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초등학교 운동회를 보면서 / 이계삼


 학교 2층 복도를 지나다가 옆 초등학교 운동회 하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보았다. 옛날 같은 운동회였다. 키보다 더 큰 공을 굴려가는 꼬마 아이들의 종종걸음이 앙증맞은데,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엇갈리는 소리는 새떼들의 지저귐처럼 청아했다. 신나게 1등으로 내빼는 아이 한참 뒤에 비만의 소년은 낑낑대며 따라간다. 훌라후프를 떨어뜨린 소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눈치를 살피다 몰래 후프를 주워 다시 시작한다. 아무도 못 봤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멀리서 내가 봤다, 이눔아.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하늘은 맑았고, 새잎 돋아나는 나무들은 온통 싱그러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2층 복도로 올라오기 직전에 나는 교무실 내 자리 위에 놓인 <한겨레21> 표지사진을 보았다. 가슴속으로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가 보라, 4대강’이라고 큼직하게 쓰인 표지 전면에는 여주군 부근의 남한강을 찍은 사진이 박혀 있었다. 뒤통수 한가운데로 바리캉이 밀어놓은 가르마처럼 강 한가운데로 흉측한 길들이 뻗어나 있었다. 갇힌 쪽은 온통 흙탕물이고, 흐르는 쪽은 암청색이었다. 억겁의 세월을 흘러온 강이 한순간에 결딴나 버렸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다, 인간 어뢰가 터졌건, 꽃게 어뢰가 물어뜯었건, 북한이 아니면 누가 했겠냐면서 사냥개 같은 이빨을 갈아대는 자들이 지금 물이 올랐다. 한판 붙자는 얘기다. 전교조는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선거 때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지, 그렇게 모욕을 주지 못해 상처를 내지 못해 안달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학창시절 전교조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감동으로 교사의 꿈을 키웠던 사람이다. 일년 내내 회의하고, 아이들 잘 가르치기 위해 연수하고, 탄압받아가며 맞서 싸운 일밖에 한 것이 없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하질 못해 아이들한테 미안할 따름인데, 우리가 간첩질이라도 했단 말인가.


올해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로 옮긴 아내는 퇴근하고 집으로 오면 부쩍 애가 타는 소리를 한다. 자기 반 19명 중에서 ‘정상 가정’이라 할 수 있는 아이가 예닐곱밖에 되질 않는다 한다. 시골 학교는 대체로 이렇다. 오늘도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키우는 한 아이가 할머니 돈 13만원을 훔쳐 게임머니로 쓰다 걸린 것이다. 이혼한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아들을 때린다는데, 게임머니를 훔친 그 아이는 그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생이라 한다.


우리는 세상 전체를 구원할 수 없다. 세상에 가득 찬 이 어둠을 우리 힘으로 걷어낼 수도 없다. 이 어둠은 어제오늘에 만들어진 것도 아닐 것이며, 거기에는 저 사기꾼, 협잡꾼, 모리배들만의 책임으로 덧씌울 수 없는, 우리들 하나하나의 크고 작은 책임들이 서려 있을 것이다.


결딴나는 강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내 주변에도 지율 스님이 찍은 4대강 사진전을 위해 이젤과 사진들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시내에서 사진전을 하는 형님들이 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력감이다. 이 광막한 어둠이 주는 슬픔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자괴감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초등학교 운동회를 보면서 잠시나마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이 엉망진창의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이 뛰놀고 자란다는 사실이 주는 싱그러운 기쁨이었다. 기운 차려서, 뭐라도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어도 좋겠다던, 양복을 입지 않아도, 장가를 가지 않아도, 세 끼 보리밥을 먹어도 종달새처럼 노래하겠다던 권정생 선생님을 생각했다.

                                               »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Posted by 공고지