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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8 뙤약볕 아래 선 갈망들..
  2. 2009.05.03 위대한 게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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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객이 확인 된 경우만도 100만을 넘었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 아니냐는 억측도 나온다.
그러나 근거없는 억측은 제발 하지 말았으면..
그의 영전에 쌓여가는 국화꽃과,
오월이 무색한 한  여름같은 뙤약볕 속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이 사람들을 본다면 '바보 노무현'은 뭐라고 할까?
 "아이구 여러분, 저를 버리시라고 말씀 드렸는데 이러지 마십시오. 그만 하시고요, 됐고요.." 하며 특유의 부끄러운 웃음으로 손사레를 칠까?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민주주의는 많은 시련을 요하듯,
뜨거운 햇살아래 시련을 감당할 결의처럼,고행처럼,
줄지어 선 갈망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하며 노무현, 그를 보내고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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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

위대한 게츠비

강의실 2009. 5. 3. 17:11
 

                           '위대한 개츠비' 에 대한 감상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미국은 연합국으로서의 위치를 활용하여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된다. 또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밀려들어 온 이민 노동력과 컨베이어 시스템의 기술력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사회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이 시기 상류층인 톰과 개츠비 들이 누리는 풍요 뒤에는 윌슨들로 상징되는 극빈의 그늘이 시한폭탄처럼 잠재해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철강노동자들과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고 과잉 생산된 농산물가격의 폭락으로 농민들의 고통도 극심했다. 소설에서 개츠비의 파티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상원의원, 담배수입 업자들 속에 영화업자(심의위원등)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도박을 하러 오는 자본가가 등장하면 다음날 그의 회사 노동자들은 ‘잃어버린 도박비용을 만회하기위해 ‘파동’을 겪어야한다는 언급을  통해‘황금기를 구가하던 상류층의 그늘에서 착취당하는 빈곤층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또한 현대문화의 소비와 탐욕의 한편에서 청교도적 근본주의가 충돌하면서 발효된 밀주금지법은 되려 조직범죄집단의 돈벌이수단이 되었다. 개츠비의 재산축적 도구로도 작용한 밀주판매의 이면에서 당시 노동자들은 또 다른 방식의 불만을 토로한다.

“주류제조 판매금지법은 노동자들을 좀 더 부려먹으려는 수단으로 작동되었다. 노동자들로부터 술을 빼앗아가고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클럽을 문 닫게 했지만 상류층은 여전히 즐기고 있다. 그들에게 금지법은 소용없으며 그 자들의 클럽은 신성불가침이다” (『마더죤스』 이옥경 옮김 1978년, 평민사)

 더구나 당시 라디오, 영화 등 문화와 상업매체들의 활성화로 풍요의 불빛은 더욱 화려했을 것이고 윌슨들의 소외는 더 깊었을 것이다. 풍요와 어울리는 ‘매력적’인 여인 데이지와 그의 육촌이며  화자인 닉의 대화에서 빛 속에 내재한 어두움은 빛나는 문체로 암시된다.

   데이지-나는 너무 행복해서 몸이 굳어버릴 지경이에요...그 사람들(전에 살던 곳의)
             내가 없어서
쓸쓸해하던가요?

   닉-도시전체가 황량하던걸, 모든 차들은 뒷바퀴를 검게 칠했고 북쪽해안 일대에서는
           밤새 통곡
소리가 나더군.

 서두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데이지가 가난한 군인이었던 개츠비를 외면하고 택했던 물질적 풍요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개츠비의 표현대로“돈으로 가득 찬”데이지의 과장된 호들갑스러움이 “너무 행복해서” 황량해 보인다.


 우리의 주인공 개츠비는 계층의 한계로 사랑하는 데이지를 잃게 된 후 금지법을 어기며  ‘아메리카드림’의 완성품이 된다. 그리고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었고 불빛아래 모여드는 불나비들처럼 미국사회의 군상들이 날아든다. 그러나 번쩍이는 파티의 조명도, 사람들도, 물질적 풍요도 개츠비의 영혼을 채우지는 못한다. 그의 열망은 오직하나 데이지의 사랑을 찾는 것이다. 그가 불법을 저지르며 이루어 온 모든 부의 근원에는 ‘사랑’이라는 숙명적 열망이 자리해있다. 그러나 이미 흘러가버린 옛사랑을 되돌려보려는 집착은 결국 비극적 파멸로 끝나고 만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를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듯, 아메리카드림의 탐욕 뒤에 도사린 정신적 빈곤은 한방의 총성으로 극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지닌 집요한 열망이 사랑 만이었을까? 좌절된 욕망으로 인한 분노로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데이지가 현재 누리는 것을 넘어서 과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개츠비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고독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반대편의 녹색불빛, 즉 탐욕이 아닌 영혼의 갈망 아니었을까?

2008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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