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씨입니까?”
“그런데요”
“예전에 00에 다니신 분 맞지요?”
“네” 이 대목에서 반가움에 목소리가 커졌다.
남자는 자기 신원을 밝힌 후 “00에 다닌 어떤 사람을 찾는다.”며 “좀 길게 통화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00 이라는 대명사에 경계심을 풀고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사연인즉, 청년 때 00에 다닌 어떤 여성과 교제했는데 작은 오해로 헤어지게 되었다며 회사 앞 대림동의 ‘영화다방’에서 마지막 헤어지게 된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요는 늘 마음에 아픔이 있었다고, 그 여성이 생각나서 어느 날 인터넷으로 00 을 쳐보았더니 내 이름이 뜨고 오래 전 출판한 책제목도 나오고 일했던 곳도 나오기에 거치고 거쳐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어렵게 구해서(이미 품절이니) 읽었더니 더욱 그 여성의 상황이 이해되고 안쓰러워 너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며, 이제 무슨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꼭 한번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남성의 소망은 이루어주지 못했지만 생판 모르는 어떤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내 정보를 파악하게 되고 수십 년 전의 인연 끝자락을 되찾아오는 것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다.
그런데 왜 날 찾아 올 첫사랑은 없는가!!
우리 집은 공부하는 학생이 둘이니 일요일이면 나와 딸이 컴퓨터쟁탈의 경쟁을 벌인다. 딸이 고3이라 EBS강의나 MP3음악파일 다운로드를 많이 하기 때문에 주로 나는 아이가 없는 시간을 이용하지만 컴맹을 겨우 벗어난 기계치인 나에게도 웹 세계에 담긴 무한한 정보와 편리함은 실생활이 되었다. 도서구매에서 ‘매실엑기스 만들기’ 등 궁금증해결에서 쇼핑까지 컴퓨터는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나보다 똑똑한 우리’에 의해 ‘웹을 넘어 경제와 실생활을 지배하는 집단지성’을 옹호, 전망한다. ‘집단지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민주주의’이며 민주주의의 내용은 ‘평등’과 ‘자유’인데 웹의 세상은 그것에 한층 더 다가가게 한다는 것. 이러한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조직화’가 필요하며 ‘사회의 조직화’는 탈 권위 리더십을 통해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적 사례의 예로 “혁신과 창의성은 개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며 리더십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것을 재미있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는 노키아 명예회장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사실 촛불집회 때 인터넷이 없었다면 10만이 시청광장을 메우지는 못했을 것이고 노무현전대통령의 서거 때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500만의 문상객’이 줄을 잇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인터넷이 없었다면 시위 군중에 대한 폭력은 더 잔인했을 수 있고, 정치인들의 비리는 좀 더 가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해 입장이 공유되는 사람들이 모이고 공감과 친밀감이 형성되고 연인도 탄생하고 결혼도 하는 ‘친밀감의 구조변동’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신종플루의 원인과 예측 및 정부의 정책이 검증되고 박재범의 ‘추방’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토론한다. 비록 해악을 끼치는 이기심과 폭력도 많고 동반자살자도 나오긴 하지만, ‘이성’을 지닌 사람들은 재생산과 배포가 용이한 이 과정을 통해 건강한 지성으로 걸러 가는 측면이 더 클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웹 때문에 독자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무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맹목적 맹신이 훨씬 위험 할 수 있기에, 웹은 사상의 자유에 유익하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힘은 다양한 전문성의 결집이 가능한 것이고 서로 보완과 협력을 통해 ‘양질전화’를 이룰 수 있으며, 변화와 창조의 카타르시스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러 행복해지기도 하지 않는가.
지난해 말 블로그를 만들었다. 어느 날 블로그에 올린 친구의 글로 인해 접속자가 하루 500명이 넘는 현상이 며칠간 계속되었고 전체 조회 수가 순식간에 1만 명이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접속자는 다시 지인들의 방문정도로 가라앉았고 흥분과 허탈을 동시에 맛보았다. 내면의 욕구를 잘 들여다 본 경험이었다. 그냥 글을 쓰고 파일로 작성해두면 될 것을 왜 굳이 블로그를 만드는가? 요는 공유하고 싶고, 공감을 나누고 싶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드러냄으로써 정화되는 ‘자기치유’의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관계의 가장 높은 질은 입장을 같이하는 것’ 이라고 했다.
‘집단지성’의 의미는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그리고 그 ‘입장’의 내용적 결을 가다듬고 높여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한 키워드 또한 ‘공유’ 와 ‘함께’ 가 아닐까.
사실 이 책을 들고 막막했다. 날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나는 한 번도 게임을 해 본적도 없고 한글자판도 독수리타법으로 이용하고 검색도 서툴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싸이’를 하지만 웹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컴퓨터는 ‘정보력의 차이’라는 권력을 만들고 소외를 경험하게 한다는 말이 실감 날 때도 있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만 한다면 사회는 정체 될 것이고 다른 의미에서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 또는 기득권의 권력 또한 더욱 오만해질 것이다.
“집단적 지성을 바탕으로 위키피디아가 전문가 집단인 브리태니커를 이겼듯이” 집단화 된 ‘지성’들은 소수의 부당한 권력을 응징하기도 할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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