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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7 이 여성들이 묻는다…"넌 '노예'냐, '노동자'냐?"
  2. 2009.04.29 사람에게 가는 길

[프레시안 books] 원풍모방 노동자의 <못 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전무후무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도처에 먹고 입고 소비할 수 있는 상품들이 넘치고 넘친다. 도처에 쓰지도 않고 쓰레기로 버리는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물론 반드시 돈이 있어야만 천국이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도처에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거르거나 굶주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고깃국은 1년에 딱 두 번 설날과 한가위 때 구경할 수 있었다. 옷이 없어 누더기를 기워 입어야 했고 연필은 손가락으로 잡을 수 없이 닳을 때까지 쓰다가 볼펜 깍지를 연필에 끼워 사용하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1960년대, 1970년대 남한은 2010년의 북한이었다.

이런 풍요는 누가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박정희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런 풍요의 세계를 만든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1970년대 섬유 산업과 전자 산업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만들었던 부를 바탕으로 한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선진 공업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말이 여성 노동자들이 만든 '부'이지 그 과정은 가혹한 착취와 지옥같은 억압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실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은 극심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군대식 노무 관리에 시달렸던 사실상의 임금 노예였다. 하루 열서너 시간씩 일해야 했고, 심지어는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으며 2, 3일 철야를 밥 먹듯이 하고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임금을 받았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자본주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공동체를 해체해야만 가능한 제도였다. 자본주의 임노동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땅에 뿌리박은 농민 공동체, 마을 공동체를 가차없이 때려 부수고 공장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모래알 같은 임금 노동자들을 강제로 만들어 내야만 한다.

서구에서는 지주들의 울타리 치기 운동(인클로저 운동)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해서 양떼에 쫓겨 농토에서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수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농토에서 '해방'되어 공장으로 '자유'로운 노동자로 취업하였다. 물론 이것은 임금 노예의 길이었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고, 갈 데라고는 오로지 공장밖에 없는, 착취당할 자유밖에 없는 임금 노예들이 있어야 자본주의는 굴러갈 수 있다. '착취-피착취' 관계가 기본 구조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공동체' '회사 공동체' '공장 공동체'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혹 그런 말을 쓰는 자본가나 정치가가 있다면 그 말은 사기꾼의 달콤한 교언영색이자 말장난이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경제 개발 계획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고, 1962년부터 1975년까지 그야말로 대탈출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려 750만 명에 이르는 농촌 인구가 대도시로 이주했다. 역사상 이처럼 짧은 시기에 이처럼 엄청난 인구가 이동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계집애'였기에 학교에도 가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이 '공순이'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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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김영주·김이정·이재웅·장남수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 ⓒ삶이보이는창
그런데 이런 노예와도 같은 공장 생활에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희망의 공동체를 발견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에게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신천지였다. <못 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삶이보이는창 펴냄)는 바로 그런 새로운 공동체였던 1970년대 민주 노동조합 가운데서도 그 강한 조직력으로 군사 독재 정권의 탄압을 가장 오래 견뎌냈던 원풍모방 노동조합 조합원의 이야기이다.

그냥 단순히 조합원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여성 노동자로 살았다는 것이 어떤 삶이었는지 그 기가 막힌 삶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황선금, 차언년, 이영자, 박순애, 양승화, 김오순, 양태숙 등 7명의 각기 다른 삶의 굽이굽이를 장남수, 김이정, 김영주, 이재웅이 구술 받아 정리한 글들로 엮어져 있다.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더 다양하고 깊고 풍부한 것이 실제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이다. 구술 생애사는 한 개인의 역사이자 동시에 시대를 증언하는 생생한 시대사이기도 하다. 이 책의 첫 글을 읽으면서 아마도 어떤 사람은 필자처럼 콧날이 시큰해지고 애써 눈물을 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지독한 가난과 계집애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억울함, 그리고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공부도 하지 못하고 공장의 공순이로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의 고단한 행적은 우리 시대의 오디세이에 다름 아니다. 이 기록은 1970년대, 19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생생한 삶을 대변하는 일종의 사기 열전에 해당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다만 구술 생애사 본래의 취지에 맞게 인터뷰 내용을 날 것 그대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책을 펴냈으면 훨씬 더 생생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장남수의 글과 앞에 있는 몇 사람의 생애사 정리를 제외하고 뒤로 갈수록 글의 생생함이 떨어지는 것은 이 책의 기획 의도인 구술 생애사를 다르게 해석하고 집필한 결과이지 않나 싶다.

이 책과 동시에 출판된 <원풍모방 노동운동사>(김남일 정리, 원풍모방노동운동사발간위원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와 함께 19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재조명은 특히나 지금처럼 노동운동이 더할 수 없이 침체와 고립에 빠져 그 어떤 돌파구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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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풍모방 노동운동사>(김남일 정리, 삶이보이는창 펴냄). ⓒ삶이보이는창
무엇보다도 우리가 다시 1970년대 민주 노조운동을 다시 불러내 얘기를 들어야 하는 까닭은 노동조합 운동이 공동체 운동, 그것도 생활 공동체 운동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새롭게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 공동체가 전제되지 않는 노동조합은 사실 미국의 노동조합처럼 일종의 사업 노동조합으로, 자본과 거래를 하는 '비즈니스 유니언이즘(business unionism)'으로 전락하고 만다. 노동 공동체고 뭐고 사라진 폐허 위에 돈다발만 오고가는 순전한 이익단체로 전락해버린 것이 미국의 노동조합들이며 불행하게도 한국의 노동조합이 그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이 새로운 공동체로서 자유로운 인간들의 상호부조 사회로 바꾸는 근거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고 또 평등과 사회 정의가 확립되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가 되지 못한다면, 사회 구조를 배우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학교가 되지 못한다면, 그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결국 노예의 노동조합과 노예 노동자일 뿐이다. 심하게 말하면 배부른 노동 노예들, 배부른 가축들, 배부른 기계일 뿐이다.

1970년대 민주 노동운동을 관통하던 가장 주요한 노동운동 이념은 그 근본 바탕이 공동체 이념이었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마당이자 새로운 공동체였다. 산업 선교와 가톨릭청년회의 소모임은 그 자체가 강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소공동체 운동체였다. 이 책에서 숱하게 나오는 증언처럼 소모임은 그 어떤 거창한 이념 학습의 조직이 아니었다. 그냥 일상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자신이 하나의 살아 있는 인격체로서 인정을 받고 인정을 하는 기초 공동체였다. 그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공동체로 발돋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운동뿐만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 시민사회 운동도 어느새 이런 공동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역사가 우리의 삶을 좀 더 성찰하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면 우리는 민주 노조운동의 거울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에 이르렀다. 한국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조직으로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도 1970년대 민주 노조운동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서 실천했던 공동체 운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들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새로운 모임으로서 노동조합이 재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협동조합을 비롯해 공제조합 등등 다양한 노동자 조직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로버트 오웬이 "자본은 노동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펼쳤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많은 시사를 남겨준다.

1970년대 민주 노조운동은 한 사람의 노동 노예를 자유인으로 변혁시켰던, 공순이를 자랑스러운 노동자로 해방시켰던 인간 해방의 운동이었다. 억압과 착취의 인간관계를 사랑과 평화의 평등의 인간관계로 바꾸는 사회 해방의 운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체가 해체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애와 협동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던 공동체 운동이었다. 원풍모방 노동조합 조합원이었던 여성 노동자들이 원풍 이후의 삶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국가가 원풍을 비롯한 1970년대 노동 공동체를 깨부수고 또다시 노예의 삶을 강요했을 때 이들 여성 노동자들은 이것을 거부하고 자유인의 삶을 살아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동체를 해체한 국가를 해체하고 새로운 공동체 국가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원풍모방 노동자들이 살아왔던 삶은 그런 삶이었고, 공동체 운동의 오래된 미래를 실천한 삶이었던 것이다.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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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

사람에게 가는 길

강의실 2009. 4. 29. 18:38
 
08년 봄 작성

 [사람에게 가는 길] 에 대한 감상.

    사람에게로 가는 먼 길           

                             
나의 작은 경험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농촌마을은 가히 공동체적이었다. 일가들이 모여 살며, 같이 지붕 올리고, 모심기도 일렬종대로 하고, 타작마당도 시끌시끌했다. 설날이면 왼 종일 동네사람들이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러 왔고 대보름에는 동네 앞 강변에서 윷놀이 판이 벌어졌으며 가마솥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좋은 기억이 남아있지만 사실 공동체적 삶은 때로는 피로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 시시콜콜해서 간섭되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럼에도 가난했지만 훈훈했던 것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고 ‘산업전사’로 공장노동자가 된 이후 삶은 많이 달라졌다. 열 명이 넘게 사용하던 좁은 기숙사 방은 나름대로 매겨진 서열에 따라 자리가 배정되었고 노동력은 철저히 상품이 되었다. 개인의 신체적 조건, 사정 같은 건 통하지 않는 이윤의 도구로 계산되는 상품..거대한 구조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생활이 되었던 청년시절을 거쳐 팍팍한 노동자의 아내로, 치열한 교육현장의 아이 엄마로 살면서 누적된 도시의 피로감은 ‘오래 된 미래’를 그립게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농촌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하고 엄마 아빠도 농사지으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설득해 본 적이 있다. 아이는 “싫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적극적으로 추진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편리함과 개인주의적인 아파트형 인간이 되어버린 타성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생활 속에서 작게나마 경험해본 공동체의 모습들은 대개, 시작은 좋았지만 끝이 희미했다.


 오래 전 도서관공동체의 실무를 맡은 적이 있다.

D조선노동자들 10여명이 공동 출자하여 작은 공간을 하나 빌리고, 트럭 끌고 상경하여  출판사를 한 바퀴 돌아 기증도 받고 할인가로 구입도 하여 오천 권쯤의 도서를 구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00 도서원]이라 이름 짓고 D조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면서 지역주민들께 무상으로 대여하고 저녁시간에는 노동자들의 모임방 구실을 하였다. 작업복의 노동자들이 퇴근 후 밤늦게까지 들락거리며 책을 보거나 소모임을 꾸려 토론도 하면서 정서를 공유하는 편안한 쉼터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에 영향을 미치던 이 공동체를 기관이 그냥둘리 없는 시대였고 결국 출자했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5-6명이 ‘불온서적소지’등의 구실 하에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도서관은 와해되고 말았다. 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와 가족들이 밀집하여 생활하는 지역에 동네 쉼터로, 자유롭게 책을 접하는 공간으로, 나름의 역할을 했던 그 시절의 따스하고 열정적이었던 기억은 아련한 추억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살 때 유정란을 비롯하여 과일과 채소 등 농수산물을 공유하는 먹거리 공동체 회원으로도 참여한 적이 있다. 만원이었던가, 참가비를 내고 두부나 토마토 등을 주문하면 배달해주었고 간혹 농장을 견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품의 다양성부족과 일꾼들의 인건비등 구조의 한계를 노정했고 지속성을 갖지는 못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이야기니 인터넷상거래가 활발하지 않았고 상품의 사진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주문은 전화로만 이루어지고, 종류도 한정되어 있어서 주부들이 식단을 꾸리려면 어차피 또 시장을 나가야 해결되었고 생산자가 밭에서 일하다가 전화 받고 배달하고 하는 등 너무 수공업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공동체를 주도했던 목사님은 공동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대안학교와 함께 대체의학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며 생활하는 공동체를 꿈꾸고 계신다.

내가 경험한 약간의 공동체적 사례는 지속성을 지니지 못하고 끝났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현실적인 (지속적 운영과 전망이 가능한) 공동체들이 만들어져서 사람들의 삶이 좀 더 풍요롭고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늘 있다. 지금 사는 동네에도 지난 2월에 이사와서보니 통로모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5층짜리 빌라의 열세대가 대상인 통로모임은 월 회비를 만원씩 내어 회식도 하고 정화조등 공동비용도 지출 하는 등 반상회 겸 친목회 형태이다. 그런데 딱  한집이 참석도 않고 회비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며 아홉 집이 모여 그 집을 ‘흉’보고 있었다. 처음 참석해서 잘 난 척 하기 어려워 듣기만 했지만 이런 경우가 난처하다. 사실 통로모임이라는 게 무슨 규정이 있어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 닫고 살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인데 강제된 룰에 동의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것이다. 나도 사실 월 회비를 만원씩 내는 것, 바쁜데 모임참석 등 마땅치 않은 측면도 있지만, 고립되지 않으려고 동참할 뿐 크게 의의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도 공동체를 꾸리는 경우에 개인의 사적공간에 대한 고민이 함께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교훈을 주는 한 예일 것이다.

[사람에게 가는 길]을 보면서 다양한 공동체의 형태가 가능하고 인간의 본래적 특성이나 자유의 기질을 잘 살리면서도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 반갑고 희망적으로 와 닿았다.


다양한 공동체들

미국적인 공동체 트윈옥스는 어쩌면 내게 잘 맞는 형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지도자도, 종교도 강요되지 않는 자유로운(?) 공동체.

트윈옥스와 같은 것이 한국에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멕시코의 로스 오로꼬네스는 ‘잘 만들어진 환경과 교육을 통해 사람이 바른 행동, 경쟁이 아닌 협동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바람직한 교육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나로서는 몹시 부럽고 부러웠다. 교육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차적 조건이 바른 교육, 세상과 사람을 보는 따뜻한 시선을 키우고 삶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믿는 나는 정말이지 우리아이를 보내고 싶은 환경이었다. 더구나 발달장애로 11살이 되었는데도 말을 못하고 평범한 아이들과 행동이 다른 나의 조카가 그런 곳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해지는 곳이었다.


미국을 흠모했던 저자의 친구가 왜곡된 신앙으로 생활하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로우캠프는 소개되었다. 친구에 대한 마음 아픈 기억 속에서 처음만난 후배친구의 남편과 맺은 우정은 이게 바로 우리식의 공동체라는 탄성이 나올 만큼 훈훈했다.

살다보면 좋은 친구도 허전함을 남기는 관계로 남기도 하고 생판 처음 만나서도 만리장성  만큼이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신영복 선생님은 ‘관계의 가장 높은 질은 입장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입장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오랜 친구도 공허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라는 이현주 시인의 시처럼 버릴 수 있는 것, 집착도 욕심도, 도시의 자본주의적 편리함도 훌훌 벗어던질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공동체적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쿠바의 도시지역 협동 기초생산조합(UBPC)도 특별히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 마음에 많이 남는다. 국영과 개인이 (사적소유) 적당히 혼합된 형태로 잘 경영되는 것 같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농림부장관이 400페소, 의사가 350페소인데 농장 책임자가 600페소를 받는 노동력대가의 산출방식이다. 노동을 통한 잉여의 분배가 큰 갈등을 내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쿠바는 가난했고 그 가난에 대한 해석지점이 달랐다. 이를테면 김병수씨는 “경제체제의 문제도 있겠지만 미국과의 적대적 대치상황에 따른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이 주요원인” 이라는데 비해 쿠바의 어느 젊은이는 “쿠바는 경쟁하지 않아도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는 것, 직업이든 뭐든 개인의 선택폭이 별로 없는 것”을 불만으로 제기하며 ‘경쟁 없음’을 문제로 제기한다. 과연 어느 지점이 더 근접한 답일까? 그리고 과연 행복의 지수는 어떻게 차이가 날까? 궁금한 대목이다.

쿠바는 혼란해보였다. 공동체적 삶과 자본주의적 욕구의 혼란이 뒤섞여 힘겨운 듯 했다. 김병수씨를 곤혹스럽게 했던 (아기우유 살 돈도 없으면서 술을 마시고 술값을 씌우는 등 치졸하고 비루한 태도) 빅토르의 모습도 참 가슴 아픈 광경이었다. 그러나 소년 다이에르에게서 나 역시 희망을 보았다. 그래 ‘사람이 희망’이다.


독일 사람들은 근검정신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그런 것 같다. 70년대에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귀국한 어떤 선배도 독일생활을 통해 몸에 밴 검소함이 있었는데 자전거타기를 즐기던 그 선배를 따라 자전거를 타다 무릎이 깨진 기억도 있다. 베를린의 재활용퍼포먼스를 통해보는 독일 사람들의 역량이 큰 교훈으로 와 닿는다.


‘철학이 가장 재미있다’는 캐나다의 여고생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나도 요즘 정치사상사를 공부하면서 재미없게 서술된 철학책이 엄두가 나지 않고 질린다. 강의를 통한 철학자들의 사상이 매우 흥미로운데도 우리의 책들은 왜 대개 도식적일까. 캐나다의 여학생이 읽고 있던 그런 철학교과서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과 함께 ‘국민의 수준은 그 나라의 철학교육의 수준’이라는 김병수씨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철학공부만 해왔어도 지난 12월대선과 4월 총선이 이런 식으로 치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민주주의는 훨씬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내가 일했던 시민단체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길만 보면 ‘000님 좋아하는 길이네’라며 나를 돌아보곤 했다. 내가 오랫동안 함께했던 지역의 시민단체를 떠나올 때도 그 단체의 대표 한분은 그곳의 아름다운 길을 흑백으로 찍은 사진을 곱게 액자에 담아 주었다.

그만큼 나는 길을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하던 일 멈추고’걷기명상을 하는 프랑스의 플럼블리지는 향수처럼 고즈넉하게 와 닿았다. 더구나 또한 불교적 분위기를 좋아하기에 이 장을 읽으며 김병수씨가 참 부러웠다. 아이도 남편도 비용도 걱정하지 않고 나도 그렇게 걷고, 떠나고, 버리는 경험을 하고 싶다.

아무튼 김병수씨를 보내며 ‘눈동자에 이슬이 맺힌’ 바니의 딸이 부디 건강하길..


전쟁의 상흔은 팔레스타인의 아름다운 젊은이 라미스에게도 잔인한 멍을 남겼다. 자식에 대한 사랑의 왜곡은 국적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어쩌면 제국주의보다 더 자식의 일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라미스 아버지의 모습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욕심일 것이다. 원하는 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 것에 대한 .. 그런 라미스 등에게 우리 김00 교수님의 사모님께서 한국음식을 마련해주셨다니 참 다행이다. 그렇지, 영국의 우드블럭에서도 김병수씨를 태워주기 위해 우리의 김00 교수님이 등장하셨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교수님은 사모님과 함께 포시럽게 유학을 하셨나??

부디,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의 죄 없는 영혼들께 평화가 만들어지기를... 그리고 ‘중동평화를 지원하는 한국 유기농업농민의 인터내셔널 만찬’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수 있었으면..


아, 까삐웅 마을의 ‘노세 노세~~’적 낙천성은 무지 부럽다. 정말이지 삶은 행복해야 한다. 죽어라고 일만하고 죽어라고 공부만하고 죽을 듯이 욕심 부리고 집착하고..그런 것 말고 일도, 공부도, 사랑도, 정치도 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즐거움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 너무도 각박하고 치열하게, 세상에, 연애도 결혼도 죄스러운 시절을 살았던 만큼 정말이지 행복 하고 싶다. 이것저것 다 뒤로하고 이 나이에 과감히 자식또래의 친구들과 섞여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기적이지만 내 행복을 위한 것이었고, 지식의 확장을 통한 풍요로움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김병수씨가 말했듯 ‘팔당 농민들의 사는 모습이 삭막하고 고단한’ 것이 나는 싫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아마존에서 김병수씨가 경험한 다이메는 마치 우리의 무당들이 하는 전통 굿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면에 잠재된 모든 것을 드러내어 ‘난도질’ 함으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의 치료는 영혼과 마음의 치료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개념 같은 것 아닐까? 또는 불교에서의 비움, 무상 같은 것,


맺음.

2년 6개월, 세계 21개국 38개 공동체마을의 방문을, 나는 일주일여에 걸쳐 쉬엄쉬엄 여행했다. 좋은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사람을 찾아, 사람의 마을을 돌며, 삶을 나누고 배우려 애쓰던 그가 마지막 장에 마주하고 선 것은 자신이었다. 결국 사람에게로 가는 머나먼 길은 자신, 곧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울림을 던진다.




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