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의 셋방살이 -

공감 2010. 5. 25. 09:49
 

재상의 셋방살이 

                                                        강명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이익(李瀷, 1681-1763)은「성호사설」의「재상임옥(宰臣賃屋)」(24권), 곧 ‘재상이 셋집을 빌어 살다’란 제목의 글에서 송나라의 희한한 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재상의 아들은 과거를 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아버지가 총리나 장관을 지내면, 아들은 행정고시를 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좀 더 넓혀본다면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되면, 아들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니, 똑똑한 자식의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겠지만, 그 제도야말로 원려(遠慮)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재상의 아들이 관로에 들어서는 것을 허락한다면, 권력을 독점한 가문이 생겨날 것이고, 그것은 결국 국가와 사회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이 이런 말을 하는 속내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몇몇 가문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이조판서 병조판서 대제학을 독점하는,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던 시대였고, 그것이 국가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직의 독점과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나라를 병들게


이익은 재상의 아들에게 과거를 치지 못하게 한 예로서, 여몽정(呂蒙正)의 아우 여몽형(呂蒙亨)과 이방(李昉)의 아들 이종악(李宗?)이 정시(庭試)에서 합격했지만, 형 또는 아버지가 재상으로 있다 하여 불합격 처분을 한 경우를 들고 있다. 제도는 실제로 집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익은 이 외에도 몇몇 예를 더 들고 있지만, 골자는 간단하다. 재상의 아들 개인은 억울할 수 있지만, 국가는 보다 폭 넓게 인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익의 견해다.

이익은 같은 글에서 당시의 벼슬아치들은 모두 자기의 집이 없어, 재상일지라도 수도 개봉(開封)에서 집을 짓지 못하고 셋집을 얻어 살았다고 한다. 권력이 소수의 가문에 집중되지 않고, 또 재상이 셋집에 살 정도로 깨끗하였으니, 사방에서 우수한 인재가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정에는 명분이 섰고 일처리도 공정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익이 높이 평가하는 그 시대는 북송 초기다. 이익은 6대 신종(神宗) 때부터 재상이 개봉에 호화스러운 저택을 짓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지방의 인재가 조정으로 진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과야 익히 아는 바이다. 힘을 잃은 송나라는 요나라 금나라의 무리한 요구에 시달려 재정이 바닥난다. 국토를 빼앗긴 것은 물론 개봉까지 함락되고, 급기야 황제인 휘종 흠종까지 만주 오국성(五國城)으로 잡혀가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는다.(하기야, 무능한 황제가 죽은 것이 무슨 대단한 비극이겠는가마는!)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특정한 학교의 졸업자가 관료와 국회의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아시리라 믿는다. 더욱 갑갑한 것은 지역구 국회의원 역시 대부분 해당 지역의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에서 경력을 쌓고 주민의 인정을 받아 의원으로 선출되어 국회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난데없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서울 사람이 이 지역과 과거에 어떤 인연이 있었노라면서(대부분 개미허리보다도 빈약한 관계다) 불쑥 나타난다. 그리고는 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번지레한 말로 표를 낚아 국회의원이 된다. 그들이 과연 지역을 위해 성실히 일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지방이 이처럼 쭉정이가 되었을까?


              부자나 권력독점집단보다는 셋방살이 정치인을


이익은 글의 말미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만약 백성이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치를 억제해야 한다. 사치를 억제하는 방법은 현자(賢者)를 찾아내는 데 있다. 현자를 찾아내는 방법은 사욕(私欲)을 막는 데 있다. 사욕을 막는 방법으로는 송나라 제도보다 좋은 것이 없고, 효과도 이미 분명하다.”


요즘 대한민국 사정으로 풀어보자면 이러하다. 국민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려면, 돈 많은 부자 정치인의 진출을 막아야 하고, 혈연?지연?학벌에 의한 소수의 권력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어보자. 돈 많은 부자 정치인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겠는가. 또 정치권력을 독점한 소수의 혈연?지연?학벌 집단이 과연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인의 정계 진출을 바라겠는가. 강남에 빌딩이며 아파트를 소유한 고급관료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정책을 세우겠는가? 아마도 셋방살이를 하는 정치인이 대거 출현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가.


Posted by 공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