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현호 기자
» 여현호 논설위원
서울대 교수 124명의 시국선언을 두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서울대 교수 전체가 1700여명 되는데…”라고 말했다. 소수의 아우성이라는 폄하다. 11일치 <조선일보>는 서울광장에서 ‘시위’가 ‘시민’을 몰아냈다고 비난했다. 광장에 모인 이들을 시민이 아니라 시끄러운 일부 시위꾼으로 본 탓이다. 뉴라이트 계열 대학교수들은 성명에서 잇따른 시국선언이 ‘다수가 공감할 수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침묵하는 다수’의 생각과 지성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는, ‘시끄러운 소수’에 휘둘리지 않는 ‘다수의 선량한 국민’일 것이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바로 그런 뜻으로 그리 말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1969년 11월 닉슨은 ‘침묵하는 다수’의 지지를 호소하며 재선을 위한 정국 반전을 시도했다. 그가 겨냥한 쪽은 히피 따위 저항문화에 질색하는 이들, 과세 부담과 인종차별 완화에 반감과 불신을 가진 이들이었다. 닉슨의 시도는 근거가 있었고, 응답도 있었다. 중서부와 남부에선 그런 정서가 광범위했고, 기독교 보수주의와 네오콘의 태동도 그즈음이었다. 닉슨은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지금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한다는 이들이 그런 응답을 받는 것 같진 않다. 숫자로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시국선언 참여 교수들이 일주일 만에 4300명
을 넘어서는 동안 뉴라이트 계열 교수 성명엔 서울대 교수 2명을 포함해 128명이 참가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시국선언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국민 열에 여섯꼴이다. 여론조사에선 압도적
다수에 가깝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한다는 응답도 그쯤 된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에서도 집권당이 참패했다. 그들의 ‘침묵하는 다수’는 지금 어디에서도 증명
되지 않는다.

혹시 그들은 ‘침묵하는 다수’를 말하면서 정치나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대중을 기대한 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재선 뒤 닉슨은 “보통의 미국인들은 어린아이들과 마찬가지”라며 침묵하는 다수
를 업신여기는 말을 예사로 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전의 실상을 속였고, 워터게이트도 은폐하려
했다. 71년 닉슨 행정부의 용역을 받아 나온 한 보고서는, 강압적인 직장에서 보상 없는 일에
시달린 나머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그 시대의 미국인들을 ‘침묵하는 다수’
로 표현했다. 정보의 과잉공급이 결국 대중을 사회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침묵하는 다수로 만든다
는 70년대 한 철학자의 통찰도 있다. 그런 방관자의 모습이 ‘침묵하는 다수’라는 보수층의 신화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한국 사회에선 정치적 환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 정보가 무한대로 오가면서 대중은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더 똑똑해졌다. 촛불이 그 예다.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강요된 침묵이 87년 6월항쟁으로 깨진 뒤, 시민들은 축구 응원이든 촛불
집회든 열정을 분출하면서도 집단적 지혜를 잃지 않았다. 깨어 있는 대중의 모습이 바로 이렇다.

‘침묵하는 다수’란 개념은 마케팅에도 있다. 문제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바로 불만을 표시하는
소비자는 얼마 안 되더라도, 침묵했던 다수의 소비자들 역시 대부분 주위에 불만을 전하고 결국
가게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드러난 불만을 가볍게 여기다간 물 아래 거대한 몸체를 지닌 빙산에
부닥치듯 망하게 된다는 얘기다. 침묵하는 다수가 자기 편이라고 참칭하는 이들도 거대한 빙산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드러난 일각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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