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기관: 노인요양원
보고서 (2007년)
1.기관소개
기관: 기독교 대한감리회 사회복지재단 노인요양원
소재지 :
1)기관 설립목적
기독교 정신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노인요양시설로서 정신적 신체적인 이유로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에 불편함이 있는 치매, 중풍(뇌졸증), 와상 및 노인성 질환 등 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요양시설이다. 요양원 입소를 통해 심신기능 회복 및 전문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필요한 각종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어르신들의 복지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총 90여분의 어르신들이 입소하여 생활하여 계시며 사회복지사, 간호사, 자원봉사자들 20여명이 성심을 다하고 있다.
2) 기관의 서비스 내용
봄가을 나들이와 대보름윷놀이 추석맞이 송편 빚기 등 계절에 따른 행사와 더불어 광명시의 성애종합병원 광명연세병원 서울정형외과 건강치과 등의 분야별 병원들과 의료서비스체계를 구축하여 건강관리를 한다.
요일별 프로그램
월: 자기표현능력 향상, 건강 체조, 목욕 서비스, 물리치료, 예배활동
화: 노래와 율동, 건강 체조, 목욕 서비스, 물리치료, 예배활동
수: 은빛 미술활동, 시니어 체조, 건강 체조, 목욕 서비스, 물리치료, 예배활동
목: 미술치유, 건강 체조, 목욕 서비스, 물리치료, 예배활동
금: 미용서비스, 영화감상, 건강 체조, 목욕 서비스, 예배활동
토: 시니어 체조, 신체활동, 건강 체조, 목욕 서비스, 예배활동
일: 주일예배, 산보, 건강 체조
2.기관선정 동기와 과정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늘 당당하고 떳떳했지만 마음 한구석 앙금처럼 자리하고 있는 죄송함 하나는 부모님에 대한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구속, 수배, 해고, 기관원들의 핍박 등 부모님께 안겨드린 것은 불효의 기억 뿐 이다. 문제는 그 과정들이 아무리 시대적 당위였다 하더라도 대단한 일 한 것도 없는데 지금도 습관처럼 되어버린 무심함에 늘 마음이 편치 않다. 사회봉사를 계획하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는 반성의 작은 실천으로, 또한 ‘선언적’ 인 활동이 아닌 구체적 실천의 장으로 노인요양원을 택했다.
그간 시민운동을 해오면서 인연 있는 기관들도 많이 있지만 아는 곳에서 대충 시간 때우는 식으로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낯선 곳으로 정한 후 찾아보니 동네 가까운 곳에 노인요양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전화로 내 소개와 약속을 드린 후 사회복지사 ( ) 선생님을 만나러 ( )요양원을 찾았을 때 심심하게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의 많은 시선이 내게 와 닿았다.
3. 사회봉사 활동 내용
1) 활동 기간 및 업무
활동기간: 주 1회 매주 금요일 오전 9시~12시 3월 30일~ 4월 27일
업무내용: 침대시트 갈기, 목욕보조, 거동보조 배변보조, 식사보조 등
2) 활동내용(1주~5주)
1주- 3월 30일
처음 가는 날, 공교롭게도 감기로 목이 쉬고 기침도 나고 영 꼴이 아니었지만 첫째 날 부터 핑계를 댈 수 는 없다. 그러나 봉사하러 가는 사람이 이리 비실거려서야 원, 걱정과 긴장이 교차하며 현관에 들어섰다. 일전 상담했던 선생님이 잠깐 누군가 하는 시선으로 보다 아, 오늘이군요. 어서 오세요. 하며 반가이 맞아주신다. 그러다 내 목소리와 콜록거림에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 “괞찮겠어요?” 걱정스런 표정에 미안해진다. 그러나 다행히 사람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적극 활용(?)할 태세를 취하며 앞치마를 건넨다. 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청소기를 들고 프로그램 방을 한 바퀴 돌리고 구석구석 걸레질을 하다 잠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신 할머니들 옆에 앉았다. 붉은 구슬목걸이 할머니는 내목에 걸린 대단치 않은 목걸이를 만지며 예쁘다고 하신다. 목걸이나 장신구에 관심이 많으신 듯하다. “할머니 목걸이도 예뻐요”라고 답사를 드렸다. 내가 서있는 것만 보이면 옆에 앉으라고 손짓하시는 ‘새침’ 할머니는 ‘심심하다’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리신다. ‘심심해서’ 노래 부르다 ‘깔끔’ 할머니께 타박 맞고 머쓱해 지지만 어느새 또 흥얼흥얼... 그러나 한가로이 앉아있을 새가 없다. 5방 어르신이 젖은 기저귀를 빼 달라 하시는데 도저히 혼자 할 수가 없어 선생님 한분을 모시고 와서 함께 해도 어려웠다. 누워계시던 분들의 요청으로 침대 높낮이를 조절하는데 할아버지 방에서 부르신다. 달려 가보니 신발을 못 신고 계시는 거다. 겨울 털신처럼 생긴 단순한 신발이지만 발을 꿰는 게 어긋나는 것이다. 발에 맞춰 신발을 단단히 신겨드리는데 마음이 짠해온다. 일어서는 데에도 부축이 필요했다. 이어 아홉 개 방의 가습기를 빼내어 비누로 씻어내고 물을 바꾸고 나니 운동시간이다. 프로그램 방에 모여 마주앉아서 풍선 배드민턴 을 친다. ‘학교에서 사고 쳐서’ 봉사 명령받고 온 고등학교 여학생 녀석과 내가 도우미가 되어 날아가는 풍선 주워오고 적절히 중간 중간 조절하며 20분쯤 뛰었더니 등에 촉촉이 땀이 밴다. 어느 새 점심시간, 배식대가 복도로 들어왔다. ‘진밥, 그거 내거야’ 라며 알아서 챙겨 가시는 분도 있고 대부분은 침대 식판대를 올리고 비닐 앞치마를 목에 두르고 차례를 기다리신다. 12시, 어르신들 뒤로하고 시간을 맞춰 현관을 나오는 뒤통수가 부끄럽다. “어르신들, 점심 맛있게 드세요”
2주- 4월 6일
9시, 현관을 들어서니 쇼파에 앉아계시던 ‘목걸이’ 어르신이 반갑게 웃으신다.
“잘 지내셨어요?” “응” 내 손을 잡으신다. 복지사 선생님들은 회의 중이고 어르신들은 KBS아침마당 시청중이시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어르신들 팬이 많으니 복 받을 거야~ 오늘은 알아서 앞치마 찾아 걸치고 한 바퀴 인사하며 도는데 6호방 어르신이 뭐라고 하신다. 한참을 헷갈리다 겨우 알아들었다 “똥 누고 싶으니 내려달라”였다. 혼자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 우왕좌왕 하다 회의마친 실무자선생님이 와서 휠체어에 옮겨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만리다. 겨우 변기까지 왔는데 이 어르신은 워낙 체격이 있으셔서 간신히 변기에 앉혀드리는데 변기 위쪽이 따로 돌아가 버린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간청을 한다. “어르신 그냥 기저귀에 하세요. 이렇게 이동하다 다치면 큰일 이예요.” 그러나 오늘 아침에 벌써 두 번을 이렇게 힘들게 이동 하신 거라 한다. 기저귀는 아무래도 시원치 않은 것이다. 다행히 시원하게 일을 보시고 어렵게 모셔드린 후 선생님들은 떨어져 돌아가 버린 변기를 손보아야했다.
오늘은 남자 자원봉사자가 빈 것인지 방 전체 청소가 안 되었다 한다.
“하죠 뭐” 청소기를 들고 프로그램방과 사무실을 포함하여 10개의 방을 다 돌고나니 온몸이 땀에 젖는다. 휴! 사회복지사 일 하려면 체력이 엄청 필요하겠구나. 새삼스레 다시 바라 본 선생님들.. ‘새침’ 할머니께서 눈빛을 보내오시지만 앉을 틈이 없다. 방마다 개인용 물 컵, 물통, 쟁반들을 수거하여 깨끗이 씻어 식수를 담고 물통에 붙어있는 개인용 이름표대로 일일이 놓아드린다. 어르신들 중 몇몇 분은 ‘내가 할 테니 놔두라’ 고 하시고 할아버지 한분은 “쟁반은 왜 가져 가냐” 고 소리치시는데 설명을 드려도 막무가내이시다. 컵이나 쟁반이 바뀔까봐 예민하시다.
점심 드시는 것 보며 인사드리고 현관문에 섰다. 이곳은 의식이 분명치 않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현관문을 열려면 실무자들이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번호를 눌러줘서 나오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따라 나오신다. “어 할아버지도 가신다네요.” 했더니 앳된 사무담당실무자가 웃으며 “예, 가셔도 되요” 하는데 할아버지가 “나도 자원봉사자여 허허” 하시는 게 아닌가? “그러세요, 대단 하세요” 내가 놀라며 감탄하자 웃으시며 “힘들어, 밥이나 먹고 가야지” 식당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신다.
내 몸 남에게 기대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자원봉사까지... 잔잔하게 감동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수업관련 레포트 제출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4월의 햇살아래 울타리마다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져 춤춘다. 문득 이 계절의 봄을 창 안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 생각에 눈부신 사월이 애틋하다.
3주- 4월 13
현관에 들어서니 뭔가 달라졌다 입구 사무실 위치도 바뀌고 봄단장이 된 것 이다. 오늘도 아침마당 시청에 열중이신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내가 소탈한 성격은 못되지만 한껏 밝게 목소리를 높이니 기다리신 듯 반겨주시는 우리 어르신들.
아침마당에 시선을 고정하고 함께 웃다가 회계 담당하는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산책할 수 있는 뜰이 없는 아쉬움과 오히려 시골이 좋지 않겠느냐는 내 의견에 그럴 것 같은데 노인들께 설문조사를 해보니 오히려 도시를 선호하는 것으로파악 되었고 이유는 늘 건강이 불안하기 때문에 급한 일 발생하면 갈 수 있는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떡였다. 노인들의 건강은 하루 앞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아침마당이 끝났다. “앉으라”며 긴 의자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새침’ 할머니 옆에 앉았다. 늘 복도에 나와 계시는 ‘목걸이’어르신 ‘깔끔’ 어르신 다 나란히 앉으셨다. 나에 대한 호기심...“나이는 몇이냐? 아이는 있느냐?..” “몇 살 되 보이세요?” ‘새침’ 할머니께서 20년은 젊게 봐주셨고 ‘깔끔’ “할머니는 아닌데 조금 더 들어 보이는데” 하시면서 10년은 젊게 봐주셨다. 성공회대학교 열아홉 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내가 젊어졌나? 기분이 괜찮다. 이젠 알아서 할 일을 찾는다. 청소기 들고 지난번 보다는 한결 숙련된 자세로 한바퀴 돌아 마무리 한 후 탁자가 있던 바닥에 눌러 붙은 때를 벗기기 위해 신나를 수건에 적셔 긁게 칼까지 동원했지만 쉽지가 않다. 끙끙거리는데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오셔서 거드신다. 나보다 훨씬 요령 있는 일솜씨다. 40분쯤 신나 냄새에 머리가 아픈데 “이제 됐어, 너무 잘 하면 청와대에서 불러” “그럼 어르신과 제가 같이 가야 되겠네요.” “그러게 허허” 어깨를 펴고 보니 건조대에 널어야 할 빨래가 기다린다. 한쪽에서는 화투를 치고 계시는 어르신들, 고스톱을 치고 계시는 할머니 두 분, 할아버지 한분. 키가 크고 건강해 뵈는 8호방 할아버지는 훈수 두고 계신다. 열심히 점수를 적고 계시기에 자장면내기라도 하셨느냐니까 그건 아니라 하신다. 그래도 이기고 지는 것에 치열하다. 머리를 쓰며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5호방에서 치매를 앓으시는 장신의 할아버지 한분이 큰 키라 넘어지실까 더 걱정되는 걸음으로 ‘고향사람을 찾는다.’고 묻고 다니신다. 모두 늘 겪는 일인 듯 지겨운 표정, 몸도 건강도 비교적 말끔해 뵈는 어르신이 뭐라고 소리 질러 야단을 치신다. 지금 점심밥이 들어오고 있으니 일단 점심 드시고 찾아 드리겠다고 팔을 부축했더니 또 순순히 방으로 들어가시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점심 배식 구루마가 들어왔다. 배식 판 나누어 드리고 김치 더 달라는 어르신 챙겨 드리고 현관을 나온다. 바람 불고 잔뜩 흐려 스산한 날씨. 오늘 어르신들은 ‘좀 춥다’고 움츠리셨다. 심술궂은 사월 날씨다.
4주- 4월 20일
땀 많이 흘린 날이다. 목욕봉사는 가장 많은 체력과 숙련을 필요로 하는 일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선생님들 세분이 12분을 목욕시켜드리는 일이었고 나까지 합류되어 4명이다. 옷 벗겨 드리는 일부터 간단치 않았다. 팔다리 성한 경우가 거의 없으셔서 겉옷과 내복을 팔 한 짝씩 빼낼 때마다 ‘아프다’고 앓으시니 매우 조심스럽고 몸을 일일이 들어서 옷을 빼내듯 해야 한다. 기저귀까지 다 빼낸 후 휠체어에 조심조심 앉혀드린 후 욕실로 이동, 머리감고 비누로 몸을 씻겨드린 후 다시 하나씩 입혀드리고 침대 커버 베게 커버 기저귀커버 다 빼서 교체하고 얼굴과 몸에 로션을 발라드리는 일이다. 몸집과 얼굴이 자그마하고 날 보면 마냥 ‘상냥하다’고 좋아하시는 ‘얌전’ 할머니, 로션을 발라드리자 ‘얼굴에도 발라줘’ 하신다. 손바닥으로 할머니의 검버섯이 가득한 작은 얼굴에 로션을 발라드리며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새침’ 할머니는 오늘은 목욕을 안 하셔도 된단다. “어제 똥 쌌어” 자랑하신다. “ 아 그래서 목욕 하셨군요.” “응 똥 싸서” “잘하셨어요.”업무에 지친 선생님들이 거침없이 업무를 하는데 비해 상냥한 내게 살며시 기대오는 느낌이다. 마치 늘 모시고 사는 며느리는 죽어라 해드려도 당연하지만 한번 씩 다니러 오는 며느리의 얕은 친절에 고마워하듯..
일손이 너무 부족하다. ‘도대체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했지?’ 싶을 정도로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다. 이일 하고 있는데 저일 시키고 저 일하는데 다른 일 또 ‘부탁’하고 ‘봉사자 선생님!’ 여기저기서 찾는다. 목욕대상 어르신들 새 옷 다 갈아입으시고 손톱 깎아 드리라고 손톱깎이를 주는데 아직은 서툴고 어렵다. 조심조심 하는데도 쉽지 않고 자칫하면 살을 자를 것 같아 두 손 들었다. 물통 비우고 새 물 받아 점심 드실 준비 해 드리고 돌아섰다. 돌아 나오는 길이 주금씩 마음 아파진다.
5주- 4월 27일
인간의 신체조건 중 배변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절감하는 날들이다. 어르신들께서 여러 가지로 참 어려워하시는 것 중 하나가 배변이다. 오늘도 아침 9시, 내 모습이 눈에 띄자 말자 여기저기서 “선생님!” 을 외치며 내 손을 부르신다. 이미 “똥을 싸서”기저귀를 갈아달라는 분, 화장실에 가셔야 할 분, 휴대용 변기를 끌어다 앉혀 달라는 분.. 우선 급한 화장실 행 어르신과 힘을 합쳐 일어나시기에 성공하여 화장실에 앉혀드리고 휴대용 변기에 일을 보신 분 을 닦아드리고 부축하여 침대에 뉘어 드린 후 변기를 비우고 더운물로 씻어 제자리에 두었다. “ 냄새 많이 나지?” 정신은 멀쩡한 데 몸이 불편한 이 분은 내게 미안해하신다. 웃으며 “시원하세요?” 했더니 “응 시원해 많이 눴어.” 정말 변이 한통 가득 이었다 시원해하시는 할머니를 뵈니 내 배속이 다 시원해진다. 그러나 기저귀에 일을 보신 어르신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몸을 돌려 처리를 해드릴 수가 없다. 실무자선생님들은 모두 회의 중이라 사무담당 실무자만 전화를 받고 있다. 도리 없이 기다릴 수밖에.. 실무진들이 모두 회의를 하는 이런 시간에 자원봉사 등 별도의 돌봄 인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물론 모니터로 전체 방을 조망하여 보고는 있지만 ‘급한 볼일’도 챙겨드릴 수 가 없는 것이다. 아침에 내가 나타나면 도움요청목소리가 이방 저 방 에서 터져 나오고 나는 반가운김에 “예 잠시만요.” 하며 쫓아다니다 보면 감당이 안 되어 호출 목소리가 겁이 날 정도다. 회의는 항상 30분간 정도이고 실무자 선생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바빠진다.(여기는 3층과 4층이 요양원이고 회의실은 4층에 있다)청소기를 들고 8개 방을 청소하고 걸레 빨아 먼지를 닦았다. 특히 어르신들이 늘 잡고 다니시는 지지대를 반들반들 깨끗하게 닦았다.
11시가 넘어 배식 준비를 위해 물통을 챙겨드리는데 7호방의 입술을 떨며 겨우 말씀하시는 할머니께서 뭐라고 웅얼웅얼 할 말이 간절하신 듯하다. 소변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옆구리에 팔을 넣고 겨우 몸을 일으켜 변기를 받치고 소변까지는 무사히 해결되었는데 일어나 걷고 싶다는 소망은 끝내 불가능했다. “어어어 제제제 는는 걸었는데..” 그 한마디 하시기도 힘겨운 분, 더 기능을 잃어가는 몸에 아득해하시는 할머니가 안타깝다. 낮잠 주무시는 분, 장기판을 벌리신 할아버지들, 혼성3인조로 벌어진 화투판(?)등 나름대로 여가를 보내시는 어르신들, 내가 지나가면 기다렸던 식구 맞이하듯 반겨주신다. 그러나 화투도 장기도 관심이 없는 분들은 ‘지루하고 나가고 싶다’ 고 하신다’ ‘바람 쐬러 갈 곳도 없고’ 답답한 환경과 심심함과 외로움이다. 이런 분들은 특히 옆에 앉아 이야기 들어드리고 말 걸어 드리고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시골에 혼자 계시는 시댁과 친정의 어머니들 생각이 난다. 오늘은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6차,(5월 4일)
새침 할머니가 변심 하신 걸까? 반갑게 웃으며 다가간 나를 무표정하게 보시더니 “아침 잘 드셨어요?” 라고 손을 잡으려하자 갑자기 홱 뿌리치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신다. 너무 당황해서 “왜요? 어디 불편하신 거예요?” 하니 “너도 필요 없어” 라고 소리소리... 할 수없이 다른 선생님께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요” 했더니, “왜, 할머니 기분 안 좋아?” 묻는 실무자 선생님께는 “응. 잠을 못 잤어.” 라고 유순하게 대답하시는 것 아닌가? 이 배신감...천진한 모습의 이 할머니를 제일 많이 생각 했는데.. 내가 바로 찾아뵙지 않고 복도에 계시던 다른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 뵈어서 삐치신 걸까? 아님 일주일에 한번 삐죽 나타나는 나그네 같은 자원봉사자와 늘 모시고 사는 며느리 같은 실무자 선생님들과의 구별이 명확 해지신걸까? 여러 가지 상상하며 편치 않은 마음으로 걸레질을 하는데 5호 방에서 ‘선생님’ 하고 비명처럼 누가 부른다.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주중에 새로 입소하신 듯 처음 뵙는 할머니가 휠체어를 밀고 남의 방에 가서 조금씩 음식물을 토해내고 계시는 것. 어르신들은 “냄새 난다”고 창문 열어라, “닦아라.” 하며 그 분께 은근한 불평을 토하시는데 토한 어르신 나가실 생각이 없다. 휴지로 닦고 걸레로 훔치는데도 냄새는 잘 가시지 않는다.
오늘 일은 8개 방의 쟁반 물통 모두 수거하여 깨끗이 씻어 물 채워 갖다 드리는 것.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 계속 세면장만 들락거리며 일 하는데 새침 할머니가 맨발로 걸어 다니신다. 다시 한껏 아양 떨며 “바람 쐬러 나오셨어요?” 했더니 “나 만지지 마” 앙칼지게 소리치신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니가 나 때렸잖아, 내 몸에 손 대지 마” 너무 놀라서 “제가 언제요?” 항의(?) 했지만 막무가내.. 휴 그렇구나. 꿈을 꾸셨거나 뭔가 착각을 하신 것, 아니 정신이 온전치 않으신 것이다. 치매 어른들이 보호자에게 ‘밥 굶긴다’ ‘때린다’ 고 애매한 얘기 하신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상실증 같은 것으로 외면할 때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하는 작은 이해가 생긴다. 새침 할머니의 변심(?) 으로 우울하고 마음 아픈 날이다.
7차 (5월 11일)
날씨가 좋아 어르신들의 야외산책하기- 휠체어 사용법부터 설명 듣고 승강기에서 1층까지 한분씩 이동한 후 다시 바로 옆 공원까지 가는 것이다. “공원 가실 분 나오세요.” 라고 하자 할아버지 할머니 열 명 정도 나오셨고 휠체어로 대기하신 세분까지 해서 열세분의 산책이다. 좌측 마비에 오른쪽 무릎도 약간의 마비증상에 왼팔만 온전한데도 지지대를 의지하여 끝없이 재활훈련을 하시고 우유도 제일 많이 드시는 등 관리에 최선을 다 하시는 목걸이 어르신은 지지대를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온 힘을 다해 참여하신다. 바지뒤쪽을 잡고 부축을 하는데 여간 마음 쓰이는 게 아니었다. 부축하고 휠체어 밀며 바로 길 하나 건넌 문아래 밖의 공원이지만 그곳까지의 이동이 쉽지 않다.
공원벤치에 앉아 햇살 을 쬐며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리더십강한 정00생님이 바람을 잡는다. “전00! 전00!" 하고 박수를 치자 전 할머니는 별로 사양 없이 ‘해당화 피고 지는 ~~’을 열창하시는데 보통 실력이 아니다. 이어 김00! 할머니가 불려지고 ‘목포의 눈물’ 이 나오는가 했더니 휠체어 어르신도 질세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반복하여 부르시고 정00!를외쳐서 정 선생님도 한 자락! 이어실내에서는 몹시 조용하시던 할아버지 한분이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시자 썬 캡까지 쓰고 나오신 멋쟁이 00할아버지께서 춤까지 곁들인다. 정00생님은 할아버지를 더 부추겨 ,‘영감, ,왜불러~~’까지 장단 맞추어 주거니 받거니.. 현관문 밖의 코앞에 있는 공원에 나왔을 뿐인데 이렇게들 즐거워하신다. 그 간단한 이동도 어려운 것은 대소변의 문제, 안전의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22일은 부천의 생태공원으로 소풍 간다는 것 때문에 날짜를 꼽고들 계시고..
한 시간쯤 야유회를 즐긴 후 요양원으로 돌아오자 거기까지의 외출도 엄두를 못 내신 분들은 부러워들 하신다. 점심준비를 하며 아침에도 내내 잠들어계시던 새침할머니가 마음 쓰여 가보니 아직도 취침 중이시라 조심스레 깨웠다. 점심 드셔야지요? 했더니 나를 빤히 보시고 “좋다” 하신다. 순간 눈물이 핑 도는 게 아닌가? 온전하지 않은 것 알고 아무 개념 없는 언어일수 있는데도 반갑고 고마워 “저도요” 하며 꼭 안아 일으켜드리고 오늘의 메뉴인 국수를 물에 말아 잘 저어드리고 나오며 부디 다음 주 까지도 모두 평안하시길 비는 마음이다.
8차 (5월 18일)
광주항쟁 27주년, 요양원을 향하면서 20년 전쯤 망월동 묘역에서 뵈었던 소복의 어머니들이 생각난다. 세월이 흘러 눈물은 마를지언정 갈갈이 찢겨진 가슴은 여전히 피멍들어있을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죽어간 사람들의 가족들...
오늘일은 작은 대야에 알콜을 담아 걸레로 적셔가며 각 방들의 탁자와 난간, 텔레비전 주변들을 닦기로 했다. 방을 돌며 비워진 물병도 채우고 일어나고 싶어 하는 분들 부축도 해드리는데 얌전 할머니께서 식사 판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두르고 계신다. 아직 10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점심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할머니 배고프세요?” 했더니 “밥 먹을 때 안됐어?” 되물으신다. “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 먹을 때만 기다리는 거” 라고 6호방의 비교적 젊은 어르신이 설명하신다. 식사의 질이나 양은 충분하지만 아침 8시, 점심 12시 저녁을 5시에 하게 되니 밤 ‘9시쯤 되면 배고파’ 컵라면을 쌓아두셨고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 끓여 몇 젓가락 나누어 드신다한다. 물론 그것도 움직임이 가능한 분들의 예기이고 몸이 자유롭지 않은 분들은 누가 돕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청소를 끝내고 이방 저 방 둘러보다 [갑돌이 갑순이] 노래가사를 크게 적어 외우고 계시는 00할머니를 보며 옆에 앉았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 한 분이다.
할머니가 일하셨던 젊은 시절을 예기 들으며 여기는 언제 오셨느냐고 여쭈었더니 “자식들 고생 안 시키려고 내발로 걸어왔어” 하시는데 눈물이 핑 도신다. “할머니 마음 아픈 일 있으셨군요.” 했더니 며느리에게 섭섭했던 것을 내놓으시며 ‘멍충한’ 아들에 대한 야속함과 안타까움을 곁들여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마음을 털어놓으신다. 할머니는 계속 이야기 하고 싶어 하셨지만 점심배식시간이 되었다. 마음이 멍멍하여 가만히 할머니 손을 잡아드린 후 일어섰다. 어쩌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노인봉사중 하나가 이렇게 어르신들 이야기 들어드리고 말동무 해드리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머리가 서툰 나는 많은 체력을 요하는 목욕봉사 등은 슬며시 두려움이 일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지만 어른들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마음을 위로해드리는 일이 잘 맞는 것 같은데 글쎄, 편한 일만 찾는 건가.
9차 (5월 25일)
나의 애증(?)이 된 ‘새침’ 할머니께서 오늘은 얼굴 대하면서부터 나를 되게 시험 하신다. “똥 누고 싶다.” 하셔서 화장실로 부축해 갔는데 이미 엄청남 양의 변을 기저귀에 담아 놓으신 후였고 비숙련의 손길로 겨우 기저귀를 빼내고 변기에 앉혀드렸는데 이제 처리가 문제다. 혼자 서 있는 것도 안 되고 엉망인 상태라서 결국 회의 중인 선생님을 불러와 나는 부축하고 선생님은 샤워기로 씻겨드리고... 그러나 할머니의 정신은 오늘도 오락가락. 오늘은 잠시 틈을 내어 정00회복지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바빠서 틈내기 어려웠던 터이라 오늘은 작정하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사회복지사 입장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나 원칙은 무엇이냐고 했더니 첫째로 기관의 비밀보장원칙을 들었고 둘째, 확인되지 않는 과잉행동, 이를테면 병증으로 드리지 않아야 될 먹거리를 사다드린다거나, 심부름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난감한 경우가 있다는 것,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꾸준한 봉사를 통한 이해가 필요하며, 노인들은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만큼 정을 들이고 떠나고 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어려운 점으로는 가족 간 합의되지 않은 입소로 인하여 분쟁이 발생하거나 요양원에 엉뚱한 책임을 가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 몹시 난감하고, 문제만 하나 발생하면 이전의 모든 공과는 사라지거나 변명의 여지없이 기관측만 매도되는 경우가 있다 는 것, 사설 요양원의 경우는 특히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이해를 하게 된다.
10차 (6월 1일)
오늘로 이곳에서의 봉사 기간은 마지막 날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새삼 마음이 애틋하여 인사하는 심정으로 어르신들의 머리위에 항상 예비 되어 있어야하는 필수 항목인 물통을 세척하여 생수를 채워드리고 걸레를 빨아 주변을 닦았다.
오늘은 점심식사 후 영화 관람도 하는 날이라 프로그램 실 의자를 배치하고 영상기기들을 설치하는 일을 돕는데 안타까운 것은 매번 영화 보는 날마다 이렇게 배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강당이 있으면 좋을 텐데.. ” 했더니 “그러게요, 매번 불편하답니다.” 라는 사회복지사님 한탄.. 어르신들 관람하실만한 비디오테잎을 찾기 어렵다. [선생 김봉두] [집으로]등은 벌써 다 보셨다한다. 노인인구가 급속히 많아지는 시대, 노인들을 위한 문화프로그램이나 영상물들의 제작도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챙겨드리고 잘 못 드시는 분 보조도 해드린 후 오늘은 선생님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는 김치냉장고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인 김치가 비닐봉투에 담겨진 채 쌓여있었다. 70포기를 담았다고 하니 김장수준이다. ‘버려지는 것, 이별 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으시다’는 어르신들께 어떻게 인사드려야 할지 모르겠기에 어르신들께는 달리 인사드리지 못하고 늘 오가듯 무심히 그렇게 돌아왔다. ‘어르신들 부디 부디 평안하십시오’ 기원하며.
2.총평
1) 봉사활동이 나에게 미친 영향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짐을 든 할머니가 서계셨다. 노약자석에는 노약자 아닌 사람이 앉아 졸고(?) 있고.. 나는 기어코 “괞찮다.”는 할머니를 끌다시피 하여 자리에 앉아있는 젊은이를 일어나게 하고 할머니를 앉혀드렸고 할머니의 눈에 담긴 고마운 표정에 따스한 교감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뿌듯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일어서는 정도이지 자는 사람 깨워 일으켜 세우면서 그렇게 당연하게 과감히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폐지를 싣고 가는 할아버지의 언덕길 리어카를 뒤에서 밀고 올라갔더니 얼굴도 안 보이는 채 리어카가 가벼워진 할아버지의 ‘고맙소’라는 인사에 내 맘까지 가벼워졌고 짐 들고 가는 노인이 보이면 바빠도 그냥 받아들게 된다. 평강요양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이후로 노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훨씬 깊어진 까닭이다.
2)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창문아래 빤히 내려다보이는 공원까지의 산책이 큰 야외소풍이라도 되는 듯 즐거워 하셨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작은 나들이도 큰 외출이었던 분들.. 녹색의 나무 이파리들을 눈부시게 바라보시던 모습, 몸이 성한 분이 휠 췌어 타야하는 분을 도와 공원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시던 모습, 노래 부르시며 박수치고 행복해 하시던 모습들에, 자원봉사자들이 많으면 날씨 좋은날 매일매일 이렇게 대문 밖 공원산책이라도 하실 수 있도록 해드렸으면 좋겠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24시간 생활하는 공간인데 작은 정원하나라도 있었으면..
그리고 당신도 노인이시면서 자원봉사를 하시던 어르신 한분도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노인이 되어서도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울 수 있는 건강을 지녀야하는 중요함과 함께 건강한 몸은 건강한 자세도 지니게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은 그만큼 대체로 남들에게도 덜 너그럽고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쩔 수도 없었던 안타까움은 한 주일전만 해도 총기 있고 단정했던 00할머니가 일주일후에 뵈었을 때 영 흐려져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시던 모습 뵈며 서늘하게 가슴을 훑는 아픔이 길게 남는다.
3)봉사활동 중 문제점 및 개선점
00요양원은 할 일이 많았다. 선생님들이 쉴 틈이 별로 없었고 장시간 근무와 체력을 요하는 업무에 때때로 지쳐보였다. 나도 봉사활동 첫째 날은 할머니들 목욕을 돕는 일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몸살이 날 정도였고 처음 온 사람에게 이일 저일 숨 돌릴 수 없게 하는 바람에 ‘도대체 나 없을 땐 어떻게 했지?’ 라는 반감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노인들께서 수시로 대소변 봐다오, 물마시게 해다오, 일으켜다오, 한분이 한 가지만 요구해도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고 그 중에도 유난히 실무자가 눈에 뛰기만 하면 자꾸 불러 무어라도 요구하는 분도 계셨다. 아이들은 가볍기나 하지 신체적 조건도 다양한(특히 비만한분들이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음) 분들이 외로우시니까 더 요구가 많으신 것 같고 일손이 딸리니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움직여 거들어야 하는 상황을 알게 되니 오히려 내게 미안해하는 선생님들께 부끄러워졌다. 노인들의 억지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맞장구쳐드리는 것을 지켜보며 이일은 기본적으로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없으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존경스럽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우리학교 학생들의 사회봉사경험담을 들어보면 어떤 경우는 ‘사람이 많아 별 할 일이 없었다.’는 경우도 있고 대체로 좀 쉽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학생들이 몰려 정작 인력이 많이 필요한 곳에는 아쉬운 상황도 있는 것 같다. 봉사를 필요로 하는 기관의 신청을 받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 기관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봉사인력을 적극적으로 찾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봉사자가 갔을 때 닥치는 대로 업무를 주다보면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지속성을 가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기타
봉사라는 건 결국 이웃을 생각하며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일 것이다.
모두 바쁘게 사는 세상이고 늘 해야 할 일들이 머리에 차있는 중에도 그 한 틈을 할애 하는 것, 그래서 이루어지는 일의 성격은 어떤 것이라도 의미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땅따먹기’를 할 수도 있고 외로운 노인의 말벗이 될 수 도 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지팡이가 되기도 하고, 부당한 제도변혁을 위해 싸우는 시민단체 구호 피켓을 들고 서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은 결국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온기가 되는 동시에 나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것임을 30시간의 투자로 얻게 된 귀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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