒤를 ?아 다니거나 좋아한다는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 양희은과 김민기를 좋아했지만, 노래를 즐겨 들었을 뿐, 요즘의 ‘광팬’처럼 열렬한 애정 표현은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가수 이장희가 오랜 ‘미국 망명생활’(이라고 나는 주관적으로 판단한다)을 접고 울릉도에서 더덕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만간 울릉도를 그냥 가보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거기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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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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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