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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파시즘

단상 2009. 5. 12. 08:43
 

'지위로 말하지 말고
 욕망으로 말하지 말고
 화를 내면서 말하지 말라'

어제 지하철역에서 본 구절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요즘, 지위로, 나이로, 욕망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나의 가족들, 또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으로 말 해왔을까?

그리고 또 나의 가족,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말하고 있는걸까?
말, 이것이 나의 화두다.
 

 엊그제 일요일, 고3 딸의 방을 함께 정리하는데 과자봉지가 나왔다.

아무 말 하지 않는데도 딸은 면구스런 표정이다.

그러더니 한마디, “엄마, 나는 어릴 때 정말 엄마가 악마 같을 때가 있었어, 어느 날 어린이 집에서 과자파티 한다고 과자 사가야 된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런 파티를 도대체 왜 하느냐’고 불만을 보였고 나는 눈치를 봐야했어. 엄마는 과자 같은 거 무지 싫어했으니까. 나 뭐든 하려고 할 때 엄마 눈치 많이 봤다, 엄마는 너무 옳지만 정말 억압적이었다니까, 요즘 은 우리엄마 같아”

딸은 이렇게 가끔 과자를 사다먹는데 가능한 감추려고 한다.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멀리서 발견한 아이아빠가 “혜인아” 하고 불렀더니 깜짝 놀라며 먹던 과자봉지를 감추더라는 것. 그 말을 듣고 순간 마음이 짠하긴 했지만 한바탕 웃었을 뿐 나의 억압을 반성하지 못했다.

운동을 하면서 내 안에 자라는 파시즘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항상 정당하고 내가 가는 길은 늘 모두가 가야 할 길이고 내 말은 ‘민주화의 열망을 담은 것이니까 다 인정해야 하고..’ 무슨 천하를 뒤바꾸는 일을 한다고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렇게 오만해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능한 유기농을 먹어야 하고 과자는 건강에 아무도움 안 되는 유해식품이고, 모든 것은 비판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고 부당하면 싸워야 하고.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고...’그렇게 내 울에 갇혀 모든 것을 재단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던가? 어설픈 이데올로기가 나를 띄우고 부족한 성찰은 정신을 강팍 하게 했다.

 ‘너를 위한 거니까’라는 뚜렷한 명분(?)으로 먹는 것, 좋아하는 것도 조목조목 선별하여 안겨주는 엄마라는 권위 앞에서 언변으로도 논리로도 항변할 길이 없었던 아이는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을까?

모든 엄마들은 다 그렇고 아이들은 그렇게 자란다고? 아니다. 권력을 지닌 자의 허약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라고 나는 요즘 새록새록 깨닫는다.

(대학은 너가고 싶은 곳, 너 하고 싶은 과 자유롭게 선택하렴.)
그러나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내면화 된 강제가 작동할수도 있나?
하기야 나는 학원아라든가 학습에 관한것은 강요해 본 기억이 없다. 보내달라면 형편되는 대로 해 주었고 다니기 싫다면 '돈 없는데 잘 생각했다'며 얼른 '끊어'주었다. 그래서 늘 아이를 존중해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늘 서점에 가서 책을 사주었고 책을 천성적으로 좋아한 아이는 그 만족감으로 다른 것을 상쇄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딸은 나의 ‘민주적’바탕을 건강한 이성으로 수용했고 이제 성인이 되어 친구처럼, 때론 보호자처럼 나를 위안하고 문제를 짚어내 주고 반성하게 한다.
 미안하고 ,고맙고, 고맙다.


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