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희망’

               

100년의 기록


  지난 주 내린 비로 깊어진 가을은 온 산을 붉게 물들여가고 있다.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라 산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정상에서 땀을 식히며 행복한 얼굴로 담소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이 내년 이맘때쯤에도 같은 표정일 수 있을까, 처연한 생각이 든다. IMF때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옷 갈아입고 산으로 오르던 풍경 때문이다. 미국 발 공황을 염려하는 기사들로 넘쳐나는 요즘 ‘미국이 기침하면 감기 드는’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IMF때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고 더 많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말에 가족들과 등산하며 웃을 수 있는 저 사람들이 우울한 가짜 출근족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경제적 정치적 ‘우상’이었던 미국사회를 거슬러 가본다.


 오래 전 노동조합 권장도서목록으로 읽었던 [마더죤스]를 책장에서 다시 꺼내며 누렇게 빛바랜 책장들 사이로 줄 치고 접어둔 흔적이 새삼 옛 기억들을 살아나게 한다. 그리고 그때의 막연했던 아픔과 공감을 넘어 책장의 공백과 행간들에 담긴 시대적 진실을 대면하고 분석해보면서 새로운 공감에 전율한다. 주류의 역사 뒤에는 그 주류를 떠받쳐 밀어올린 비주류들이 존재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주류만 기억하고 기록한다. 1920년에 태어나 1930년 백 살 동안 격동의 한 세기를 살았던 메어리 죤스도 그렇게 비주류로 살다갔지만 세기를 뛰어넘어 한권의 작은 책으로  내 앞에 다시섰다.

 그녀가 30대이던 1867년 미국은 유행성황열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데 희생자들은 대개 가난한 노동자 서민들이었다. 부자들은 ‘자선얼음기금’에 헌금하고 산으로 바다로 떠나버린 도시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갔고 죤스의 남편과 자식 넷도 사망하게 된다. 이후 그는 홀몸으로 오로지 노동운동에 일생을 바치게 되는데 미국의 자본들이 노동력착취를 바탕으로 성장해가던 1869년 미국노동조합운동의 상징인 ‘노동기사단’에 가입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노동문제가 발생하면 이곳에 도움을 요청했던 곳으로 보인다.

 1870년대 미국은 철도노동자들의 대대적 파업이 일어나고 기업은 공황으로 인해 도시로 흘러들어온 사람들(‘무뢰배들’)을 보안관 대리로 임명하여 방화, 약탈을 일삼으며 그 죄를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등 비열한 수단으로 탄압했다.  ‘마더죤스’는 마치 우리의 이소선어머니처럼 온몸으로 맞서며 싸웠고 국가와 인종을 넘어 노동자들이 고통 받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1886년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 때도 일선에서 함께한다. 당시 무정부주의자들도 8시간노동을 주장하며  무정부주의 이념 확산의 도구로 활용하였고 이때 ‘감정을 격하게 만들고 노동자들 탄압의 명분을 제공하기도 한’이들의 결합투쟁으로 ‘노동자들만 재판에 회부되어 지도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녀는 이 모든 광경을 직시하며 아파하고 분노한다.

 더구나 당시 ‘신의권리 베어’ 란 별명이 붙은 석탄업자협회 회장 베어는 경찰대를 더욱 확장 신설해야 한다며 그 정당성을 논한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은 이제 노동선동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으로부터 이 나라의 재산상의 이익을 관리할 권한을 위임받은 남녀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보호되어질 것' 이라는 주장이었다.

 베어의 주장처럼 ‘위임받은 권한’으로 공장들은 성장을 거듭했고 은행들도 성장해갔다.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기 탄광지대에는 비단공장들이 수도 없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광부들은 그들의 어린 딸들을 비단공장 노동자로 보내야했다. 1903년 펜실바니아 방직공장의 파업 시 7만5천명의 노동자들 중 1만 명가량이 어린아이들이었다. 10살도 채 안된 아이들이 엄지손가락이 없거나 손가락 마디가 잘리고 곱사처럼 등이 굽은 모습을 보며 마더죤스는 아동노동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필라델피아의 호화주택들은 어린아이들의 부러진 뼈와 떨리는 가슴위에 세워졌다. 죠지아주에서 노래하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통과시켰는데 노래를 잃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미국의 어린이는 누구나 대통령이 될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철제 우리속의 이 어린 소녀들은 누가 빵조각과 뛰어놀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 언제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신의 기회를 팔아넘기려 할 것이다 미국의 남자시민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그 기회를 이 아이들은 들어 본적도 없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와중과 아이들의 비참한 노동 뒤에서 구리판매로 엄청난 부를 획득한 ‘구리 왕’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노동자들도 끝없는 투쟁 속에서 권리의식을 높여갔고  광산파업, 뉴욕전차종사자들의 파업 등 끝없는 쟁의들이 일어난다. 그런 동안 미국의 자본주의는 조금씩 정교함을 더해가고 ‘위대한’ 미국건설을 위해 ‘기업주를 보호할 법률을 한 시간에 세 개씩이나 통과시키고’ 정교한 노동의 통제를 위해 ‘헌법수정 제 18조, 알코올음료의 주조 판매 유통 불법화’하는 법률도 공포한다. 이런 변화흐름 속에서 ‘투쟁현장이 자신의 집 주소’인 마더죤스는 가는 곳마다 노동자들의 환영 뒤에서 기업주들의 협박, 투옥을 거듭한다. 그리고 1930년 100살로 생을 마감하는 동안 미국사회는 ‘원더풀아메리카’시대로 진입한다.


‘원더풀 아메리카!’


 법률과 기술력과 자본이 일체가 되어 노동의 상품화가 고도로 정교해지고 있는 아메리카의 도시는 잉여가 커지는 만큼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유흥업소는 ‘과거도 없고, 추억도 미래도 희망도 없는 한없이 슬픈, 그렇지만 한없이 비정한’관현악대신 재즈밴드의 경쾌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웨스팅하우스전기회사가 운영하는 라디오방송국이 개국되었고 비행기에서 부활절 설교방송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여성도 흡연을 시작했고 스포츠가 풍부해지고 여성들의 스커트도 조금씩 짧아졌다. 포드자동차의 성공과 포드식 대량생산시스템은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블랭크튼 창문틀’ 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이제 자유가 승리했으니, 이제 정의의 세력이 인류의 도덕을 재건하기 시작했으니, 세계는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물질적 과업에 직면해있다’ 고 광고했다. 볼세비키에 적대적인 분위기는 반공주의를 팽배하게 하였고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항의하는 노동계급의 파업은 울림이 약화되어갔다.

‘정상화’를 바라는 미국국민들은 승전과 기술문명의 발달, 미국 우월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주의적 우월의식으로 미국시민은 1등 아메리카를 꿈꾸었다. ‘미국사회의 행동을 결정짓는 최종적 권위는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기업인 즉, 자본의 힘이었다.

 이렇듯, 1차 대전의 승리 후 급속한 진전을 이룬 미국의 산업사회는 많은 유랑망명객을 ‘아메리카드림’의 꿈으로 손짓했다. ‘이상주의는 몰락, 아메리카주의의 부상’으로 지칭되는 구호처럼 전통적 가치는 밀려나고 아메리카주의로 상징되는 산자유주의의 물결이 잠식했다. 뉴욕트리뷴지는 이러한 분위기를 ‘마치 바람 없는 대양에 떠있는 범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전진하는 듯’ 하다고 평했다.

기업은 번성했고 사람들은 주식을 사고 은행은 돈 장사에 열을 올렸다. 주식투자는 불붙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상품을 만들어 받은 임금으로 다시 그 상품을 구매하는 데에 지불하여 방안을 채웠다. ‘금주법’은 ‘알 카포네’로 상징되는 밀주조직단을 번성시켰고 그들은 방탄자동차로 거리를 활보하며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이렇듯 풍요롭게 흥청이던 환상의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와장창!’ 모든 것이 붕괴했다. 부동산과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이른바 ‘블랙 튜즈데이’다.


풍요와 소비가 빼앗아간 ‘희망’


 마더죤스가 살았던 1830년에서 1930년까지의 미국은 전쟁과 공황과 호황을 다 담아낸 격동의 시기다. 많은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투옥되고 1천여 명이 한꺼번에 같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했다. 그런 한편 1899년 서부지역 광부연맹이, 폭파된 광산문제로 벌이던 투쟁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8시간 노동을 쟁취해내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상점을 세우고 도서관과 병원을 지어놓았고 과부와 고아를 위한 기금을 건설해놓기도 했다. 이 당시를 회고하며 마더죤스는 “술집들 대신에 희망이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1927년 ‘13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2천종의 일간지에 5일 연속 전면광고를 낸’ 포드자동차의 소비 물량공세는 집에 욕조가 없는 노동자들도 포드차를 구입하는 등 임금은 상품구매로 다시 토해내게 된다. 결국 거대한 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자들은 더 많이 생산하고도 더 궁핍해지는 결과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1890년대 열악한 조건에서도 ‘술집들 대신 희망을’ 찾았던 이들은 ‘금주법’이 발효되고 산업의 발전이 극대화된 풍요의 시대에 더욱 분노한다.


주류제조 판매금지법은 노동자들을 좀 더 부려먹으려는 사업가들과 몇몇 성직자들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법입니다. 노동자들로부터 술을 빼앗아가고 노동자들의 단 하나의 클럽이었던 술집들을 문 닫게 했습니다. 부자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술을 즐기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는 오직 경찰서뿐이게 됐습니다.


 마더죤스의 이 주장은 몇 가지 사실을 명료하게 해 준다

 첫째, 수업시간에 공부했던대로 노동자들의 노동력극대화를 위해 술을 자제시키는 청교도적 윤리를 이데올로기화하고 있지만 또 하나 노동자들의 조직 활동 공간을 차단하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술자리는 ‘쌓인 피로를 푸는 공간’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고 조직 활동의 중요한 장이다. 끝없이 파업이 일어나던 이 시대, 술집을 폐쇄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은 노동자들의 조직 작업 차단의도도 내포된 것 아니었을까.

 두 번째로, 노동자들은 임금이 향상되고 노동시간이 줄었음에도 1890년대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찾았던 ‘희망’을 잃어가고 술집을 더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미국의 1920년대는 지금 우리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명료하다. 1970년대 산업사회의 진전과 농촌의 피폐로 유입되던 노동자층들이 그렇고 저임금 저곡가정책을 기반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극도로 착취하여 이루어 온 경제성장이 그렇다. 그럼에도 비정한 속성의 자본은 언제나 이윤을 찾아 떠나고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몰리고 있다. 급속도로 이루어진 GNP성장의 속도는 문화지체현상을 낳고 비상정적이고 일탈적인 문화의 범람을 조성하여, 휘황한 조명 뒤의 그림자를 한층 더 음울하게 만든다.

 ‘혁혁한 투쟁의 일생’을 살았던 마더죤스의 일생을 보면서 가슴 저리게 확인한다.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층은 여러 변수들 속에서도 여전히 기득권자로 군림하고 있고 노동자등 가난한 계층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거대한 층이 형성되어 끝없이 굴레를 씌우고 있는데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악다구니를 하며 살고 있는 군상들과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원더풀 아메리카』 2006, 도서출판 엘피

  *『마더죤스』1978, 평민사


2008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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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