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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19 '버티는 삶' ....
  2. 2012.07.27 독서 -<제국의 부활>
  3. 2012.04.23 동주 이야기 두번째~
  4. 2011.04.14 <나는 가수다>에 투영된 욕망
  5. 2011.04.14 스무살의 노동 OTL

'버티는 삶' ....

공감 2012. 8. 19. 08:58

http://goo.gl/LyZOi

 

‘버티는 삶’ 투쟁 2000일, 콜트·콜텍 노동자들

글 장남수_원풍노조, <빼앗긴 일터> 등 집필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마친 콜트악기 노동조합 방종운 위원장의 부인 이쌍심(56세)씨의 눈은 피로에 젖어 있었다. 간병인 일을 한지 벌써 8년. 24시간 맞교대를 하고 나오면 잠을 자야 하는데 여름에는 방이 더워 잠들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대충 집안일을 하며 낮 시간을 버틴 후 저녁을 먹고 이른 잠을 청한다.


남편 회사가 ‘위장 폐업’을 한지 딱 2000일이 지났다. 3천만 원의 융자 빚이 남아있는 작은 빌라는 자칫하면 넘어갈 지경에 있고, 대학을 간신히 졸업한 두 자녀의 학자금 대출도 1천만 원 이상 남아있다. 사람들이 “그런 대학도 있었어?” 라고 말하는 대학을 졸업한 스물아홉 살 아들은 한 달에 실 수령액 80여 만 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스물여섯 살 딸도 도시락까지 들고 다니며 딱 아들만큼 받고 일하다 때려치운 채 우울해 하고 있다. 한창 청춘인 자식들이 연애도 결혼도 엄두를 못 낸다. 한쪽 창으로 밖에 바람을 받을 수 없는 작은 빌라, 그나마 쌓이는 빚으로 풍전등화가 된 집안은 낡은 선풍기 한 대만 돌고 있었다. 그 작은 공간 한쪽 벽에 콜트공장에서 남편이 받은 공로패 두개가 하얗게 먼지를 쓰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24시간을 일하고 나오면 손을 움직이기도 싫어서 집안정리가 안 된다고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굴뚝같지만 버텨야 한다. 그녀가 병원에서 돌보는 환자는 6명, 환자 1명이 한 달에 80만 원의 간병비용을 병원에 내지만 이쌍심 씨에게 돌아오는 한 달 수입은 120만 원이다. 하루라도 결근하게 되면 일당이 빠진다. 그 돈으로 한 달에 10만 원씩의 원금을 포함한 융자 이자만도 50여 만 원이 나간다. 정말이지 소금반찬으로 밥 먹듯 그렇게 살아왔다. 남편이 제대로 일을 할 때만 해도 시댁의 제사를 둘째 아들인 방종운 위원장 집에서 지냈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어려워지면서 제사도 불가피하게 큰형님이 돌아가시고 없는 장조카 집으로 옮겼고 관계도 다 멀어졌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시댁 형제들과는 얼굴 본지도 오래 되었다. 원래 손이 큰 이쌍심 씨는 돈 걱정 없이 선물도 하고 베풀고 살고 싶지만 도리가 안 되니 관계도 불편하다. 친정 형제들은 모두 그냥저냥 어렵게들 살지만 우애가 좋다. 쌍심 씨가 시간이 없으니 그들이 가끔 찾아 와 준다.

남편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데다 평생 노동조합 일에 미쳐 월급은 늘 반 토막이었다. 하도 사는 게 어려워 젊을 때는 많이 싸웠지만 이제는 원망마저 포기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기엔 현실이 너무 버겁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속 안 썩였어요. 아빠가 속 썩였지.” 이쌍심 씨는 허탈하게 웃었다. 도대체 언제 해결이 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지만 이제는 습관처럼 익숙해지기도 했다. 대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 했는데도 꿈쩍도 않는 사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지난 총선 때 이쌍심 씨는 투표도 하지 못했다. 아침 6시 반에 출근을 해서 다음 날 아침까지 24시간을 묶여 있어서 투표할 틈이 없었다. 투표하겠다고 지각을 할 수도 결근을 할 수도 없다. 올해 12월 대선? 그것도 가 봐야 안다. 그날이 마침 비번이면 가능하지만.

그러나 대통령을 바꾸면 달라질까? 누구로 바꾸면 어떻게 달라질까? 확신이 없다.
이쌍심 씨는 요즘은 성당에 나가면 부디 우리가족 건강하게만 해주십사고 기도한다. 건강마저 잃으면 버틸 수 없으니까.

이쌍심 씨가 아이들 건사하며 가계를 끌어가는 세월 동안 남편은 공장의 농성 텐트 안에서 찬바람 더운 바람 고스란히 받으며 버티고 있다.

2007년 4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부평공장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내친 회사는 2007년 7월 이름만 다르게 되어있는 대전의 콜텍도 폐쇄했고, 2008년에는 국내에 남아있던 공장을 모두 폐쇄했다. 잘 나가던 회사를 차근차근 정리 한 것이다.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면서 인건비가 싼 해외공장으로 빼돌린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동안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점유하게 된 콜트사장 박영호는 국내 120위 안에 드는 부를 거머쥐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중국공장에서 기타를 생산하고 기타네트, 콜텍엠아이씨, 콜텍문화재단 등을 거느리며 ‘세계최고의 기타생산’ 업체라고 자랑한다.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타당성이 없어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는 복직은커녕, 대법원의 판결을 조롱하듯 판결한지 3개월이 지난 5월 31일자로 ‘2차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재 해고를 단행했다. 방치해 두었던 공장 부지도 팔아치웠다. 그동안 장인(匠人)의 자부심으로 ‘세계 최고’의 기타를 만들어 회사를 성장시켰던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책임감도 없는 오만한 사장의 태도에 노동자들은 절망했다. 방종운 위원장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가도 ‘억울해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장은 단 한 번이라도 돈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는 그는, 사장이 지금 누리는 부를 누가 만들어 준 것인데 이렇게 속일 수 있느냐며 눈자위가 붉어졌다.


가동이 멈춰버린 콜트 · 콜텍 공장에 ‘문화연대’ 팀들이 찾아와 연대의 어깨를 걸었고, 몸으로 함께 하겠다는 예술인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공장 지붕에 토끼를 그리고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어두운 작업장에 갖가지 조형물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만들었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함께 컵라면을 먹으며 연대하고 있다. 방종운 위원장은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고 말했다.

목 잘린 노동자 울화가 치밀어도
무릎 꿇지 않아야 삶의 터전 빼앗기지 않는다.
........중략

청솔 나무 깎아 다듬어서 기타를 만든 세월 접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 시작한 투쟁이
일 년이면 끝나겠지, 내년에는 꼭 끝낼 거야.
웃으면서 넘길 일도 티격태격 싸운 날들
우리의 속 새까맣게 태우고
비웃듯 또 한 번 잘려진 목 2천일을 맞는다.

방종운, <2천일을 맞이하여> 중에

 
   지난 7월 15일부터 25일까지는 ‘콜트 · 콜텍 노동자 사회적 문제해결촉구’ 행동 주간이었다. 야단법석 파티, 예술행동, 법률가단체 공동기자회견, <기타 이야기 상영> 공장 마당에서 열린 락페스티벌, ‘콜트 · 콜텍 해고 2, 000일 미사’등 많은 연대집회가 열렸다.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땀 흘린 ‘연대’행사에서 기타를 만들면서도 기타를 쳐보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기타를 배워 무대에 서기도 했다. 투쟁 2, 000일 행동 주간의 마지막 날, 문화제가 열린 공장 마당에는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이라는 노래가 깔리고 있었다. 장석천 사무장도 ‘투쟁이라기보다는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을 정신 줄 부여잡고 버티는 일, 어언 2, 000일이 지났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이쌍심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삶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버티는 삶’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파업을 이끌었던 쌍용차노조지부장 한상균 씨는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영혼이 없는 노동자이기를 바랐다.”(『한겨레신문』, 2012, 8, 6 재인용)

그리고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추적자’에서 ‘유망한 대선후보’ 강동윤은 수레를 타고 가는 ‘국민’과 수레 아래 깔리는 ‘벌레’를 비유로 들어 말했다. “거대한 수레가 지나가려면 바퀴에 밟히는 벌레들은 어쩔 수 없다.”고. 드라마에서 극명하게 보여주었듯이 평범한 아이의 죽음 하나에 엄청난 정치적 권력이 작동하고 있고, 온 가족의 삶 하나하나, 숨 쉬는 것조차도 권력이 개입해 있는데 정작 가장 ‘좋은 정치’ 권력이 절박한 이쌍심 씨 같은 사람들이 정치내용을 결정하는 행위에서조차 부정되는 것, 이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영혼이 없거나’ ‘벌레’처럼 취급되며 칼끝 같은 삶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 거부되는 사회는, 국가는 무엇일까?

몇 마디 말로도 모든 것을 짐작케 하는 이쌍심 씨와 헤어질 때 그녀는 필자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외로움과 서러움이 한달음에 손끝에 전해져, 삼복의 여름은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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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제국의 부활>

공감 2012. 7. 27. 15:30

좋은 책이 나왔다.『제국의 부활』소준섭 지음- 도서출판 한울

가장 먼저 펼친 장은 -중국을 움직이는 ‘아래로부터의 힘- 편이었다.

1958년 중국의 ‘대약진운동’  전개이후 농촌마을 샤오강춘에서는 주민 120명중 67명이 굶어 죽었고 6가구는 대가 끊겼다. 그리고 78년 11월의 어느 밤 한 농민의 집에 샤오강춘 생산대장을 비롯한 18명의 농민들이 비밀리에 모여들었다. ‘낮고, 헐고, 비좁은, 이 보잘 것 없는 곳’에서 이들은 자식들의 공책을 찢어 손도장을 찍었다.

이 순간, 중국 현대사를 바꾸는 위대한 역사가 탄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읽어 보시기를...


인민대표가 된 ‘민원왕’여성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71세 할머니 왕수룽(2011년 현재)이야기다.

그녀는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이나 국가기관을 상대로 끊임없이 문제를 지적하여 해결하게 하고 ‘피선거권’을 상기시켜 주민들의 주권의식을 각성시키고 결국 육순의 나이에 자신이 ‘촌관’이 되어 훌륭히 업무를 수행해낸다. ‘다루기 힘든 사람’인 이 여성의 사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 여성의 자각이 역사를 움직이는...중략....역사는 대중이 창조해 가는 것이다. 특히 ‘깨어있는 대중’은 역사를 크게 진보시킨다. 동시에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중국사회가 그러한 ‘민의’를 결국 체제 내에 수용해내는 시스템과 정신을 일정하게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힘’의 반영수준이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현대판 포청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고 “좋지 못한 군중은 없으며, 다만 좋지 못한 지도자가 있을 뿐” 임을 보여준다.


나는 이 장이 너무 재미있어 얼른 눈이 갔지만 우리에게 ‘모호한’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관계할 것인지 공부하고 싶다면 매우 유익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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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수다>에 투영된 욕망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프랑스의 사상가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는 명저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가장 기본적인 유형을 몇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쟁’이다. 경쟁은 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 사람들이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끼게 만드는 가장 보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이 모여 즐기던 가위바위보 게임에서부터 엄청난 수익이 오고가는 프로스포츠에 이르기까지 경쟁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놀이는 거의 없다.


 경쟁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두 팀 간의 우열을 가리는 단순한 청백전식 경쟁도 있고 퀴즈처럼 여러 명 가운데 한 사람의 승자를 가리는 경쟁도 있다. 최근 들어 가장 각광받는 경쟁의 유형은 서바이벌이라는 것이다. TV는 온통 서바이벌 경쟁을 내건 오락물로 넘쳐난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가릴 것 없이 조금만 채널을 돌리다 보면 노래, 패션, 요리, 심지어 다이어트까지 서바이벌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공중파 채널은 아예 신입사원을 뽑는 과정을 서바이벌 게임으로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 서바이벌은 글자 그대로 생존을 건 경쟁이다. 그 판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는 것, 그러니까 매 회 탈락자가 되지 않는 것이 게임의 목표이다.


 서바이벌 경쟁 게임은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현실적 생존 방식과 너무나 유사하다. 우리는 하루하루 서바이벌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어려서는 좋은 성적을 얻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서는 취업을 위해, 취업한 후에는 승진하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서바이벌 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무자비해졌다. 웬만큼 좋은 대학을 가도, 웬만큼 좋은 직장을 얻어도 끝까지 생존하리라 예측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삶이 불확실해질수록 서바이벌은 어려워지고 경쟁은 뜨거워진다. 그럴수록 사회는 벌거벗은 욕망들이 적나라하게 사투를 벌이는 정글로 변해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정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따라서 어떡하든 생존하겠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TV의 서바이벌 게임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광은 바로 그런 이중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열광 속에는, 경쟁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어떡하든 그 게임에서 이겨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이 모순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TV를 통해 보는 서바이벌 게임은 시청자들에게 가상의 게임일 뿐이다. TV밖에서 그것을 보는 우리는 그 잔인한 서바이벌의 룰로부터 벗어나 있다. 우리는 그저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 벌이는 무자비한 서바이벌 게임을 관전할 뿐이다. 누군가가 거기서 탈락하고 패배한다고 해도 그게 나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그건 게임일 뿐이고 나는 그로부터 벗어나 그걸 안전하게 지켜볼 수 있다. 내 문제가 아닌 한 서바이벌 게임도 재밌는 볼거리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게임 속의 현실은 나의 현실과 닮아 있다. 거기서 벌어지는 탈락은 언젠가 나의 현실에서도 재현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TV에서 벌어지는 서바이벌 게임 속에서 현실과 유사한 공포를 느끼고 거기서 탈락한 패배자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TV의 서바이벌 게임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적어도 그 공간에서는 공정한 룰이 적용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모든 게임은 공정한 룰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의 게임에서 공정한 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현실의 불확실성은 그런 룰이 언제 어떻게 불공정하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TV의 서바이벌 게임이라면 당연히 정확하고 공정한 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현실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게임의 룰이 적어도 TV 쇼에서만큼은 정확히 작동하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 깨어질 때 시청자들은 분노하게 된다.


 <나는 가수다>에서 첫 번째 탈락자인 김건모를 탈락시키지 않고 재도전의 기회를 준다고 했을 때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 건 그 때문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있는 TV 서바이벌 게임에서 룰이 깨진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쏟아진 시청자들의 비난에는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분노가 투영되어 있다. 탈법과 비리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대기업, 국민과의 약속 따위는 우습게 여기며 부자와 강자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 언제나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는 사법부 등 현실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이 훼손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런 불공정 게임의 장이 되고 보니 그에 대한 분노는 대상도 불분명하고 구체적이지도 않으며 공허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무정형적으로 쌓인 분노가 <나는 가수다>라는 아주 구체적인 대상을 향해 폭발한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비난이 쏟아질 때, 공정 사회를 유린하는 권력집단에는 분노하지 않고 한갓 예능 프로그램에만 분노를 터뜨린다는 힐난도 있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지만 달리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비난하고 비판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TV 속의 가상현실에서라도 공정성이 실현되는 걸 보고 싶었던 거다. 어쨌거나 숨 막히는 서바이벌 경쟁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이 TV 속의 서바이벌 게임에 열광하는 풍경은 어쩐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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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노동 OTL

공감 2011. 4. 14. 08:04

 

   스무 살의 노동 OTL  - 김종천


 올 초에 친구의 소개로 한 대형마트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합쳐 450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책값이라도 벌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자는 생각이었다. 스무 살에 맞은 생애 첫 직장생활이기에 더욱 들뜬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일은 설 명절 선물세트 박스를 나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무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 꾸지람을 들었다. 다른 파트 판매원 아주머니의 일을 거들었다는 이유였다. 그때 비로소 나는 마트 소속 직원이 아니라 마트에서 한 파트를 맡은 A업체의 파견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트는 각 파트 별로 담당 파견업체를 쪼개놓고 있었다. 같은 매장에서 일해도 업체가 다르면 경쟁자였다. 자기 파트 물품을 조금이라도 팔기 위해 묘한 신경전이 계속됐다. 과도한 경쟁 탓에 동료애는 느껴지지 않았다.

노동여건도 열악했다. 5일에 한 번 쉰다는 약속과 달리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그에 따른 수당은 받지 못했다. 출근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했지만 퇴근 시간은 마트의 담당 직원 마음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물류창고에서 박스를 나르다가 가까이 있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친구의 파트를 총괄하는 직원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으며 “네가 직접 하라”고 했다. 자기 파트 직원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혼자 일을 했다. 그러나 그 직원은 “대답이 건방지다”며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내 머리를 때리고 박스더미에 나를 내팽개쳤다. 그로 인해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뽑혔다.


난 당장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에게 사법처리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들은 “가해자가 마트 소속 직원이니 파견업체 소속인 네가 참으라”고 다독였다. 마트 간부는 “A업체는 앞으로 행사에 참여할 수 없을 줄 알라”고 협박했다. 그 간부는 내게 “억울하면 고시를 보든 해서 성공해라. 넌 지금 하찮은 아르바이트생일 뿐”이라고 무시했다. 다른 직원들도 “남들은 다 참고 넘어가는데 왜 너만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느냐”면서 나를 사회부적응자로 몰아갔다.

잠시 뒤 내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는 “사건을 덮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며 “제발 사건을 덮어달라”고 했다.


 고민이 됐다. 잘못한 건 마트 직원인데, 내 친구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나와 친구의 사이도 틀어질 위험이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요청을 거절했다. 부당한 대우를 그냥 참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녁 시간이 됐다. 친구들은 멈칫멈칫하더니 나와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밥 먹으러 갈 때 뭉쳐 다니지 말라더라’고 했다. 돌려 말했지만 나와 함께 다니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한 뒤 혼자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데, 서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고등학생 때 접한 노동인권 강의에서 자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놓고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고 분열시킨다는 얘길 들었다. 언제 해고될 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로 뭉치는 데 장애가 된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직접 겪은 대형마트의 노동현실은 강의에서 듣던 것보다 심각했다. 수직적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의 구분이 마치 봉건시대 귀족과 평민처럼 뚜렷했다. 수평적으로도 파트별로 다른 업체가 경쟁하도록 만들어 놓아 노동자는 말 그대로 파편화된 존재였다. 기대했던 노동의 보람이나 협동의 가치는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기계 같았다.


  

 사진-연합뉴스

그날 저녁 난 바로 해고됐다. 마트는 고작 파견 직원을 해고하면서 사유를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진 않았다. 설렘으로 시작한 스무 살의 첫 직장생활은 이렇게 사회의 어두운 면만 또렷이 각인한 채 20여일 만에 끝이 났다. 

작업복을 벗고 마트를 나서는데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간부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실제로 난 억울했다. 다시는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래서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다짐을 선뜻 할 순 없었다. 앞으로 대학생활에서 고시에 합격하거나 경쟁자에 비해 학점과 토익·자격증 등에서 앞선다면 그 간부가 말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 대다수 대학생이 꿈꾸는 성공이고, 나 역시 그러한 성공에 대한 갈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성공하더라도 어느 마트 직원은 스무 살 아르바이트생을 때리고도 면죄부를 받고, 맞은 아르바이트생은 참기를 강요받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난 과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내가 겪은 억울함이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애 첫 해고를 당한 날 밤은 이런 저런 고민으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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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