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동물 세상 월드컵이 있었대. 온 세상이 흥분을 이기지 못해 짖는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지. 물론 개나라도.

국정지표가 ‘일하지 않는 개, 먹지도 마라’, ‘잘 키운 견재(犬材) 하나, 10만마리 먹여 살린다’ 등일 정도로 경쟁과 성과, 엘리트를 중시하시는 이 나라 각하께선 월드컵을 ‘국격’을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로 만들기로 결심하셨어. 국격만큼 높아진 나라 이미지에 힘입은 개나발 수출 등으로 돈이 마구 굴러들어오는 청사진을 그리신 거지.


회장님께서 “내가 함 해볼게 회장직을 돌려줘” 했지. 자기 (주식)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기 (회삿)돈을 이곳저곳에 분산해놨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간난고초 끝에 (말만) 유죄판결을 받으셨거든. ‘황제’격인 그분의 요구를 각하께선 황공하게 받들었고,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됐지. 주요 관계견들이 뻔질나게 비행기를 탔고, 외환보유고가 상당히 낮아졌다지, 아마?


각하께선 선수들 출정연에서 교시하셨어. “누차 말했듯, 역사는 선각자들이 만드는 거야. 견족의 중흥이냐, 정체냐의 갈림길에서 여러분이 역사의 주역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돼. 과정보다는 결과지. 혹시라도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어.” 치열한 경쟁을 거친 똑똑한 선수들은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들었지.


그 대회에선 유독 오심 시비가 많았어. 견국이 16강행을 결정짓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팀은 독수리국이었어. 빠르기가 질풍 같은 신예 강호였지. 첫 골은, 아니, 공식적으론 골이 아닌 골은 독수리가 터뜨렸지. 27m 강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안으로 떨어졌어. 그러나 타조 심판은 자기 머리를 그라운드에 파묻더니 그것으로 그만이었어.


그는 사슴들의 거센 항의를 “못 봤어!”란 한마디로 일축했지. 두번째 골의 함성은 뒤늦게 들린 오프사이드 깃발과 휘슬에 웅성웅성 소리로 바뀌었어. 후반 막판 개나라 선수가 크로스로 올라온 볼을 앞발로 세워 뒷발로 차넣었고, 그게 결승골이었어. “핸들링”이라는 독수리들의 절규를 경기 종료 휘슬이 잘랐지.


“멍! 멍!” 환성과, 심판과 국제축구연맹(피파)을 욕하는 온갖 짖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어. 텔레비전에선 노골로 판정된 두 장면이 끝없이 반복됐고. 근데 역시 피파 대변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텔레비전 중계는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 논란이 된 장면을 보여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더 주의할 것이다.”


온 세상이 부글부글 끓어도 피파 시계는 돌아갔지. 8강전. 상대는 우승을 먹이 먹듯 하는 사자국이었어. 근데 파울은 주로 개들이 했는데 퇴장당하는 건 사자였어. 세 마리나. 그래도 0-0. 연장전을 앞두고 감독은 말했대. “우리가 이기고 돌아갔을 때와, 지고 돌아갔을 때를 생각해라. 사자는 우리 견족의 공적이다.”


연장 후반, 코너킥 때 개들은 사자들의 앞발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운 뒤 들어올리는 전설적인 ‘날개꺾기’ 비공을 선보였어. 당연히 골인.


근데, 경기장 곳곳에 배치된 32대의 카메라 가운데 31대의 카메라는 그 순간 일제히 각도를 올렸지만, 한 대가 그 장면을 잡아버리고 만 거야. 지시사항을 들은 뒤 초긴장 상태로 사흘째 잠도 못 잔 그 카메라맨이 그만 깜빡 졸고 만 거지.


천지가 개벽해도 결과는 개나라의 승리였지만, 온 세상의 비난에 피파가 수입에 상당한 타격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자 결국 피파 회장 마우스공이 나섰지. “대변인 발표는 내 말을 마사지한 거야. 비디오 판독? 함 검토는 해볼게.”


뱀발-거듭 말하지만, 이건 옛날하고도, 너무도 ‘동물적인’ 욕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동물 세상 얘기야. 인간 세상에서, 그것도 21세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짖지 말고 말로 해봐.

                         김인현  한겨레신문 스포츠부문 편집장inhye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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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