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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7 빌리 엘리어트 감상
 

검은 탄광촌, 새벽이면 연장통을 들고 막장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형, 노쇠한 할머니는 갈대숲을 헤매고 다닌다. 탄광노동자들은 파업 중이고 파업을 주동한 형은 경찰에 쫓기며 하얀 빨래위에 붉은 피를 흩뿌리며 끌려가고 앞날이 기획되지 않는 암울한 마을의 골목에 작은 여자아이는 늘 혼자 서 있다. 강인한 아버지는 이 계급적 질곡을 극복할 대안으로 빌리를 권투장으로 내몬다. 부모소득의 엄청난 비중이 자녀의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우리의 현실처럼 아버지의 고단한 노동으로 번 돈은 빌리의 태권도‘과외’ 비로 지출된다. 계층상승의 길은 빌리가 성공하는 것뿐이고 “발레를 좋아한다고 해서 게이는 아닌데”, 남자아이니까 태권도가 ‘적합’하다고 강요된다. 마치 강남아이들에게 이미 기득권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강북의 아이들도 열심히 하면 가능할 거라고 믿는 우리의 소시민적 욕망과도 같다.

그러나 빌리는 ‘새처럼’ 날고 싶었다. “춤을 출 때면 그저 좋았고, 몸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고,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주먹으로 누군가를 치는 권투는 빌리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 엄마를 잃은 그리움은 춤을 추며 엄마의 영혼과 교감하고, 엄마를 상상하며, 엄마에게로 날아간다. “태어나자마자”, 아니 “엄마 배속에서부터”, 춤을 춘 ‘풍선’이 되고 싶은 빌리의 꿈인 것이다.


 아버지는 누구나 가고자 하는 성공의길, ‘상식’으로 되어있는 욕망에 빌리를 꿰어 맞추려 했다. 힘든 노동의 대가는 결국 기득권층의 바닥 깔아 주기에 사용되고 의지와 관계없는 학습은 무기력만 키운다. 그러나 다행히 아버지는 아들의 갈망을 볼 줄 아는 시선과 귀를 지녔다. 빌리의 발레에 대한 집착을 ‘정상’이 아니라며 극렬히 분노했고 배신감을 표출했던 그가 빌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갈망을 이해한 것이다.

그것은 파업대열을 이탈해야하는 현실적 고뇌를 동반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위해 출근버스에 몸을 싣게 되고 동료들의 계란세례를 감수한다. ‘새처럼 날고 싶은’ 아들의 꿈과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해야하는 파업행동 사이에서 갈등하며 검은 연탄 더미 속에 서 있는 아버지의 고뇌는 막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트의 단추만큼이나 비정한 결단을 요구한다. 어떤 것이 진정 옳을까? 개인의 성취와 욕구, 공동의 이해..인간의 삶에서 수시로 마주쳐야하는 갈래이고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갈린다.


영화의 장면들이 아슴하게 남는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 본 발레선생이 아버지와 다투고 떠난 후 좁은 벽안의 변기위에서 몸의 열기를 모아 박차고 뛰어나가는 빌리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공간은 억압의 상징으로 와 닿았다. 공간 밖으로 날아올라 접질러진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춤추며 뛰어가는 등 뒤로 펼쳐지는 파란바다는 꿈처럼 해말갛지만 다시 억압과 현실의 녹슨 슬레이트 벽 앞에 서게 된다. 그러나 이 절망의 벽은, 자신 또한 억압의 희생자이면서 재생산해내는 주체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결단이 넘어서게 해준다.

타성과 자아성취의 욕망사이에서 빌리 부자가 선택한 자존의 꿈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또한  소수의 성취이자 부러움의 대상일 뿐, 빌리가 섰던 벽만큼이나  돌아서 보이는 현실은 거대한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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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